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재근 기자] 재계 서열 1, 2위인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이하 현대차그룹)이 주요 계열사의 거처를 옮기는 대대적인 '정리 정돈'에 나선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 두 그룹 간 계열사별로 본사 이전 시행 시기에 차이는 있지만, 대규모 사옥 이전 프로젝트가 '그룹의 미래비전 실현을 향한 전환점'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재계 '투톱'의 변화와 그에 따른 파급 효과에 대한 업계 안팎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
◆ '짙어진' 이재용식 '실용주의'…삼성전자, 8년간 '강남 살이' 종지부
삼성그룹의 사옥 이전의 핵심은 '각 사업 부문의 업무 효율성 극대화'다.
22일 삼성그룹에 따르면 서울 서초사옥 C동에 들어선 삼성전자는 홍보 인력 등 극히 일부만 제외한 모든 인력이 다음 달 18일부터 사흘 동안 수원 영통구에 있는 디지털시티 본사로자리를 옮긴다.
이미 지난해 말 연구개발(R&D) 및 디자인 인력 5000여 명이 서초구 우면동 삼성 서울 R&D 캠퍼스로 이동한 바 있어 지난 2008년부터 시작된 삼성전자의 '강남 살이'는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삼성전자가 빠진 서초사옥에는 태평로 일대에 사옥을 두고 있던 삼성생명과 삼성증권, 삼성카드 등 금융계열사가 들어선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삼성그룹의 인력 배치 이동의 핵심은 삼성전자의 변화"라며 "서초 사옥이 가진 '상징성'을 포기하는 대신 연구개발 인력을 비롯한 실무진을 제조공장이 들어선 수원 쪽으로 배치했다는 것은 업무의 효율성과 실용성을 강조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의중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룹 경영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미래전략실 인력은 서초 사옥에 그대로 남는다. 대외 홍보 업무를 담당하는 홍보부서 인력은 태평로 삼성본관 또는 R&D 캠퍼스로 이동하는 방안이 검토 중이다.
삼성물산 역시 사업부문별로 인력 배치를 달리한다. 지난해 서울 도곡동 군인공제회관으로 자리를 옮긴 패션부문에 이어 서초사옥 B동에 입주한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상사부문 역시 다음 달 중순부터 각각 판교의 알파돔시티와 잠실 삼성SDS타워(향군타워)로 옮겨간다. 리조트부문 인력은 판교 알파돔시티로 이동한다.
삼성그룹의 대대적인 인력 배치 이동을 두고 일각에서는 이 같은 변화의 움직임이 '이재용 체제' 전환 이후 삼성이 강조하는 실용주의 경영의 연장선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또 다른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재 이후 사실상 그룹 경영의 최정점에 선 이재용 부회장은 최근 1~2년 사이 화학 계열사 매각, '통합 삼성물산'의 출범 등 대규모 사업 구조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며 "이번 사옥 이전 계획 역시 이재용 체제 확립 초기부터 거론되온 만큼 전자와 금융, 바이오 분야를 미래 비전으로 제시한 이 부회장의 '선택과 집중' 전략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현대차, 105층 '마천루' 글로벌 브랜드 도약 노린다
현대차그룹의 초대형 '통합사옥' 건립 프로젝트에도 재계 안팎의 관심이 쏠린다.
지난 17일 현대차그룹은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그룹 통합사옥으로 사용될 105층 타워를 비롯해 시민과 소통을 위한 시설인 공연장, 전시시설, 컨벤션, 업무시설 등 복합문화단지의 미래 모습을 담은 개발계획안을 발표했다.
현대차그룹은 옛 한국전력 부지(7만9342㎡)에 지상 및 지하를 합쳐 연면적 92만8887㎡ 규모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를 조성한다. GBC에는 초고층 그룹 통합사옥 건물과 호텔·업무시설, 공공성 강화를 위해 초기 사업 제안 당시보다 규모가 크게 확대된 공연장, 최첨단 시스템을 갖춘 컨벤션 및 전시시설 등 모두 6개 건물이 들어선다.
오는 2021년 준공 예정인 GBC에는 현대차와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현대제철 등 그룹 주요 계열사의 근무 인력 1만3000여 명이 집결할 것으로 알려졌다. GBC에 그룹 본사로서의 역할을 내준 양재동 사옥은 첨단 미래차연구센터로 활용, 경기도 화성의 남양연구소와 함께 연구개발의 양 축을 담당한다.
다음 달부터 인력 재배치에 들어가는 삼성과 달리 현대차는 내년 GBC 착공을 앞두고 있지만, 새로 들어설 GBC의 규모와 역할을 고려하면 그 파급효과는 상당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우선 GBC가 완공되면 그간 양재동 사옥과 관련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접근성'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 빌딩 두 채로 구성된 양재동 본사는 삼성과 SK 등 국내 대기업 사옥과 달리 인근에 상업, 편의 시설이 부족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대차는 신차발표회와 같은 주요 행사를 본사 아닌 시내 주요 특급 호텔이나 화성의 남양연구소에서 진행해왔다. 그러나 GBC가 완공되면 대규모 전시장을 확보할 수 있어 일반 행사는 물론 대규모 국제행사까지 수월하게 치를 수 있다.
GBC 건립 프로젝트는 현대차가 제시한 미래비전인 '글로벌 브랜드로의 도약'은 물론 '후계자'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향후 역할 변화에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지난해 현대차는 창립 이후 최초로 론칭한 별도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의 첫 번째 모델인 플래그십세단 'EQ900'을 공개해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로서의 도약을 선언했다.
특히, 정몽구 현대차 회장을 대신해 럭셔리 브랜드의 프리뷰 행사를 주관한 정의선 부회장은 지난달 미국 디트로열린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도 'G90(국내명 EQ900)'의 전도사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 도약의 첫발을 성공적으로 내디딘 현대차지만, 독일의 폭스바겐이 세운 복합 건축 단지 '아우토슈타트'와 같이 완성차 업체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할 수 있는 '랜드마크의 부재'가 아킬레스건으로 평가받아왔다.
GBC의 건립으로 현대차는 브랜드 이미지 제고 효과를 노린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지난해 현대차는 건립 계획 발표 초기부터 "삼성동 한전부지 개발로 한국의 '아우토슈타트'를 완성할 것"이라며 GBC의 정체성을 강조해 왔다.
현대차 관계자는 "비즈니스와 마이스(MICE), 문화, 엔터테인먼트, 스포츠, 쇼핑 등 일반 사무에서 문화체험과 여가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복합공간을 완성함으로써 국내 완성차 산업의 발전은 물론 국가 경제 발전에도 보탬이 되는 유기적인 '허브'를 조성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GBC가 들어서면 그동안 국외에서 시행한 각종 행사를 국내(현대차 본사)에서 시행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현대차의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넘어 관광 수요 확보 등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