[TF기획-기업in올림픽①] 재계 50위권, 11개 종목 '금빛 지원'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2005년부터 대한양궁협회장을 맡으며 주요 국제 양궁대회를 참관하며 선수들을 지원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올림픽등 국제 스포츠대회에서 국가대표팀 선수들 옆엔 기업들이 있다. 기업들은 메달사냥의 든든한 후원자다. 종목별 지원에 '부익부 빈익빈'현상은 재고해야할 과제이지만 기업의 후원은 운동에 전념하는 선수들에게 큰 힘이 된다. 태극전사들의 구슬땀 뒤에는 오랜 시간 묵묵히 선수단을 후원해 온 재계의 든든한 지원이 한몫을 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개막이 목전으로 다가오면서 올해 역시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은 적극적인 투자와 함께 응원단장을 자처하고 있다. <더팩트>에서 또 한 번의 감동과 희망의 물결을 만들어 낼 리우 올림픽 무대에서 뛸 국가대표 선수들 후원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재계의 노력을 살펴봤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장병문 기자] D-10. 오는 8월 6일 열리는 '2016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기업들이 스포츠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통해 회사 이미지 제고와 매출 증대라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노린다. 모든 스포츠가 인기가 있는 것이 아니듯 올림픽 종목도 인기 종목과 비인기 종목으로 나뉜다. 기업들의 스포츠 투자는 인기에 비례한다. 올림픽에서 국민이 주목하는 종목은 대기업의 막대한 지원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종목은 서럽기만 하다.

리우 올림픽 28개 종목 가운데 대한민국 대표팀이 참가하는 종목은 24개 종목에 달한다. 농구, 럭비, 트라이애슬론, 테니스 종목 대표팀은 이번 올림픽에서 볼 수 없다. 올림픽에 참가하는 24개 종목 중 국내 재계 순위 50위권 대기업들로부터 후원을 받는 연맹이나 협회는 11개 종목이다. 나머지 13개 연맹이나 협회는 중소기업의 후원을 받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연맹이나 협회를 직접 지원하지 않고 선수 개인을 후원하거나 팀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흔히 '올림픽 메달밭'이라고 부르는 종목 뒤에는 거대 기업이 든든한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기업들의 본격적인 엘리트 스포츠 지원은 전두환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5공화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8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는 대기업들이 종목을 하나씩 맡아 지원해야 한다는 정부의 압박이 있었다.

SK그룹은 지난달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단의 선전을 기원하기 위해 김영태 SK커뮤니케이션위원장(부회장)이 태릉선수촌을 방문해 3억 원의 격려금을 쾌척했다. /SK그룹 제공

대표적으로 양궁은 현대그룹 창업주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1980년대 초 대한체육회장을 맡으면서 인연을 맺게 됐다. 그 뒤를 이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아들 정의선 부회장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30여 년간 약 400억 원에 달하는 후원금을 양궁에 투자하면서 인재 발굴과 양성, 저변 확대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한국 양궁은 역대 올림픽에서 19개 금메달을 쏟아냈다.

삼성도 오랫동안 레슬링을 지원했다. 정부의 요청도 있었지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서울대사대부고 레슬링 선수 출신이라는 점이 레슬링협회장직을 맡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삼성은 레슬링에 300억 원 이상의 지원을 했으며, 현재 승마, 태권도, 빙상 등의 연맹과 협회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또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도 2002년부터 대한사격연맹을 지원했다. 매년 전국사격대회를 개최하면서, 지금까지 125억 원을 후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이 정부의 요구에 마지못해 돈을 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사회공헌 일환, 홍보 등 의미가 달라졌다.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시절이 왔지만 기업은 자발적으로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지고 스포츠를 지원하고 있다. 그 결과 올림픽 불모지로 여겼던 펜싱에서 금메달 2개가 나왔고, 핸드볼에서는 '우생순'이라는 감동의 드라마를 그렸고, 또 수영에서는 박태환이라는 세계적인 선수가 탄생했다.

재계 순위가 높은 대기업일수록 많은 단체와 개인을 후원하고 있지만 모두를 지원할 수 없다. 대기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종목은 중소기업의 도움을 받고 있다. 하지만 후원금 차이는 엄청나다. 대기업 후원을 받지 못한 연맹 관계자는 "중소기업으로부터 2억 원가량의 후원금과 스포츠 용품을 후원받고 있다"고 밝혔다.

<더팩트> 취재 결과, 리우 올림픽에 출전하는 종목 중 대한레슬링협회, 대한배구협회, 대한역도연맹, 대한요트협회, 대한유도회, 대한수영연맹, 대한육상경기연맹, 대한조정협회, 대한체조협회, 대한카누협회 등이 중소기업의 후원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후원사 대부분이 스포츠 관련 업체로 유니폼이나 용품을 지급한다.

레슬링과 유도는 국제대회마다 메달을 기대하는 종목임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협회나 연맹이 대기업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한 협회 관계자는 "대기업으로부터 직접 후원을 받으면 좋겠지만 이번 올림픽에는 없다"면서 "내부적인 상황 때문에 후원사를 유치하는데 미흡했다"고 말했다.

'스포츠 협회장=재벌'이라는 공식도 일부 종목에서는 성립되지 않고 있다. 대한요트협회나 대한수영연맹, 대한역도연맹, 대한유도회 등은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회장의 임기가 끝나거나 사임으로 공석인 상태다. 회장을 선임해야 하는 연맹과 협회도 기업인을 회장으로 선임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은 모습이다. 한 협회 관계자는 "기업의 후원이 선수들을 육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라며 "굳이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중견기업 대표를 회장으로 모시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경제가 어려운 탓에 후원사 유치가 쉽지만은 않다. 재계 순위 12위인 현대중공업과 24위 대우조선해양, 48위 한진중공업 등은 업계의 위기로 스포츠 후원은 다른 세상 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은 지난 5일 충북 청주종합사격장에서 개막한 2016년 한화회장배 사격대회 개막식에 참석해 사격 국가대표 선수들을 격려했다. /한화그룹 제공

대기업 후원이 없다고 해서 선수들이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부족하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이들 종목 선수들은 지원이 넉넉한 종목 선수들과의 차이에서 오는 설움을 견뎌야 한다. 한 관계자는 "연맹에서 기본적인 부분은 지원해주고 있어 대기업의 후원이 없더라도 불편함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과거 대기업 회장이 연맹을 맡을 때와 비교하면 환경이 지금보다 여유롭긴 했다"고 말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사회공헌을 목적으로 후원하지만, 홍보 효과도 염두에 둔다. 그렇지만 후원이 꼭 홍보 효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올림픽 헌장 40조'에 따르면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와 감독, 코치 등 참가자들이 올림픽 기간 중 자신의 이름이나 사진, 경기 영상 등을 상업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다. 대회가 상업적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지만, 천문학적인 돈을 내는 공식 후원사를 보호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삼성은 국내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올림픽 파트너 기업으로, 리우 올림픽에서 자유롭게 마케팅 활동을 펼칠 수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선수들을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올림픽 후원사로 들어가지 않으면 마케팅으로 활용할 수 없다. 후원하고 싶어도 (마케팅 효과가 없어)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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