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부잣집 패션이야. 말 그대로 '재.벌.패.션'이지 뭐." 패션 업계에 있는 C군의 대답은 간단했다. 지난 3일 일본으로 출국한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사장의 아내 조은주 씨의 의상 및 패션이 화제가 되면서 이에 대해 조언을 구하려 했으나 별 거 없다는 듯 말했다. 그저 '재벌 패션'이란 단어만 언급할 뿐이다.
무슨 패션이 그렇게 많은 지 모르겠다. 그 옷이 그 옷 같고, 저 패션이 그 패션 같다. 그런데 어느샌가 '공항 패션'이란 말이 나오더니 '시사회 패션', '드라마 속 패션', '아침 출근 패션'까지 '핫(HOT)'하다는 연예인을 중심으로 'OO 패션'이라는 꼬리표가 만들어졌다. 이들이 입은 옷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곧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광고 효과는 상상 그 이상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오죽했으면 이들은 일상생활에서도 옷차림을 신경 써야하고 급기야 업계의 '협찬'까지 받아야 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그런데 최근 상류층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가 쏟아지면서 OO 패션에 '재벌 패션'이란 말까지 등장했다. 단어 자체에서 상위 0.1%만의 라이프스타일이 묻어난다. 상상 속에서나마 공주(또는 왕자)라도 되고 싶은,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갈망하는 일부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드라마 속 '재벌 패션'에서 실제 상위 1% 재벌들로 옮겨가고 있다.
우아한 카리스마스로 알려진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그는 능력과 미모를 겸비한 여성 CEO(최고경영자)이다. 이 사장은 이미 '황금 티켓'이라 불리는 서울 면세점 사업권 획득을 비롯해 손대는 사업마다 긍정적 성과를 보이며 경영 능력을 공고히 했다. 더불어 그 유명한 '택시 기사 사건'과 '메르스 사태 호텔 영업 중단' 등으로 베품과 책임이란 덕목을 보이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상류층의 패션 리더'로 일컬어지며 공식 석상 때마다 자신 만의 패션 감각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죽하면 그가 입은 옷과 구두, 신발 등이 상류층 패션을 대변하는 아이콘으로 소개될 정도일까.
이 사장의 패션 컬러는 화려하지 않은 고급스러움의 블랙과 베이지 계통이다. 또 대부분 바지 정장보다는 치마 정장을 주로 입어 단아한 여성스러움을 나타낸다. 액세서리 사용도 과하지 않다. 귀에 딱 붙는 귀걸이를 한다거나 코사지 등으로 포인트를 줄 뿐이다. 지난 호암상 시상식 때의 의상이 단적인 예다. 선이 넓게 파여 어깨가 살짝 드러난, 또 케이프와 스커트에 시스루 장식이 있는 블랙의 원피스(가운데 사진) 차림으로 등장해 많은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당시 의상에 대한 문의가 쇄도하더니 결국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발렌티노 제품인 것으로 드러났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의상은 미국 니만 마커스 백화점 온라인 매장에서 3250달러(한화 370만 원)에 판매되고 있는 상품이다.
그는 헤어 스타일에서도 우아하면서 세련된 느낌을 살린다. 특히 얼굴선을 따라 레이어드 커트로 컬을 잡아주며 아래 '기장'은 안으로 컬을 만들어 우아한 분위기를 고수한다. 머리 색 또한 화려하지 않다. 블랙으로 고급스러움을 잔뜩 표현해냈다.
