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먹고사는 일과 관련된 분야입니다. 한 나라의 경제가 발전하면 국민의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TF비즈토크]는 갈수록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경제 분야를 취재하는 기자들이 모여 한 주간의 흥미로운 취재 뒷이야기들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만든 코너입니다. 제 아무리 똑똑한 인공지능이 나온다 해도 현장 취재를 대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우리 경제 이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을 들여다보기 위해 현장을 누비고 있는 <더팩트> 성강현·최승진·장병문·황진희·박대웅·서재근·황원영·변동진·박지혜·김아름·이성락·서민지 기자가 나섰습니다. 지난 한 주간 미처 기사에 담지 못했던 경제 취재 뒷이야기를 지금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더팩트 | 정리=서재근 기자] 지난주 재계 최대 화두는 단연 기업 회장을 비롯한 재벌가의 '갑질'이었습니다. 영화 '베테랑'에 나오는 조태호(유아인 분)를 보면서 '에이, 설마 저런 인간이 있겠어?'라며 질문을 던진 분들도 많았을 텐데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회장님들의 갑질에 온 국민이 충격에 빠진 한 주였습니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재벌 '갑질 논란'은 물론 한 주 동안 재계 다양한 이슈 현장을 찾은 <더팩트> 경제팀 기자들이 전하는 뒷이야기를 들어보시죠.
◆ '경비원 폭행' 정우현 회장, 처음부터 나갈 수 있었다
-'경비원 폭행' 사건으로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정우현 MPK그룹 회장이 결국 9일 경찰서 조사를 받았는데요. 지난 4일 사건이 발생한 현장에 도착했을 때 피해자 동료 경비원들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들으셨다고요.
-정 회장의 폭행이 보도된 4일 사건 현장에는 많은 기자들이 몰렸습니다. 지나가는 행인, 주변 상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걸음을 멈추고 현장에 몰려들 정도였죠.
-당시 함께 근무했던 경비원 동료들은 폭행 사건에 대해 어떤 얘기를 해줬나요?
-피해자 동료들도 이번 사건에 대해 많이 놀란 것 같더라고요. 많은 기자들이 몰려 설명하기 귀찮았을 수도 있었는데 경비원 황 씨가 밝힌 내용을 모두 말해줬습니다. 특히, 애초 정우현 사장의 변명과 달리 사건이 발생한 건물 구조상 정문 셔터를 내려도 뒷문을 이용해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하더군요.
이들은 "뒷문으로 나가면 그만인 일을 꼭 정문으로 나가겠다고 사람을 때릴 수 있냐"며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정 회장이 후문 아닌 정문으로 출입해야겠다는 특권의식이 있었던 거 아니냐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습니다. 실제로 기자가 확인해보니 건물 뒷문은 매장과 연결돼 있어 통행에 전혀 불편이 없었습니다.
동료들의 말에 따르면 폭행을 당한 황 씨는 평소 성격이 온순해 지인들 사이에서 '선비 같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고 하네요. 무엇보다 가장 경비원들을 화나게 한 것은 경찰에 폭행 사실을 신고하는 사이 정 회장이 도망을 갔다는 겁니다. 경찰에 신고 후 정 회장에게 신고 사실을 전달하려 했지만, 정 회장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는 게 이들의 설명입니다. 아마도 아래 직원들이 잘 알아서 해결할 것이라 믿었던 거 아닐까요.
-매장 직원들은 이번 폭행사건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어떤 말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정 회장 사건이 처음 수면에 오른 지난 4일 오후 2시께 해당 매장 아르바이트 여성 3명을 만나 폭행 당시 상황이나, 당일 매장 분위기 등을 물어봤죠. 그런데 이들은 마치 한 사람이 이야기 하듯 "저희는 아르바이트 근무자라 잘 몰라요"라고 대답했어요.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마치 사전에 철저하게 교육을 받은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 현대비앤지스틸, 회사 얼굴 정일선 사장 '갑질 매뉴얼' 논란 속 굳게 닫은 입
-지난주 재벌 회장의 '갑질' 논란은 정우현 회장만의 문제가 아니었죠. 수행기사에게 일삼은 폭언과 욕설, 폭행 등 상식을 벗어난 '만행'이 공개돼 곤욕을 치른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이야말로 '최악의 갑질'이라는 불명예를 떠안게 됐는데요. 회사의 대응 역시 평범하지 않았다고요?
-지난 8일 오후 회사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하며 사태수습에는 나섰지만, '보여주기 식' 사과라는 쓴소리만 듣고 있는 정일선 사장인데요. 회사 대표의 실수가 워낙 커서였을까요. 정일선 사장의 갑질 파문이 불거진 이날 회사 측 견해를 들어보기 위해 업무시간인 오전 9시부터 연락을 시도했지만, 그 누구도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황당했습니다. 물론 회사 측도 기자들의 연락이 쇄도할 것이라는 예상이야 어느정도 했겠지만, 홈페이지에 기재된 회사 대표 번호 마저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경우는 없으니까요. 반나절을 '모르쇠'로 일관하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하자 팝업창 형태로 사과문을 올리는 회사 측의 대응을 보고 있으니 정 사장도 회사도 어쩌면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현대家' 3세라는 정일선 사장의 타이틀 때문에 '정 씨 일가'가 소속된 기업 관계자들도 곤욕을 치렀다는 얘기도 들리는데요.
