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과천=변동진 기자] "왜 국세청 특별 세무조사를 받나요?" "………."
결과적으로 이웅열(60) 코오롱그룹 회장의 육성 대답은 듣지 못했다. <더팩트> 취재진은 9일 오후 코오롱그룹 과천 사옥에서 퇴근하는 이웅열 회장을 상대로 국세청 특별 세무조사와 관련된 직격 인터뷰를 시도했다. 코오롱그룹에 대한 국세청의 이례적인 특별 세무조사는 최근 재계의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웅열 회장에 대한 세 차례에 걸친 <더팩트> 취재진의 직격 인터뷰 시도는 불발로 끝났다. 일상적 범주를 벗어난 국세청 세무조사 배경을 취재하기 위해 이웅열 회장의 코멘트를 듣고자 했지만 ‘회장님’을 보호(?)하는 호위무사 같은 직원들에게 제지당했다. 그룹 측으로부터 "세무조사는 받고 있지만 탈세는 아니다"라는 답을 얻은 게 성과라면 성과다.
이웅열 회장은 세무조사와 관련된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국세청 특별 세무조사 대상 코오롱그룹, 재계 이목 집중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의 관계 때문에 정치권 내외에서 구설에 올랐던 코오롱그룹이 최근 국세청으로부터 특별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재계는 갑작스럽게 코오롱그룹이 세무조사를 받는 배경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항간에서는 단순 세무조사가 아닐 것이란 소문이 무성하다. 코오롱그룹의 세무조사를 주도하는 곳이 '국세청의 중수부'로 불리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란 대목에서다.
관할인 중부지방국세청이 아닌 기업의 탈세와 비리 등을 조사하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나선 만큼, 특별한 쟁점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조사4국이 관심 있게 들여다 보고 있는 곳으로 알려진 코오롱인더스트리의 경우, 이웅열 회장의 장남 이규호 상무보가 수년간 경영수업을 받아온 곳이다.
세무조사 결과에 따라 자칫하면 이규호 상무보 경영승계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재계 안팎에서는 나오고 있다. 이런 의혹과 관측 때문에 <더팩트>는 이웅열 회장의 의견을 듣고자 했다.
◆코오롱 "탈세 아니다. 세무조사는 사실이지만 이유는 모른다"
코오롱그룹이 최근 국세청으로부터 특별 세무조사를 받은 사실과 관련해 밝힌 내용은 "탈세는 아니다. 세무조사는 사실이지만 이유는 모른다"이다. 이웅렬 회장에게 직격 질문을 던졌지만 그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입을 굳게 다물었다. ‘탈세가 아니다’는 부인 답변은 회사 측 관계자에게서 나왔다. 현재 국세청 세무조사 대상은 그룹의 지주사인 ㈜코오롱과 주요 계열사인 코오롱인더스트리 등 2곳이다.
일각에선 창업주인 고 이동찬 명예회장이 생전에 보유하고 있던 지분이 이웅열 회장을 비롯한 자녀들에게 상속되는 과정에서 상속세가 제대로 신고 됐는지 여부 등도 조사 대상에 포함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더팩트> 취재진이 이웅열 회장을 직접 마주한 것은 지난달 28일과 이달 2일, 9일 등 모두 세 차례다. 그는 평균적으로 오후 4시 30분 전후로 과천 코오롱그룹 사옥을 나선다.
취재진은 9일 코오롱그룹 본사 로비 앞에서 퇴근하는 이웅열 회장에게 다가가 직접 명함을 건네며 인사했다.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이번 세무조사건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죠.” 하지만 경비원과 그룹 관계자들이 거칠게 기자를 밀쳐내면서 온몸으로 방어벽을 쳤다. 그러는 사이에 이웅열 회장은 취재진 직격 질문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휴대폰을 든 채 급히 자리를 피했다.
회사 측 관계자는 이웅열 회장에게 건네려 한 명함도 기자 손에서 낚아챘고 또 다른 관계자는 “왜 또 왔냐”며 “절차를 밟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짜증을 냈다. 이에 취재진은 “그럼 미팅 및 인터뷰를 공식적으로 요청하겠다”고 하자 그는 “이러시면 우리 정말 짤린다”고 뼈있는 농담을 던진 후 되돌아섰다.
