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팽한 노사 대립, 결국 파업으로 이어져
우려가 현실이 됐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임금협상과 관련해 회사와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국 부분 파업에 돌입했다.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중공업 파업은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선거에 출마한 정몽준(64) 전 의원에게도 돌발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의 보이지 않는 견제를 받고 있는 정몽준 전 의원은 바로 현대중공업 경영의 절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최대주주(10.15%)이기 때문이다. 미셸 플라티니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 등 강력한 라이벌들을 상대로 선거전을 펼쳐야하는 정 전 의원으로선 현대중공업 파업이란 또 하나의 짐을 안고 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6일 현대중공업 노조는 오후 2시부터 3시간으로 계획된 부분파업에 들어갔다. 파업이 시작되면 지단별(분과별) 지정장소에서 지단 파업 출정식을 가진 뒤 30분 간 지단별 행진을 실시했다. 또 오후 3시 30분부터 울산 본사 노조사무실 앞 상설무대에서 중앙 파업 출정식을 진행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해 20년 만에 파업에 들어간 바 있다. 올해로 2년 연속 파업이다. 전체 1만 7000여 명의 조합원 중 이번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의 규모는 노조 측 추산 약 6000여 명에 이른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회사 측에 ▲임금 12만7560원(기본급 대비 6.77%) 인상 ▲직무환경수당 100% 인상 ▲고정성과급 250% 보장 ▲기본급 3% 노후연금 적립 ▲통상임금 1심 판결결과 적용 ▲임금·직급체계 및 근무형태 개선을 위한 노사 공동위원회 구성 ▲성과연봉제 폐지 ▲사내하청노동자 처우개선 등을 요구했다.
또 노조는 지난달 21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총 조합원 1만6748명 중 1만713명이 투표한 가운데 9966명(59%)이 찬성표를 던져 파업 안건을 통과시켰다.
회사 측은 지난달 27일 여름휴가가 시작되기 전 ▲임금동결 ▲생산성 향상 격려금 100% 지급 ▲안전목표달성 격려금 100만원 지급 등을 담은 안을 제시했지만 노조 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근 휴가 일정을 끝내고 현대중공업 노사는 세 차례 단체교섭을 진행했지만 팽팽한 입장차만 확인했을 뿐 진전이 없었다. 이날 진행되는 노사 교섭 역시 노사 양측 모두 한 걸음도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소득이 없었다.
회사 측 관계자는 "회사의 사정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노조의 요구를 수용할 상황이 아니다. 지금까지 내세운 원칙에서 변화는 없다"라고 못 박았다. 현대중공업은 7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창사 이래 최악의 실적인 3조 원대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는 3634억의 영업손실을 입었다. 계속되는 수주 부진과 마진 압박 등으로 하반기 실적개선 여부도 불투명한 가운데 회사 측 입장에서 노조의 파업은 경영 악화에 적잖은 파장을 가져 올 것으로 예상된다.
노조 측은 회사 측의 입장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노조 측 관계자는 "임금은 노동자의 생활수단이며 재료비에 속한다"면서 "회사경영 실적과 연동되는 것은 성과급이지 임금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또 "회사는 잘나갈 때도 어려운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이유로 임금을 동결시켰다"면서 "이제 와서 상황이 어렵다고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과거 회사는 수익을 회사 몸집을 불리는 데 썼으니 이제 투자금을 거둬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중공업의 직원들의 평균 근속은 17년 6개월이며, 이들의 평균 연봉은 7523만 원이다. 이 금액을 근거로 고액 연봉을 받는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서 이기적인 파업을 벌인다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노조 측에 따르면 현재 조합원의 평균 시급은 7845원이다. 1~3년차 노동자의 임금은 최저임금에 근접하는 수준인 것으로 나타나는 등 실제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실제로 수령하는 평균 임금은 공시된 금액과는 차이를 보인다고 노조 측은 주장한다.
◆ 노사 갈등, 최대주주 정몽준 전 의원의 FIFA 회장 선거에 악재?
노사의 팽팽한 입장 차는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인 정몽준 전 의원에게 그 불똥이 튀고 있다. 그가 현대중공업의 실질적 오너이자 최종 의사결정권자라는 안팎의 인식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의 지분 구조는 최대주주인 정몽준 전 의원 10.15%를 비롯해 ㈜현대미포조선 7.98%, 아산사회복지재단 2.53%, 아산나눔재단 0.65% 등으로 이뤄져있다. 노조 측 한 관계자는 "이번 파업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당연히 정몽준 전 의원이 가지고 있다"면서 "최근 FIFA 회장 선거 출마했지만 거기만 신경쓸 것이 아니라 현대중공업 최대주주로서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정몽준 전 의원은 FIFA 회장 선거와 관련 난관에 봉착했다. 지난 19일 미국 매체 '블룸버그 통신'이 'FIFA 윤리위원회가 2010년 당시 정몽준 후보가 파키스탄 홍수와 아이티 대지진을 돕기 위해 각각 40만 달러(약 4억 7000만 원)와 50만 달러(5억 9000만 원)를 기부한 것에 두고 조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또 이 매체는 FIFA 윤리위원회가 2010년과 2022년 월드컵 개최지 결정을 앞두고 한국유치위원회가 발표한 7억 7700만 달러(약 9277억 3000만원) 규모의 세계축구기금 조성 계획에 대해서도 조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몽준 전 의원에 대한 기부금 관련 의혹이 제기됐다.
정몽준 전 의원 측은 "순수한 인도적 지원마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비윤리적 행태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의혹 제기와 함께 현대중공업 노사 갈등 상황이 정몽준 전 의원의 FIFA 회장 선거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 같은 우려를 뒷바침하는 사례로 정몽준 전 의원이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던 때가 거론된다. 당시 현대중공업 노동자 8명이 연쇄적으로 현장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서울시장보다 현대중공업 문제부터 해결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런 사태가 정몽준 전 의원이 선거 운동에 악재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정몽준 전 의원이 이번에 도전하는 FIFA 회장 선거에도 현대중공업의 부진한 실적과 노사 갈등이 회자되지 말란 법은 없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FIFA 회장 선거의 강력한 후보자 미셸 플라티니가 이 점을 이용해 "FIFA 회장보다 현대중공업 문제부터 해결하라"고 목소리를 낸다면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정몽준 전 의원에게는 내년 총선과 이듬해 대선 카드가 남아있기 때문에 현대중공업의 상황은 정몽준 전 의원의 정치적 행보에서 족쇄처럼 따라다닐 가능성도 적지 않다.
과연 정몽준 전 의원은 성공적인 FIFA 회장 선거를 위해서라도 현대중공업 노사 갈등에 개입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 측 관계자는 정몽준 전 의원에 대해 "(정몽준 전 의원이) 회사 경영에 일체 관여하는 바가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현대중공업 노조는 28일 간부급이 모두 서울로 올라가 대 정부 투쟁에 들어간다. 또 다음 달 9일에는 조선업종노조연대의 공동파업에 현대중공업 노조가 참여할 예정이다. 이 공동파업에는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을 포함한 9개사 노조가 참여해 각 회사 측의 임금동결안에 맞선다.
[더팩트 | 권오철 기자 kondor@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