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박대웅 기자] "국민이 나서달라"며 참여를 독려한 '경제활성화 입법 촉구를 위한 1000만 서명운동'이 '유령투표' 및 '관제서명' 논란 등으로 연일 시끄럽다.
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를 비롯한 38개 경제단체와 업종별 협회는 지난 13일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1000만 서명 운동본부'(이하 1000만 서명 본부)를 발족하고 범국민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대한상의 등 경제계 주도로 전개되고 있는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1000만 서명운동'은 경제활성화 법안의 국회 처리가 완료될 때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18일 경기도 판교 네오트랜스빌딩 앞 광장에 설치된 서명부스를 찾아 국회의 경제활성화 입법을 촉구하는 내용에 서명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오죽하면 이 엄동설한에 경제인들과 국민들이 거리로 나섰겠냐"며 "국민 여러분께서도 함께 뜻을 모아주시기 바란다"고 참여를 독려했다. 지난 13일 대국민담화 후 또다시 국민참여를 독려한 셈이다. 이후 지난 20일 삼성그룹을 시작으로 국내 LG와 롯데 등 굴지의 대기업은 물론 대한상의 등 경제단체들이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그 결과 1000만 서명 본부는 단 나흘 만인 지난 21일 13만명(21일 오후 6시 기준) 넘는 국민이 서명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재계 주도 형식을 빌린 1000만 서명운동이 박 대통령의 말과 서명 후 사실상 관제동원으로 변모되는 모양새라고 지적하고 있다.
더욱이 1000만 서명운동에 기업 임직원을 동원한 정황이 포착돼 논란을 키우고 있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참여연대·박원석 정의당 의원은 지난 20일 대한상의 및 경제단체, 업종별 협회와 회원사 간 주고받은 공문과 업무연락 등을 공개했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 14일 전경련, 중소기업중앙회, 전국은행연합회, 금융투자협회 등 32개 경제단체와 업종별 협회에 대한상의는 공문을 보냈다. 5대 노동관계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기업활력제고특별법 등 정부와 여당이 경제활성화법으로 부르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때까지 서명운동에 적극 참여해달라는 내용이다.
대한상의는 서명 참여 대상으로 각 단체·협회 ▲사무국 및 회관 입주사 임직원 ▲회원사 임직원 ▲각 기관에서 주관하는 행사와 교육 등에 참석하는 회관 내방자 등을 명시했다. 또 행정사항으로 각 협회·단체가 서명 인원 일일현황을 취합해 보내고, 서명운동 추진 현수막을 제작해 회관에 부착할 것을 요청했다. 아울러 온라인 서명을 홍보하고 동참을 유도하라고 했다. 사실상 1000만 서명운동이 경제단체와 소속 기업 및 기관의 임직원들을 동원한 서명운동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서명에 참여한 참여자의 진정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 <더팩트>는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나흘간에 걸쳐 모바일 스마트폰과 PC를 통해 대한상의가 운영하고 있는 민생입법 서명운동코너에 접속했다. 이어 서명에 참여했다.
취재진은 이름란에 '세종대왕' '홍길동' '홍길순' '스티브잡스' '더팩트' 등 의미없는 단어들을 입력해 서명작업을 진행했고, 주소 역시 불특정 지명을 선택해 서명하기를 클릭했다. 그 결과 '서명이 되었습니다'라는 서명완료 메시지가 선명하게 떴다.
이어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고 다시 투표했다. 결과는 마찬가지다. 세 번, 네 번, 다섯 번을 진행해도 결과는 같았다. 횟수와 상관없이 몇 번이고 투표가 가능한 셈이다. 취재진이 다섯 번을 서명하는데 채 1분여도 걸리지 않았다.
이는 1000만 서명운동 본부가 설명한 나흘간 13만명이 넘는 참여인원이 유의미한 수치인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일반적으로 오프라인을 통해 진행되는 서명운동에는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생년월일 등의 정보를 적게 한다. 이는 서명에 대한 책임과 중복 서명을 막기 위한 것이다. 또한 자필로 서명을 남김으로써 서명에 대한 개인의 책임감 또한 부여된다. 서명의 진정성을 확보하는 장치가 요구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명운동 본부 측은 22일 온라인상의 '중복 서명' '유령 서명'이 별다른 제약 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에 대해 알고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즉답을 회피했다. 운동본부 한 관계자는 "중복체크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아이피, 이름, 주소 등 중복을 체크하는 기준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또 13만명이 집계된 것은 중복을 거른 것이냐고 묻자 "잘 모르겠다"며 사실상 중복서명을 걸러내는 장치가 부재함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