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환규 전 의사협회장, 국내 제약사 '온실 속 화초' 비판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블로그를 통해 국내 제약산업 환경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 페이스북 갈무리

노환규 회장 "국내사, 제네릭 기반 현실 안주"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현 의료희망연구소 소장)이 국내 제약산업 생태계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그는 제약업체들이 정부가 마련해놓은 안전장치로 인해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 전 회장이 이처럼 비판한 까닭은 다국적 제약사들이 활발한 인수합병(M&A)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동안 국내 제약사는 리베이트 영업 및 제네릭에 의존하며 현실에 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31일 노환규 전 의협회장은 자신의 블로그에 국내 제약사를 비판하는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노 전 회장은 국내 제약산업에 대해 “연구개발과 활발한 인수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우기보다는 제네릭을 기반으로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고”고 지적했다.

제네릭이란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신약)을 그대로 카피(copy)한 복제약이다. 오리지널보다 개발비용부담이 적고, 약가 또한 저렴한 것이 특징이다. 또 기존 신약이 이미 시장에 진출해있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낮아 마케팅이 수월하다.

문제는 제네릭으로 인해 리베이트 영업이 당연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개발비용부담이 적고 진입장벽이 낮은 까닭에 수많은 국내 제약사들이 제네릭에 뛰어들기 때문에 경쟁이 과열될 수밖에 없다. 이에 업체들은 의사들에게 ‘우리 제품을 처방해 달라’며 리베이트를 제공하게 된다.

여기에 보건당국이 국내 제약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높은 복제약가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전문의약품은 일반 공산품과 달리 대부분 보험급여 대상이기 때문에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보험급여를 받는다. 만약 신약 개발을 등한시하고 제네릭의 의존하는 업체들이 많아지면 건강보험재정 악화로 이어진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실제 보건복지부는 제네릭 의존에 따른 건강보험재정 악화와 리베이트 근절, 연구개발 부진 등의 명목으로 지난 2012년 일괄약가인하를 시행했다. 일괄약가인하란 특허만료 후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제네릭이 3개 이상 등재된 경우 오리지널과 제네릭 모두 53.55%로 약가를 인하하는 정책이다.

그러나 일괄약가인하 역시 그 효과가 미비한 실정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최근 5년간(2010년∼2014년) 건강보험 급여의약품 청구금액에 대해 분석한 결과, 2010년 대비 2014년 청구금액은 약 5.3% 증가한 13조 4491억 원으로 나타났다.

약가일괄인하가 시행된 2012년에 2.64% 감소했을 뿐 2013년과 2014년에는 각각 1.28%, 1.57%씩 각각 증가했다.

노 전 회장은 “겉으로는 제약강국과 신약개발을 외치지만 여전히 리베이트 영업에 의존하며 가족경영을 지켜내고 있다. 정부가 국내 제약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높은 복제약가를 고수하고 있는 한 국내 제약회사들은 연구개발에 몰두하지 않고서도 안정적인 수익창출을 유지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변화가 절실하지 않기 때문에 인수합병을 통한 대형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세계 50위 안에 들어가는 제약회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 제약회사가 전무하다”고 덧붙였다.

미국계 다국적 제약사 화이자는 활발한 인수합병을 통해 41개 제약기업이 녹아있는 기업으로 발전했다. /더팩트DB

일례로 미국계 글로벌 제약회사 화이자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정부의 요청에 의해 ‘페니실린’을 대량생산하면서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이를 발판으로 1950년 테라마이신(항생제)를 비롯해 1967년 바이브라마이신(광범위 항생제), 1980년 펠덴(소염제), 1986년 유나신(주사형 항생제), 1992년 졸로프트(항우울제)과 노바스크(고혈압치료제), 1995년 카듀라(전립선비대증치료제), 1997년 리피토(고지혈증치료제), 1998년 비아그라(발기부전치료제) 등 초대형 신약 개발에 성공하며 세계시장을 주름잡았다.

화이자의 성공에는 신약과 함께 굵직한 인수합병도 있었다. 2000년 워너 램버트 제약회사를 약 870억 달러(100조 원)에 인수한 바 있으며 2002년 파마시아를 600억 달러(69조 원)에, 2009년 와이어스 제약을 680억 달러(78조 원)에 인수했다. 또 올 2월 호스피라를 152억 달러(17조 원)에 사들였다. 이들 회사들이 다른 기업과 합병한 것까지 고려하면 41개 제약기업이 화이자에 녹아있는 셈이다.

글로벌 매출 1위를 기록하는 스위스의 노바티스도 30개 회사가 합병돼 만들어졌다. 독일의 머크 역시 30개, 사노피 28개, 아스트라제네카 20개 등 세계적 회사일수록 인수합병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와 달리 국내 제약사는 이렇다 할 인수합병이 전무한 상황이다. 사진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유한양행, 동아쏘시오, 한미약품, 녹십자 /각사 제공

반면 국내 제약사의 경우 이렇다 할 대형 인수합병을 찾아보기 힘들다. 인수합병에 가장 적극적인 녹십자는 녹우제약, 상아제약, 경남제약, 이노셀 등 4차례에 걸쳐 인수합병을 시도했다, 하지만 녹우제약과 경남제약 등 2개 제약사는 시세차익을 내고 되팔았다.

동아쏘시오그룹은 지난 2010년 삼천리제약, 대웅제약은 올해 한올바이오파마를, 유한양행은 전무한 상황이다. 한미약품의 경우 2000년 동신제약을 인수했지만 3년 후 시세차익을 내고 되팔았다.

노 전 회장은 “다국적 제약사들은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서로 다른 장단점을 가진 제약회사들의 인수합병이 필수적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며 “국내 제약사들은 제품이 중복되는 경우가 많아 ‘굳이 덩치를 키울 이유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복제약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이스라엘의 대표적 제약회사인 테바(TEVA)를 보면 그 답변이 적절한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1976년 기존의 3개의 약도매상이 합병하여 탄생한 테바는 이후 14개의 제약회사를 인수함으로써 덩치를 키웠다. 현재는 세계 1위의 복제약 전문회사로 등극했다”며 “지난 7월 26일, 앨러간의 복제약 부문을 405억 달러(47조 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공룡이 더 큰 공룡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제약사들이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규모를 키우는 것이 급선무다. 이제라도 정부는 우리나라 제약기업들이 세계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온실의 비닐 막을 거두어야 할 것이다”이라고 강조했다.

[더팩트 | 변동진 기자 bdj@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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