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단말기 교체 사업 '불협화음'
금융감독원의 탁상행정 정책이 또 한번 비판의 대상이 됐다. '신용카드 단말기 IC전환'사업이 산 너머 산으로 전혀 진행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IC카드 단말기 전환사업은 지난해 1월 카드사 정보유출 방치 대책으로 마련됐다. 여신전문금융업법(이하 여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오는 7월부터 대형 매장부터 IC카드 단말기를 사용해야 한다. IC 신용카드는 카드 전면부에 금속으로 된 네모 모양의 IC칩이 내장돼 마그네틱 카드보다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금융 당국은 대대적인 홍보까지 하며 관련 업계의 자발적 참여를 독려하고 있지만 IC카드 단말기 교체에 대한 유통 업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7월부터 IC카드 단말기를 사용해야 하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그동안 밴사가 리베이트 등 문제가 많았던 만큼 영세가맹점 밴 수수료 업무를 전담할 수 있는 공공밴을 설립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밴 업계는 소상공인연합회가 밴사업에 대한 전문성이 없고, 공공밴 설립시 하청업체인 밴 대리점과 총판 등이 먹거리를 잃을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업계에서는 7월부터 시행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IC카드 단말기를 사용하는 곳이 없다면 이 교체 정책 역시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없다.
또 다른 문제는 지원의 범위다. 당시 개인정보 유출로 국민적 비판을 받던 카드 업계는 금융 당국의 지시에 따라 IC단말기 전환을 위해 1000억 원을 조성했다. 카드사들이 모은 1000억 원으로는 약 65만 대의 단말기를 교체할 수 있다.
여전법상 영세가맹점 기준은 연매출 2억 원 이하인데, 총 가맹점 수는180만개로 1000억 원으로 지원할 수 있는 규모의 2배에 달한다. 이 때문에 어떤 기준으로 65만 대를 선정할지 역시 논쟁이 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결국 비판의 화살은 IC카드 단말기 교체 사업을 일방통행식으로 주도한 금융 당국으로 쏠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금융 당국은 IC카드 단말기 및 신용카드 이용이 안전하다고 대대적으로 홍보만 할 뿐 정작 교체의 주체인 상인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이는 대형마트, 영세상인 등이 IC카드 단말기 교체에 대한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카드번호 보유 문제다. 여신협회는 IC단말기 전환 관련 지난해 6월 대형 가맹점 POS단말기 보안표준, 7월에는 캣단말기 보안표준을 잇따라 만들었다. 보안표준에 따르면 가맹점이 카드번호를 저장할 수 없어 대형 가맹점들이 반발했다.
가맹점들은 카드번호를 ‘키(Key) 값’으로 활용해 자체 정산 등을 하고 있는데 이것을 금지하면 막대한 개발 비용이 들어간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금융 당국의 졸속 행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시장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기한을 정해놓고 '모두 다 바꿔라'는 식의 정책은 현실성이 부족해 업계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
결국 이번 정책이 졸속 행정의 또 하나의 사례로 남을지, 시장과 소비자를 모두 만족 시키는 정책으로 남을지는 금융 당국의 손에 달려있다. 금융 당국의 IC단말기 교체 사업은 당국의 리더십 발휘가 중요하다. 그러나 여전히 시장은 금융 당국의 요구에 차갑기만 하다. 당국은 현재 산적한 과제를 하나씩 모두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야 국민 뿐만 아니라 시장에서도 체면 치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팩트ㅣ박지혜 기자 medea0627@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