'재벌 패션'의 아이콘으로는 임세령 대상그룹 상무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과거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의 아내이면서 현재 배우 이정재의 연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 역시 수수하면서 고급스러운 패션으로 등장하는 곳곳에서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2030 여성들에게 있어 임 상무의 패션 스타일은 '워너비'로도 통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언론에 잡힌 임 상무는 대부분이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로 격식에 얽매이지 않되 절제된 단정한 차림이 주를 이루고 있다. 간편한 청바지에 검은 외투, 또는 베이지 색상의 트렌치 코트 등은 누구나 쉽게 가까이 할 수 있는 옷차림이다. 임 상무는 여기에 가방이나 머플러 등으로 포인트를 줘 꾸민 듯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느낌을 살린다. 그러면서도 때론 공식 석상에선 직에 어울리는 패션으로 커리어 우먼의 분위기를 여과없이 뽐낸다.
큰 반향을 일으켰던 사례론 지난 1월 디스패치가 보도한 이정재와 데이트 장면을 꼽을 수 있다. 당시 많은 사람의 관심은 임 상무의 열애 사실보단 그의 패션에 집중됐다. 여러 온라인 게시판은 임 상무가 입은 의상 브랜드와 가격 문의가 쏟아졌고 급기야 억측 정보까지 홍수를 이뤘다. 항간에선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합치면 그 가격이 무려 몇 천만 원~억 원대라는 웃지 못할 말까지 떠돌 정도였다. 그만큼 그의 스타일이 관심 대상이라는 방증일 것이다.
헤어스타일도 한가지로 고수하기 보다는 짧은 C컬의 단발을 하거나 웨이브 진 긴 머리를 하기도 하는 등 변화를 시도해 발랄하면서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간혹 브라운 계열로 염색으로 해 부드러운 느낌을 보이기도 한다.
여담으로 결코 유쾌(?)하지 않은 '재벌 패션'을 잠깐 언급하겠다.
올해 상반기 '땅콩 회항'으로 불리며 논란을 몰고 온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한때 능력있는 여성 CEO로 이름을 알리는 듯 했으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됐다. 그러면서 한 차례 언급된 바 없는 '재벌 패션'까지 이름을 올렸다.
비행기를 회항시킬 정도의 당당함(?)이 있던 그는 검찰 출석날 많은 사람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은 그의 눈물이 아닌 패션에 쏠렸다. 그가 입은 검정 외투와 목도리가 몇천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브랜드라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조 전 부사장은 화장기 없는 수척한 얼굴에 블랙 상·하의와 단화, 가방을 들고 등장했다. 화려함과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검찰에 출석하는 사람의 의상으로 다소 문제될 것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이 옷이 문제가 됐다. 일각에선 조 전 부사장의 모든 제품이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로로피아나 브랜드라고 추측했다. 물론 당시 대한항공은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누리꾼들이 추측에 따르면 그의 코트와 머플러는 로로피아나 베이비 케시미어 세이블 믹스 제품으로 4000만원, 목도리는 로로피아나 베이비 케시미어 친칠라 믹스로 1000만 원 선이다.(일각에선 100% 비쿠냐 코트일 경우 1억 원이라고 한다)
로로피아나는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로 최고급 캐시미어와 울 소재 제품이 특화돼 있다. 브랜드 소개에 따르면 안데스 산맥에 사는 야생 라마의 일종인 비큐나의 털을 이용해 최고급 의류를 생산한다. 평균 겨울 코트의 가격은 1000만~2000만 원 초반이며 재킷은 500만~700만 원, 니트와 카디건은 100만 원 후반~300만 원대다.
로로피아나는 조 전 부사장 덕에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 등에 검색어로 등장하며 연관 검색어로 '조현아 머플러', '조현아 코트'로 검색되는 웃지 못할 상황도 생겼다.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며 엄청난 화제를 몰고 온 상위 0.1% 재벌가 여성들의 스타일을 살짝 들여다봤다. 지금은 이들의 잠잠해진 행보에 따라 대중의 관심 역시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언젠가 이들이 공식 석상에 재등장할 때면 다시금 스포트라이트가 뜨겁게 비칠 것이란 사실이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그때엔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겉모습만큼이나 행실 또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는 사람으로 세간의 눈길을 받았으면 한다.
[더팩트| 김아름 기자 beautiful@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