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총괄회장 '오락가락 식' 행보 '고개 든' 건강이상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간 그룹 경영권을 둘러싸고 촉발된 롯데가 '왕자의 난' 사태가 두 형제의 아버지이자 롯데 경영 1세대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퇴진으로까지 번지면서 신 총괄회장의 건강이상설이 재조명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고령으로 수년 전부터 건강이상설이 제기된 신격호 총괄회장이 이번 사태의 시발점이 된 일본롯데홀딩스 이사 6명에 대한 그의 해임 결정을 분명한 상황 판단을 전제로 시행에 옮겼을지에 의문부호를 붙인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롯데그룹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신격호 회장의 건강상태를 자가 편의에 따라 인위적으로 조작, 언론 플레이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일고 있다.
28일 일본 롯데홀딩스는 긴급 이사회를 열고 신격호 총괄회장을 롯데홀딩스의 대표이사 회장에서전격 해임했다. 이사회의 결정으로 신격호 총괄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의 명예회장으로 남게 됐고, 그의 퇴진으로 일본 롯데홀딩스는 신격호, 신동빈, 츠쿠다 다카유키 3인 대표 체제에서 신동빈, 츠쿠다 다카유키 2인 체제로 새 출발 하게 됐다.
롯데 창업주의 퇴진을 결정지은 긴급이사회를 주도한 것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다. 아버지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자리에서 내려 앉히는 신동빈 회장의 강경 대응은 전날 신격호 총괄회장이 일본으로 건너가 자신을 제외한 일본롯데홀딩스 이사 6명을 전격 해임한 것이 그 시발점이 됐다.
당시 해임자 명단에는 신동빈 회장을 비롯해 쓰쿠다 다카유키 대표이사 부회장 등이 포함됐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해임 결정에 신동빈 회장은 이사회를 거치지 않은 해임 결정을 불법으로 규정, 곧장 일본으로 건너 가 긴급 이사회를 열고 신 총괄회장을 해임시켰다.
재계 안팎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에 대한 건강이상설이 다시금 고개를 든 데는 느닷없는 롯데홀딩스 해임 카드를 꺼내 든 신격호 총괄회장의 행보도 한몫을 차지한다. 지난 16일 신동빈 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당시 신동빈 회장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뜻을 받들어 한일 롯데 사업을 모두 책임지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히며 대표이사 선임 결정에 아버지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사실을 강조한 바 있다.
채 2주도 안 된 시점에서 신격호 회장이 돌연 태도를 바꾸자 일각에서는 그의 이 같은 오락가락 식의 행보가 건강 이상으로 말미암은 흐려진 판단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제대로 된 경영 판단이 무뎌진 기회를 틈타 신동주 회장이 신격호 회장을 회유했을 가능성도 고개를 든다.
올해 94세의 고령인 신격호 총괄회장은 지난 2011년 <더팩트> 카메라에 포착됐을 당시만 하더라도 지팡이에 의존했지만, 정정한 모습으로 건재함을 드러냈다. 그러나 지난 2013년 말 고관절 수술을 받은 이후 외부 노출을 일제히 삼가고, 해마다 5월 첫째 주에 열리던 신 총괄회장의 울산 고향마을 잔치까지 2년 연속 취소되면서 건강이상설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지난 5월 롯데월드타워 공사 현장을 직접 둘러보면서 일각의 우려가 일부 해소됐지만, 취재진의 질문에 직접 대답을 하거나 전면에 나서는 행보는 없었다.
전날인 28일 오후 하네다발 김포행 전세기편에 탑승,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한 신격호 총괄회장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였다. 휠체어에 탄 채 무릎담요 덮고 입국장에 나타난 신격호 총괄회장은 대표이사 퇴진 및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 간 세력 다툼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 관계자는 "신격호 총괄회장이 분명한 사리판단이 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건강상태가 악화했다는 얘기는 이미 수년 전부터 업계에서 나왔다"며 "그룹 대표이사 선임과 같은 중책을 2주도 안 되는 시점에서 뚜렷한 목적 없이 번복한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신동빈, 신동주 두 형제도 아버지의 건강상태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큰 만큼 이번 사태가 신격호 총괄회장의 건강이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격호 총괄회장 흐려진 판단력이 '왕자의 난'의 승자를 가늠하는 그룹 지배력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 27.65%를 확보한 일본의 비상장법인 광윤사의 지분 50%를 확보하고 있다. 그룹 지배구조의 중추를 맡고 있는 롯데홀딩스의 지배력과 직결된 신격호 총괄회장의 지분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신동빈, 신동주 두 형제 가운데 누구의 손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이번 사태의 승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 모두 신격호 총괄회장의 보유 지분이 그룹 경영권 확보에 정점을 찍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일각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이 신 총괄회장을 배후에서 이용했다는 관측도 제기되는 만큼 신동빈 회장 역시 아버지와 지분 상속을 위한 물밑 접촉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더팩트 | 서재근 기자 likehyo85@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