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재곤 세상토크] '빨간 바지' 욕심나는 신동빈 롯데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이 지난해 11월 롯데그룹 사장단회의에 참석한 가운데 내년도 경영 계획에 대해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미소로 대신하고 있다./ 잠실=최진석 기자


◆신동빈 회장, '빨간 바지'마법에 홀리다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은 지난 19일(한국시간) 오랜만에 큰 박수를 치고 흐뭇한 미소를 짓지 않았을까 싶다. 이날 두 번의 ‘빨간 바지 마법’은 신 회장를 들뜨게 하기엔 충분했을 것 같다. 세계적으로 수 천만 골프 마니아들이 숨 죽여 지켜본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롯데챔피언십 최종 라운드는 롯데에 초대형 호재였기 때문이다.

김세영(22· 미래에셋)이 6m짜리 ‘칩인파’로 박인비(27· KB금융그룹)와 극적인 동타를 만들고 연장 첫 홀에 약 140m ‘샷이글’로 벼락같이 승부를 가르는 광경은 갤러리와 시청자들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게 만들었다. 대회 스폰서인데다 보기 플레이어인 신동빈 회장은 얼마나 짜릿한 승부의 전율과 스포츠 마케팅의 희열을 느꼈을까.

더구나 하와이 오아후 코올리나 골프클럽에서 ‘기적 같은 샷’을 쏜 김세영은 우승소감에서 신동빈 회장을 두세차례 언급했다. 또 국내 방송해설자는 123층(555m) 롯데월드타워 형상의 우승 트로피를 두고 “(롯데월드타워는 완공되면)전 세계 두 번째 높은 빌딩이다”고 친절한 설명을 아끼지 않았으니 말이다. (롯데월드타워는 세계 여섯 번째 높은 건물이다)

드라마보다 극적인 상황으로 올해 롯데챔피언십은 여느 해보다 ‘롯데’브랜드를 세계 골프 팬들에게 각인시켰다. 더불어 롯데월드타워는 우승 트로피를 통해 나라밖에 한층 실체감을 드러내는 계기를 마련했다. 롯데는 지난 2012년 첫 대회부터 우승트로피를 롯데월드타워 형상으로 만들었다.

◆ 보기 플레이어 신동빈 회장, 세번째 샷 준비

신동빈 회장의 경영을 골프에 빗대어 보면 현재 전장 555m(롯데월드타워 높이), 아마추어에게는 다소 길게 느껴질 수 있는 ‘파5 롱 홀’에서 두 번째 샷을 한 상황이다. 두 번째 공은 페어웨이 언저리에 그런대로 나쁘지 않게 자리를 잡은 모양새라고 볼수 있다. 지난 2009년 군사용 비행장 활주로를 움직이면서 제2롯데월드 건설계획 발표 14년 만에 건설 허가를 받은 게 티샷(첫번째 샷)이었고, 최근 롯데월드타워 102층까지 치명적 안전사고없이 콘크리트를 타설한 상황을 두 번째 샷으로 여길 수 있겠다.

롯데그룹 미래가 달려있다고 볼 수 있는 제2롯데월드(롯데월드몰+롯데월드타워)건설 총 책임자로 뛰고 있는 신 회장의 골프 실력은 핸디18 정도로 알려졌다. 보기 플레이어 수준으로 아마추어로는 고수 실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민폐’를 끼칠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그는 ‘홀인원’기록도 가지고 있다. 롯데 스카이힐 제주CC 클럽하우스 홀인원 보드에 새겨진 ‘신동빈’이름 석 자가 신 회장이다. 지난 2007년 10월 이 골프장 포레스트 코스 8번홀(화이트티 143야드)에서 친 공이 그대로 홀로 빨려 들어갔다. 홀인원의 행운은 아마추어는 물론 프로 골퍼에게도 평생 한번 찾아오기 힘든 그것이다.

