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기획-녹십자 경영권①] 고 허영섭 회장 장남, 지분 전쟁 방아쇠 당기나

녹십자그룹, 경영권 전쟁 일촉즉발 모자(母子)간 법정다툼에서 패한 후 회사를 떠났던 고 허영섭 회장의 장남 허성수 전 부사장이 지난 3월 말 지주사인 녹십자홀딩스 지분을 매입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허일섭 녹십자 회장 일가와의 경영권 전쟁을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변동진 기자

허성수 전 부사장, 녹십자그룹 경영권 복귀할까

녹십자의 실질적인 창업주 고 허영섭 회장 일가와 허일섭 녹십자 회장 일가의 경영권 싸움이 일촉즉발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모자(母子)의 난'에서 패한 후 회사를 떠났던 고 허 회장의 장남 허성수 전 부사장이 지난 3월 말 지주사인 녹십자홀딩스 지분을 추가 매입하면서 전운이 감도는 모양새다.

허 전 부사장이 지분을 매입하자 허일섭 회장의 부인 최영아 씨와 장남 허진성 부장, 딸 진영 씨도 녹십자홀딩스 지분을 사들여 맞대응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가족 간 경영권 전쟁의 서막을 연 것이 아니냐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신경을 곤두세운 물밑 지분경쟁이 진행중인 것으로 본다.

허성수 전 녹십자 부사장이 지난 3월 말 녹십자홀딩스 지분을 늘렸다. 사진은 지난 2007년 허 전 부사장이 일본 바이오 기업과 항암제 개발 계약체결 당시 /녹십자 제공

◆허 전 부사장, 녹십자홀딩스 지분 늘려…속내는?

고 허영섭 회장의 장남인 허성수 전 부사장은 지난 3월 25부터 31일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 3675주를 장내 매수했다. 이로써 허 전 부사장의 지분율은 종전 1.01%에서 1.02%로 0.01%포인트 늘었다.

허 전 부사장이 지분을 늘리자 허 전 부사장과 대립관계에 있는 것으로 거론되는 허일섭 회장의 부인 최영아 씨(2361주)와 장남 허진성 부장(1787주), 딸 진영 씨(1372주)도 지난달 말께 주식을 각각 매입했다. 고 허채경 창업주의 외동딸 허미경 씨와 남편 문재영 신아주그룹 회장도 각각 725주, 403주를 사들여 오너 가족간 그룹 지주사 주식에 대한 관심도가 고조됐다.

반면 허정섭 한일시멘트 명예회장(허일섭 회장의 큰형)의 부인 김인숙 씨는 지난달 16일~29일 4만7108주를 10차례에 걸쳐 매각, 또 다른 궁금증을 야기했다. 주변에서는 김인숙 씨는 오너가 지분경쟁에서 중립을 지키기위해 보유주식을 처분한 게 아니냐고 해석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이번 녹십자홀딩스 지분 매입·매각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은 허 전 부사장의 부인 박혜연 씨도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이다. 박 씨는 지난달 29일 3200주를 장내 매입해 지분율 0.01%를 확보했다.

◆고 허영섭·일섭 회장 가계도는?

허 전 부사장과 박혜연 씨는 소량의 지분을 확보했지만 업계에서는 녹십자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가족 간 지분전쟁의 서막으로 해석하고 있다.

녹십자그룹의 가계도를 살펴보면 허영섭 회장과 허일섭 회장은 고 허채경 한일시멘트 회장의 2남, 5남이다.

고 허영섭 회장은 부인 정인애 여사와의 사이에서 허 전 부사장, 허은철 녹십자 대표, 허용준 부사장을 두었다.

허일섭 회장은 부인 최영아 여사 사이에 장남 진성(33)·차남 진훈(25)·장녀 진영(31) 씨 등을 두고 있다.

◆허성수 전 부사장 지분 매입, 경영권 전쟁 서막?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 A씨는 “현재 허일섭 회장을 위협할 수 있는 사람은 허 전 부사장이 유일하다. 고 허영섭 회장 타계하기 전 녹십자의 차기 주인은 허 전 부사장으로 전망됐다”며 “제약업계에서 이에 대해 의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반대로 고 허 회장이 목암연구소와 부인 정인애 씨에게만 증여했다. 결국 허 전 부사장이 어머니를 상대로 고인 유언에 대한 효력정지가처분신청을 내 법정다툼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어찌보면 어부지리로 회장이 된 허일섭 회장은 지분을 늘려 녹십자의 주인이 됐고, 허 전 부사장은 대법원 판결에서 패소해 회사를 떠났다. 따라서 허 회장에게 가장 큰 위험요소는 허 전 부사장이다”고 설명했다.

실제 고 허 회장 유언장에는 자신 소유의 녹십자홀딩스 주식 56만여 주 중 30만여 주와 녹십자 주식 20만여 주를 재단에 기부하고 나머지는 부인과 차남 은철, 삼남 용준 씨 등 동생 2명에게만 증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에 허 전 부사장은 지난 2009년 허영섭 회장이 별세 후 열흘 만에 유언효력정지가처분신청을 냈다. 허 전 부사장은 “유언장은 아버지 타계 1년 전에 작성됐다. 당시 아버지는 뇌종양 수술을 받은 뒤여서 자발적으로 말하지 못했고 단기 기억력이 심하게 떨어져 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어머니의 주도로 만들어진 유언장은 아버지 뜻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관계자 B씨는 “허 전 부사장이 지분을 매입하자 그 즉시 허일섭 회장 일가도 녹십자홀딩스 주식을 사들였다. 이게 무엇을 뜻하겠냐. 허 전 부사장이 제약업계 복귀를 노리고 있다는 반증이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3월 초 열렸던 녹십자 및 계열사 주주총회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증언도 이어지고 있다”며 “뿐만 아니라 지난해 녹십자MS가 상장한 직후 지분을 대폭 늘렸다. 향후 본격적으로 경영권을 되찾을 때 실탄으로 사용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녹십자MS는 녹십자의 진단시약 및 혈액백 생산 계열사다. 허 전 부사장은 녹십자MS 상장 직후인 12월 17일부터 26일까지 부인 박혜연 씨, 두 자녀와 함께 장내에서 녹십자MS 주식 10만2154주(1.06%)를 매집한 바 있다.

[더팩트ㅣ변동진 기자 bdj@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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