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이재현 회장, 장자로서의 도리 다하기 위해 안간힘 쏟았다"
"관을 봉인하기 전 마지막으로 고인을 지켜보던 이재현 회장의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오열했다" 아버지 이맹희 CJ명예회장의 영정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이재현 회장의 '안타까운'모습을 지켜본 CJ그룹 고위 관계자의 전언이다.
아버지인 고(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빈소를 끝까지 지키지 못한 장남 이재현 회장이 고인을 마주한 것은 단 두 차례. 장자로서 해야 할 도리를 다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은 이재현 회장이었지만, 20일 진행된 이 명예회장의 영결식에서도 그는 끝내 참석하지 못했다. 병상의 이재현 회장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슬픔을 혼자 담아두기에는 벅찼다. 결국 그는 오열을 터트리며 고개를 떨궜다고 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부인인 홍라희 리움 관장 등 삼성 일가를 비롯한 범삼성가가 한자리에 모여 고인을 기리는 등 이맹희 명예회장의 별세는 삼성과 CJ그룹의 '화합의 계기'가 됐지만, 이재현 회장은 병마 앞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20일 오전 8시 서울 중구 필동 CJ인재원에서 이 명예회장의 영결식이 진행됐다. 한 시간 전인 오전 7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을 마친 유가족들은 장례식장에 이어 또 다시 한자리에 모여 슬픔을 나눴다.
이날 영결식에서 이재현 회장을 대신해 고인의 위패를 든 사람은 이 명예회장의 차남 이재환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의 아들 이호준 씨였고, 이재현 회장의 사위 정종환 씨가 영정을 든 채 그 뒤를 따랐다. 영결식이 시작된 지 한 시간 후인 오전 9시 고인의 시신을 실은 영구차량은 장지인 경기도 여주로 이동했다.
발인식과 영결식에 참석하지 못한 이재현 회장은 이 명예회장의 시신이 운구된 지난 17일에 진행된 입관식에 참석한 데 이어 전날(19일) 오후 11시 30분께 입관실(시신안치실)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CJ그룹 관계자는 "(이재현 회장은) 지난 17일 입관식 때와 19일에 휠체어에 의지한 채 환자복에 마스크를 쓴 차림으로 내려와 약 고인의 곁을 지켰다"라며 "고인의 관을 부여잡고 흐느끼는 이 회장을 바라보니 마음이 무거웠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이 회장은 마지막까지 장자로서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악화한 건강상태에도 최선을 다했다. 이맹희 회장의 빈소가 서울대학교병원에 마련된 것도 아버지를 국내에 모시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던 이 회장의 아버지 마지막 길이라도 가까이하겠다는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현 회장이 빈소는 물론 발인과 영결식 모두 불참하자 일각에서는 그의 건강상태가 매우 위중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만성신부전증으로 지난 2013년 8월 신장이식 수술을 받은 이후 말초 신경 및 근육이 위축되는 유전병 '샤르콧-마리-투스'의 악화와 고혈압, 저칼륨증, 단백뇨, 빈혈, 콜레스테롤 수치 증가, 치주염, 피부발진 등의 심각한 부작용 증상까지 더해져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법원에서도 이재현 회장의 건강상태가 심각한 상태라는 점을 인정하고, 그의 구속집행을 연기했다. 지난 2013년 7월 횡령 및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은 지난해 9월 법원으로부터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아 지금까지 병석에 누워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
또 다른 CJ그룹 관계자는 "이 회장의 안치실 방문과 관련해 의료진조차 약해진 면역력에 따른 감염을 우려해 만류했지만, 단 한 번이라도 아버지의 마지막을 살피겠다는 이 회장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편 비공개로 진행된 영결식에는 이재용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등 삼성가 삼 남매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정대철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손병두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임태희 전 대통령실 실장, 최경환 경제부총리 등이 참석했다.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해 홍라희 리움미술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등은 지난 17일 빈소를 찾았고,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은 다음 날인 18일 오후 남편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과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특히, 이부진, 이서현 사장은 19일에 큰아버지 빈소를 재방문해 눈길을 끌었다.
일찌감치 조문 행렬에 나선 삼성그룹 일가의 행보에 이어 이부진, 이서현 사장이 빈소를 재방문하면서 재계에서는 삼성가 3세들의 조문이 '아버지 시대'에서 매듭짓지 못한 갈등 구도롤 해소하는 실마리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맹희 명예회장의 별세를 계기로 이재현 회장의 건강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진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과 이부진, 이서현 사장 등 삼성 일가 삼 남매가 큰아버지 빈소를 잇달아 방문하면서 냉기가 흐르던 삼성과 CJ의 분위기가 과거와 달라진 것은 양측 모두에 반가운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더팩트 | 서재근 기자 likehyo85@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