-'곤욕'까진 아닐지라도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일부 회사 홍보팀도 '불편한 하루'를 보냈다고 보는 것이 맞겠네요. 정일선 사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넷째 아들인 고 정몽우 전 현대알루미늄 회장의 장남으로 노현정 전 KBS 아나운서의 시숙(媤叔)입니다. 가족 이력만으로도 파장이 더욱 커질 만한 상황이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건의 중심에 있는 현대비앤지스틸 측이 입을 굳게 닫아버리면서 정 사장에 대한 질문 세례가 엉뚱한 기업에 이어지는 분위기였습니다. 특히, 정일선 회장 관련 기사마다 그의 가족관계를 소개하면서 'OOO 동생의 아들'과 같은 표현이 꼬리표처럼 붙으면서 일부 홍보팀에서는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기도 했다는 후문입니다. 아무리 가족 간이라도 상식 밖의 '갑질'에는 동정표를 던지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 공사대금 '58억 원' 차일피일 미루던 SK건설, 취재 시작하자 바로 '완불'
-SK그룹의 건설 계열사 SK건설이 하청업체에 공사대금 58억 원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데 무슨 사연이죠.
-지난 5일 파주장문협력업체라는 단체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 소유의 자택이 있는 한남동 고급 빌라 단지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었습니다. 이들은 SK건설의 하청을 받은 이테크건설의 하도급 업체 서현컨스텍과 계약을 맺고 지난 2013년 장문복합화력발전소 공사 현장에 투입된 인력으로 지난해 9월부터 지난 2월 말까지 공사대금 58억 원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의 사연과 공사금 체불 내막을 취재하고자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SK건설, 이테크건설, 서현컨스텍, 협력업체 단체 등을 상대로 취재를 했는데요. SK건설 측으로부터 '장문복합화력발전소 공사대금 체불 건에 대해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답을 받기까지 꼬박 하루가 걸렸습니다. 그만큼 회사 측에서 주목도가 떨어지는 사안이라고 판단한 셈이었던 거죠.
그런데 취재를 시작한 지 3일 만인 지난 8일 협력업체 관계자로부터 뜻밖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공사대금 문제가 해결됐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취재 이후 신속하게 대금 문제가 타결됐다"고 말했습니다. 결과 여부를 떠나 일단 허무했죠.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될 사안을 굳이 6개월을 끌어온 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혹여, 여론 악화를 우려한 회사 측이 부랴부랴 사태를 마무리한 건 아닌지 개운치 못한 '뒷맛'이 남는 취재였습니다.
◆임대홍 대상그룹 창업주 별세, 너무 평범해서 눈에 띈 장례식
-지난 5일 '국민 조미료' 미원을 만든 임대홍 대상그룹 창업주가 노환으로 별세했습니다. 그동안 재계 원로 장례식과 다소 다른 풍경이었다고 하던데, 현장 상황이 어땠나요?
-지난 6일 임대홍 창업주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는데요. 빈소를 찾기 위해 1층 안내 전광판을 살폈는데 임대홍 창업주의 이름이 보이지 않아 한참을 헤매다 장례식장 직원에게 물어 알게 됐습니다. 빈소 앞 역시 전광판에 안내 문구가 없고, 복도에 조화 하나 없이 조용한 모습이더라고요. 취재진도 많이 찾았을 거란 예상과 달리 기자들도 보이지 않아 당황스러울 따름이었습니다.
-장례식이 그렇게 조용하게 진행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족장으로 조용하게 치러달라는 고인의 유지에 따라 외부 조문이나 조화를 받지 않고 진행했다고 합니다. 빈소 바로 앞에 가족들이 보낸 것으로 보이는 조화 3, 4개를 제외하곤 특별한 게 보이지 않아 소박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관계자에게 들어보니 실제로 가족 외 사람이 보낸 조화는 돌려보내기도 했다네요. 취재진 사이에서도 대상 측의 요청에 취재보다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조용히 보내려는 일종의 '암묵적인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사진은 물론 현장 취재 없이 다들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는데요. 임대홍 창업주가 '은둔의 경영자'로 불렸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장례식장에서도 알 것 같았습니다.
-'은둔의 경영자'라고 불린 임대홍 창업주는 어떤 인물입니까?
-임대홍 창업주는 1920년 전북 정읍 출신으로 식품연구가로 활동했는데요. 경영 일선에 있을 때도 대외 활동을 극도로 삼가고 오로지 연구에만 매진했다고 합니다. 특히 미원을 만든 인물로 유명하기도 한데요. 구두 두 켤레를 동시에 가져본 적 없고, 골프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며 골프장을 찾지 않는 등의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자린고비'로도 유명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