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발질문 차단 위해 정해진 각본대로 진행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1일 오전 11시 명동 롯데호텔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사과문 발표 이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는 신동빈 회장을 향한 수많은 질문이 롯데 측에 의해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4~5가지 질문으로 줄여졌다. 뿐만 아니라 신동빈 회장의 불분명한 한국 발음에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질의응답이 끝나고 재차 롯데 측에 정확한 발언을 확인해야 했다.
이날 오전 8시 도착한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2층 크리스탈볼룸은 기자회견을 앞두고 분주한 모양새였다. 롯데 측 관계자들과 기자들은 마이크테스트와 사진 촬영 각도, 빛 조절 등을 테스트하며 3시간 뒤에 진행될 신동빈 회장의 대국민 사과문 연설에 만반의 태세를 갖췄다. 오전 9시 30분께가 되자 기자들은 모두 각자 자리를 잡고 이날 신동빈 회장이 어떤 발언을 할지 예상하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대국민 사과문 발표 30분전인 오전 10시 30분, 롯데그룹 측 관계자는 사과문 낭독 후에 이어질 신동빈 회장과 기자들의 질의응답 질문 조율에 나섰다.
기자들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건강 상태, 형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과 화해 여부, 일본롯데홀딩스 주주총회 일정, 광윤사·L투자회사 등의 지분 공개 여부 등 의혹이 무성했던 건에 대해 각자 질문지를 작성해 롯데그룹 관계자에게 전달했다.
롯데 측은 이를 8~10건 정도 대표 질문으로 압축한 뒤 몇몇 기자들이 나서서 미리 제출한 질문을 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롯데그룹 홍보팀 측은 "원래 질의응답은 스케쥴에 없었지만 (기자분들과) 합의해 진행하기로 했다"며 "시간상 몇개 공통 질문으로 추리게 됐다"고 했다. 현장에 모인 기자들은 200명에 가까웠지만 발언권은 4~5명의 기자에게만 주어졌다.
사과문 발표 5분 전 롯데그룹 홍보팀장은 단상에 서서 "오늘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기자분들이 오셨다"며 "사과문 발표 후에 모두 한번에 일어서서 (신동빈 회장을) 따라가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길 바란다"며 양해를 구했다.
곧이어 질의응답의 원만한 진행을 위해 질문하기로 한 기자들에게 마이크를 넘기며 동선을 확인했다. 이후 오전 10시 57분께 신동빈 회장이 읽어내려갈 성명서 전문이 기자들에게 신속하게 나눠졌다.
오전 11시 정각, 신동빈 회장이 크리스탈볼룸 회장에 들어섰다. 그는 단상 앞에 서기 전 카메라를 향해 크게 고개를 숙였다.
신동빈 회장은 "롯데그룹이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게 항상 함께해주시고 사랑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최근 불미스러운 사태로 많은 심려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며 입을 열었다. 신 회장이 성명서를 한 문장씩 읽고 다시 얼굴을 들 때마다 카메라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신 회장은 이날 "롯데호텔에 대한 일본 계열 회사들의 지분 비율 축소, 주주 구성 공개 위한 기업공개 추진, 순환출자 등 지배구조 개선과 기업투명성 제고"를 약속했다.
특히 그동안 의혹이 무성했던 롯데호텔 주요 주주인 L투자회사에 대한 설명과 롯데호텔 등 한국 롯데 계열사들이 일본 롯데로 보내는 배당금은 전체 영업이익의 1.1%에 불과하다며 국부를 일본유출하지 않았다고 강조한 점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사과문 이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미리 약속됐던 공통 질문들은 빛을 보지 못했다. 신 회장은 비교적 덜 민감한 ▲호텔롯데의 상장 시기 ▲한일 롯데 분리 여부 ▲반(反) 롯데 감정 대응책 ▲신격호 총괄회장의 의중 ▲일본롯데홀딩스와 L투자회사의 지배관계에 대해 묻는 5가지 질문에만 답변했다. 아울러 신 회장의 불분명한 한국어 발음에 기자들은 질의응답 후 롯데 관계자들을 붙잡고 재차 정확한 발언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형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과의 현재 관계나 신 총괄회장의 건강상태를 묻는 질문에는 침묵했다. 신 총괄회장에 대해서는 "아버지를 많이 존경하고 있다"는 형식적 답변만 내놨다. 다만 "가족과 그룹경영 문제는 별개"라며 "사업에 대한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판단하겠다는 뜻을 분명히했다. 또 가장 관심을 받고 있는 일본롯데홀딩스 주주총회 일정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사과문 발표가 끝나고 신 회장이 회장을 떠나고 나서야 롯데 측 관계자는 뒤늦게 "17일에 주총이 열릴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구체적인 안건과 주총 장소는 밝히지 않았다.
[더팩트 | 롯데호텔=김민수 기자 hispirit@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