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재근 기자] 잘 나가던 신영자 롯데복지장학재단 이사장과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현 유수홀딩스 회장)이 나란히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르며 시련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때 유통업계와 해운업계에서 각각 성공한 여성경영인 1순위로 꼽히며 존재감을 드러낸 신 이사장의 '로비 의혹'과 최 전 회장의 '먹튀 논란'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그 강도를 더하고 있는 가운데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검찰이 수사의 칼날을 겨누고 있는 최 전 회장과 신 이사장은 롯데 신 씨 일가의 구성원이다. 최은영 전 회장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10남매 가운데 여덟째인 신정숙 씨의 장녀로 신 총괄회장의 장녀인 신 이사장과 외사촌 관계다.
두 사람 가운데 검찰 출석에 먼저 나서는 쪽은 최은영 전 회장이다. 8일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단장 서봉규 부장검사)에 따르면 최 전 회장은 손실을 털기 위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거래를 한 혐의로 검찰에 출석,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는다.
최은영 전 회장이 검찰 소환조사를 받는 것은 지난 4월 채권단을 중심으로 최 전 회장 일가가 한진해운의 자율협약 신청 직전 잇달아 회사 지분을 매각, '손 털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지 한 달여 만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최 전 회장과 두 딸인 조유경, 조유홍 자매는 지난 4월 8일부터 같은 달 22일까지 한진해운 보유 주식(최 전 회장 37만569주, 조유경, 조유홍 각각 29만8679주) 전량을 매도했다. 한진해운이 재무구조 개선 및 경영정상화를 위해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한다고 밝힌 것은 같은 달 22일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최 전 회장이 미공개 정보를 사전에 입수, 손실회피를 위해 서둘러 주식을 매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문제는 채권단 일각에서 제기된 이른바 '먹튀 논란'이 검찰 수사과정에서 혐의를 인정할 만한 정황이 드러났다는 데 있다. 검찰은 지난달 11일부터 최 전 회장의 사무실과 자택, 삼일회계법인, 산업은행 등을 압수수색하고 최 전 회장이 사전에 한진해운 자율협약 관련 미공개 정보를 입수한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날 소환 조사에서 최 전 회장이 주식 매각을 결정하게 된 전 과정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할 방침이다.
지난 2007년 한진해운 경영권을 손에 쥔 최 전 회장은 2010년 국내 해운업계를 대표하는 최대 해양컨벤션 행사인 '세계해양포럼(WOF)'에 공동의장 자격으로 참석하는 등 경영 보폭을 빠르게 넓혔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발 업황 악화에 발목을 잡혀 2014년 시숙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 경영권을 모두 넘기며 '며느리 경영'에 마침표를 찍었다.
업계에서는 이번 검찰 조사에서 최 전 회장의 범법행위가 모두 사실로 드러날 경우 해운업 이후 두 번째 도전인 음식점업과 프랜차이즈 사업에도 빨간불이 켜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 전 회장의 외사촌 언니인 신영자 이사장 역시 상황은 좋지 않다. 1997년 롯데쇼핑 총괄 부사장에 선임된 이후 롯데백화점과 호텔롯데의 면세점 사업을 진두지휘하며 유통업계 '대모'로 군림해 온 신 이사장이지만, 최근 불거진 '면세점 로비 의혹'으로 과거 명성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게 됐다.
이날 호텔롯데는 보도자료를 내고 상장일을 오는 29일에서 다음 달로 연기하고, 공모예정가도 기존 9만700원~12만 원에서 8만5000원~11만 원으로 하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이는 전체 공모 규모가 5000억 원가량 줄어든 수치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신 이사장 측에 롯데면세점 입점을 목적으로 약 13억 원이 넘는 금품을 건넨 정황이 검찰 수사로 드러나고, 정 대표가 신 이사장에게 20억 원의 자금을 건넸다는 진술까지 나오는 등 '롯데 면세점 입점 로비'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자 그 불똥이 호텔롯데 상장 프로젝트로 고스란히 옮겨붙은 것이다.
실제로 호텔롯데는 이날 금융위원회에 제출한 정정 증권신고서에 투자위험요소로 "신 이사장이 면세점 입점과 관련해 네이처리퍼블릭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며 수사결과에 따라 당사의 평판과 영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기재했다. 사실상 신 이사장이 롯데그룹의 핵심과제이자 성장전략 추진에 발목을 잡은 셈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신 이사장의 '로비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 향방에 따라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이 참여를 앞둔 서울 시내면세점 신규 사업자 선정 작업에도 차질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