이어 경비원들은 취재진의 차량과 위치를 공유했다. 그리고 회장이 퇴근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취재차량 주위를 배회하며 취재진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사실 이번 취재에 앞서 지난 2일 이웅열 회장을 만난 바 있다. 당시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웅열 회장의 입을 통해 국세청 세무조사 이유를 듣진 못했고, 회사 측은 탈세 의혹에 대해서 강하게 부정했다.
이웅열 회장에 대한 접근을 막았던 현장 관계자는 “그런(탈세 및 비리) 거 없다”며 “(세무조사)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일축했다. 그룹 측 대외업무 관계자는 “세무조사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혐의로 실시됐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게 없다”고 말했다.
◆‘국세청의 중수부’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코오롱그룹 조사한 까닭은?
<더팩트>가 이번 취재를 진행한 까닭은 재계에서 이번 코오롱그룹 세무조사를 두고 여러 관측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코오롱그룹 관할인 중부지방국세청이 아닌 기업의 탈세, 비리 등을 중점적으로 조사하는 ‘국세청의 중수부’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진행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쉽게 넘길 일이 아니라는 게 재계 중론이다.
실제 이들은 지난달 28일 코오롱그룹 본사에 조사관을 보내 회계장부 등 세무자료를 확보, 특별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이번 조사 대상은 코오롱그룹의 지주사인 코오롱을 비롯한 주력 계열사 코오롱인더스트리 등 2곳으로 알려졌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그룹 매출의 40~50%를 차지하는 핵심 계열사로, 산업소재·화학·의류 등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또한 이웅열 회장의 장남 이규호 상무보가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2005년 ‘헤라크론’이란 브랜드로 아라미드 시장에 진출했다. 아라미드는 총알도 뚫지 못하는 강도, 500도의 불 속에서도 타거나 녹지 않는 내열성, 아무리 힘을 가해도 늘어나지 않는 뛰어난 인장강도를 가진 섬유로 알려졌다. 하지만 2009년 미국 화학회사 듀폰으로부터 아라미드사업 관련 영업기밀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했다. 그리고 6년간 이어진 소송 끝에 지난해 3억6000만 달러(한화 약 4000억 원)에 달하는 벌금과 합의금으로 마무리했다.
만약 듀폰과의 소송 문제라면 추징금만 내면 끝난다. 하지만 고 이동찬 명예회장의 지분 상속세가 걸린다면 가족 전체로 확산될 뿐만 아니라 이규호 상무보로 이어지는 경영승계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코오롱은 지난해 2월 12일 공시를 통해 2014년 11월 타계한 이동찬 명예회장 보유 지분 101만3360주 중 40만500주가 이웅열 회장에게, 나머지 자녀들에게는 각각 12만2562주씩이 상속됐다고 밝혔다.
10일 종가 기준 이웅열 회장이 상속받은 주식 가치는 95억3000만 원이다. 더불어 그의 코오롱 보유 지분은 기존 44.08%에서 47.38%로 증가한 바 있다. 고인의 지분은 이웅열 회장을 비롯한 딸 경숙, 상희, 혜숙, 은주, 경주 씨 등 자녀들에게도 상속됐다. 이 과정에서 상속세가 제대로 신고됐는지 여부 등도 조사 대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코오롱인터스트리의 경우 이규호 상무보와 관련된 탈세 및 비리는 가능성이 낮다”면서도 “아마 듀폰과의 소송 합의 과정에서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그래도 조사4국이 나선 것을 감안하면 고 이동찬 명예회장의 지분 상속세나 각종 비리와 관련된 문제도 당국이 한 번쯤은 들여다 볼수도 있다는 말들도 들린다"며 주변 반응을 전했다.
한편, 코오롱은 2013년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은 후 523억 원에 달하는 추징금을 맞은 바 있다. 당시에는 중부지방국세청이 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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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tf.co.kr/read/economy/1637278.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