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박지혜 기자] "면세점이 더 문을 연다고 관광객이 늘어나나요?"
정부가 서울 시내에 추가로 면세점 4곳을 선정하겠다고 밝히면서 면세점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기존의 면세점을 운영하던 기업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다음 달 면세점 문을 닫는 롯데와 SK가 정부의 추가 면세점 선정의 최대 수혜를 입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쪽에선 면세점 선정 작업이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추가 선정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발하고 있는 반면, 다른 한쪽에선 늘어나는 중국인 관광객을 잡기 위해선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과연 시장 상황은 어떤가. <더팩트>가 이슈 현장을 취재했다.
◆정부 면세점 추가 선정에 '희비 교차'
지난달 29일 정부가 서울 시내 면세점 4곳(대기업 3곳·중소기업 1곳)을 추가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하면서 기존 면세점 운영자들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국회는 면세점업에서 재벌의 특혜를 없애겠다며 사업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는 관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그러나 관세청은 1년도 안돼 새로운 면세점 제도개선안을 발표했다. 골자는 사업권 기간을 다시 10년으로 연장하고, 신규 면세점도 6곳을 더 지정하겠다는 것이다. 시내면세점 추가는 법 개정 사항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관세청의 고시 개정만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국회 논의를 거치지 않고 정부 방침대로 추진할 수 있다.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에 면세점 업계는 혼란스럽다는 분위기다. <더팩트>는 3일 서울의 한 면세점을 찾았다. 이 면세점은 중국인, 일본인 등의 관광객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1층 로비는 발 디딜틈 없을 정도로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최근 서울 시내에 면세점이 4곳이나 추가된다는 소식에 일부 직원들은 밀려드는 관광객에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눈치다.
한 직원은 "면세점이 4곳이나 늘어나게 되면 당연히 매출이 하락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며 "면세점을 늘린다고 관광객들이 더 한국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른 직원들도 거들며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이같은 생각은 외국인 관광객과 함께 다니는 여행사 직원도 마찬가지였다. 한 관계자는 "한국의 면세 쇼핑이 엄청 특화된 것도 아니고, 그것만 보고 한국에 들어오는 관광객은 없다"며 "관광 시설 등은 그대로인데 면세점만 늘린다고 외국인들이 더 들어올 것도 아니고, 오히려 면세점끼리 출혈경쟁만 일어날 것 같다"는 의견을 보였다.
또 다른 여행사 관계자 역시 "관광객들은 계속 줄어드는데, 면세점만 늘리는 정부의 정책을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실제 지난해 한국을 찾은 관광객은 1323만1651명으로 전년보다 6.8% 감소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줄어든 것은 2003년 이후 12년 만이다. 또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 여행객으로부터 벌어들인 수입은 151억7690만 달러로 전년(177억1180만 달러)보다 14.3% 줄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면세점 사업자를 늘리는 것은 오히려 경쟁 약화를 불러 올 것이라는 지적이다.
반면 정부의 이같은 결정에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직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면세점 추가 선정에 롯데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아예 문을 닫는 상황까지는 안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면세점 업계 출혈 경쟁 예고
정부의 이번 발표를 두고 업계에서는 이미 대기업 3곳이 정해진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해 면세 사업권을 잃은 SK네트웍스(워커힐점)와 롯데(월드타워점), 그리고 지난해 입찰에 실패한 현대백화점이 그 대상이다.
SK워커힐 면세점과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은 이번달 16일과 다음 달 말에 문을 닫아야 한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두 곳은 정부의 이번 발표에 사활을 걸고 있다.
반면 '출혈 경쟁'에 대한 기존 면세점 관계자들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의 추가 면세점 사업자 선정 발표 직후 증권가에서는 기존 면세점들의 수익성 악화를 예상하며 주가를 일제히 하락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HMC투자증권은 호텔신라에 대해 서울 시내면세점이 추가로 선정되면 수익성 둔화가 불가피하다며 목표주가를 8만5000원으로 내렸다. 투자의견은 '매수'를 유지했다.
박종렬 연구원은 "호재(특허기간 10년 연장→국회법안 통과 필요)는 멀고, 악재(면세사업자 증가로 경쟁심화와 수익성 둔화)는 가까이 있다는 것이 문제"라면서 "중장기 관광한국을 통한 면세시장 성장 전망은 양호하나, 단기적으로는 실적 둔화가 불가피해 현재의 적지 않은 멀티플 프리미엄의 정당성에 심각한 도전 국면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최민하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면세점 시장이 출입국자수 증가에 힘입어 지속 성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단기 경쟁 심화는 불가피할 것"이라며 "추가 면세점이 개점하게 되면 업체간 마케팅 경쟁 심화 뿐 아니라 브랜드 유치 경쟁도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보며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의 목표주가를 기존 대비 14% 내렸다.
반대로 면세점 사업권을 획득할 것으로 꼽히는 유력한 대기업인 롯데,SK,현대백화점의 주가에 대한 기대감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SK증권은 기업들의 면세점 사업권 획득에 주목했다. 김기영 SK증권 연구원은 "관세청이 대기업 3곳과 중소기업 1개에 대한 면세점 추가 특허 방안 발표로 5월 공고 이후 10~11월 심사를 거쳐 내년 초부터 영업 재개 가능성이 있다"며 "면세점 사업 특허를 재획득할 경우 성장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