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정몽구 회장, '아슬란' 흥행실패 '신상필벌' 인사 원칙 적용할까
[더팩트 | 서재근 기자] 대기업 연말인사 시즌이 다가온 가운데 현대자동차그룹(이하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인사권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실적 부진에 따른 '문책성 인사'에 나설지, 그룹 중책을 앞두고 인력 보강과 사기 진작 차원의 '힘 실어주기 인사'를 선택할 지 선택의 갈림길에 섰기 때문이다.
대기업 연말인사의 일대 원칙인 '신상필벌'을 강조해 온 정몽구 회장인 만큼 이번 인사에서 자사에 '굴욕'을 안겼던 '아슬란'의 개발 및 마케팅 관련 '윗선'에 대해 문책성 인사에 나설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글로벌 시장 저변 확대와 사상 첫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의 출범이라는 굵직한 이슈라는 과제가 남아 있어 인력 충원 쪽에 더 힘을 실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을 전후해 부사장급 이하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26일 현대차와 업계에 따르면 올해 역시 예년과 비슷한 시기에 연말 인사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은 삼성, LG그룹 등 다른 대기업과 달리 정기 인사에서 파격적인 '물갈이 인사'에 나서는 대신 글로벌 시장 현황 등 주요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사장급 고위층 인사를 수시로 진행해왔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지난해 10월 수입 대형 세단의 대항마로 출시한 대형 전륜 세단 '아슬란'이 출시된 지 1년이 지났다. 그러나 지난달 월 판매량이 400대에도 못 미치며 역대 최저실적을 기록하는 등 '낙제점' 수준의 성적을 거뒀다.
현대차에 따르면 아슬란은 지난 10월 한 달 동안 375대가 판매됐다. 이는 전달 821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로, 자사 대형 세단인 '그렌저'(6834대), '제네시스'(3248대)와 비교해도 턱없이 모자라다.
특히, 출시 7개월 만인 지난 5월에는 최하위 트림인 '모던' 모델의 가격을 기존 3990만 원에서 95만 원 내린 3895만 원으로 낮추고, 8월에는 아슬란 구매 고객이 한 달 내 교환을 요구하면 '제네시스'나 '그렌저'로 교환해 주는 프로모션을 시행하는 등 고급차로서 이미지 실추가 불가피한 고육지책에도 실적은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더욱이 형제 브랜드인 기아자동차(이하 기아차)의 플래그십세단 'K9'의 흥행실패에 이어 두 번째 '실패'라는 오명을 안겨줬다는 점도 뼈아프다. 지난 2012년 'K9' 출시 당시 정몽구 회장이 직접 홍보맨을 자처하는 등 마케팅에 열을 올렸지만, 결과는 초라했다. K9의 실패를 경험 삼아 수천억 원의 개발비를 쏟아부은 아슬란이 1년여 만에 또다시 '애물단지'로 전락하면서 업계 일각에서는 두 차종에 대한 조기 단종설까지 나온다. '아슬란' 문책 인사설이 현대차 그룹 안팎에서 나돈지는 오래됐다.
아슬란의 부진으로 어깨가 무거워진 곳은 현대차 마케팅사업부다. 각종 프로모션을 기획하며 '심폐소생술'에 나섰지만, 이렇다 할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해당 부서에 대한 연말 인사 '칼바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간 정몽구 회장이 보여준 인사 행보도 이 같은 관측에 무게를 싣는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수시 인사를 단행, 신종운 품질담당 부회장과 안병모 기아차 북미총괄 부회장을 퇴진시키고, 담도굉 사천현대기차 판매담당 부사장을 중국전략담당으로, 이병호 현대위아 공작·기계·차량부품사업 담당 부사장을 베이징현대차 총경리로, 김견 기아차 기획실장 부사장을 중국법인 둥펑웨다기아차 대표로 임명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경영실적에 따른 성과주의 인사는 대기업 연말 인사의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이다. 자동차의 경우 출시 이후 1년 동안의 실적으로 사실상 실패냐 성공이냐를 가늠하는 데 아슬란의 실적을 살펴보면 사실상 흥행에 실패했다고 판단된다"며 "아슬란이 국내 전륜 최고급 세단이라는 콘셉트로 수천억 원의 개발비를 들여 개발한 모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슬란의 실패에 대한 문책성 인사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현대차의 연말 인사와 관련해 "큰 폭의 변화가 없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옛 한전부지에 들어설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와 최초로 론칭한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의 성공적인 안착이라는 중대 과제를 앞둔 만큼 '문책'보다 '인력 보강' 쪽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제네시스 브랜드의 처녀작인 플래그십세단 'EQ900'은 지난 23일 사전계약 첫날 4342대의 실적을 거두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09년 2월 에쿠스가 기록한 1180대와 비교해 4배에 달하는 수치이자, 2013년 11월 제네시스의 3331대보다 1000대 가량 더 많은 수치다. 초반 흥행 분위기를 유지, 확대하기 위해서라도 고급차 개발 관련 부서 등에서 승진 인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대차가 이미 연내 중국 시장에서의 실적 부진 등을 이유로 문책성 인사를 단행한 만큼 올 연말에는 인사 폭이 크지 않을 것"이라며 "특히, 이달 초 론칭한 '제네시스'가 고급차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로 남아 있는 만큼 고급차 개발 관련 부서를 중심으로 소폭의 승진 인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연말 인사는 예년과 비슷한 시기에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라면서 "그러나 매년 인사 때와 마찬가지로 실제 인사가 시행되기 전까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알 수 없다. 올해 역시 인사 규모나 방향 등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