신동빈 회장은 이제 세 번째 샷을 준비하고 있다. 볼은 페어웨이와 러프구분이 잘 안되는 지점의 살짝 내리막 라이에 걸려 있는 형국이다. ‘회장님 골프’를 치는 처지라면 내리막을 오르막으로 만드는 기적도 쉽게 보여주겠지만 아쉽게도 이 라운딩은 ‘회장님 골프’가 아니라는 것이다.

안전관리 안전성 논란에 휩싸인 제2롯데월드가 24시간 비상체제를 본격 가동한다./ 롯데 안전관리위원회 제공

세월호 참사를 목도한 대한민국 갤러리와 경기진행요원은 회장님 동작 하나하나를 돋보기로 들여다 보고 있다. 바닥과 천장 균열, 출입문 이탈사고, 영화관 진동문제, 주차장 누수발생, 아쿠아리움 부실시공등 크고 작은 건물 구조적인 문제와 공사장 안전관리 소홀에 따른 인명사고가 잇따라 발생한 마당에 “건물 구조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롯데측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무엇인가 찜찜하기 때문이다.

핸디18의 신 회장이 세 번째 샷으로 그린에 공을 올릴 지, 네 번째 샷 다음에 ‘원 퍼트’를 노릴지는 두고 볼 일이다. 내년말 롯데월드타워 완공이 롯데가 제시한 ‘파(par)'기록인 만큼 재계 내 가장 유능한 2세 경영인으로 평가받는 신 회장은 어떻게든 파 성공을 위해 전력을 다할 게다.

국회 안전특위 의원들이 지난해 건설 공사 중인 롯데월드타워 51층의 현장 점검을 진행하는 모습./ 잠실=문병희 기자

서울시 송파구 일부 시의원들은 최근 “제2롯데월드 안전에 구조적인 문제가 없다는 점이 전문가 진단 결과 드러났다”며 수족관과 영화관의 재개장을 촉구하면서 ‘회장님 골프’를 응원하고 있다. 일부 시장 지향 언론들은 제2롯데월드 안정성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살펴본다면서 ‘회장님 굿 샷’을 기회 닿을 때마다 외친다.

5월 가정의 달 특수를 월드몰 입점업체들이 누려야 한다는 주장도 지난해 추석 때처럼 나온다. 롯데물산측은 “서울시, 국민안전처에서 내려오는 지시사항에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며 “부도직전의 대다수 입점업체들의 고충을 감안해 재개장 여부를 빨리 결정해 주길 바란다”고 요구한다.

얼마 전에는 신격호· 신동빈 회장 부자가 롯데월드타워를 집무실로 사용하겠다고 승부수를 던졌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롯데가 안정성 담보의 최후 카드를 제시했다고 평가한다. 비판론자들은 “신 회장 부자가 입주한 다음에 안정성이 확인되는 것”이라며 이 카드를 ‘여론 무마 눈가림용’이라고 꼬집는다.

23일 제2롯데월드수족관 누수와 영화관 진동 등 잇따른 사고로 4개월째 사용이 중단되고 있는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의 재개장 여부를 논의하기 위한 서울시 시민자문단 회의가 열렸다. 대표 갤러리 겸 경기진행요원의 회의다.

시민자문단은 롯데 측에서 제출한 수족관과 영화관의 정밀안전진단 보고서와 인부 사망사고가 발생했던 공연장의 안전진단 보고서를 검토했다. 서울시는 전문가와 현장 검증을 통해 수족관 누수와 영화관 진동에 대한 롯데 측의 보완 조치와 공연장의 안전관리 대책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

신 회장이 규정을 위반하지 않고 세 번째 샷을 해도 되는지를 따지는 일련의 과정이다. 오는 5월에 재개장여부가 가려진다.

제2 롯데월드타워가 예정대로 2016년 말 완공되면 층수로 전 세계 4위, 높이 기준으로는 세계 6위의 초고층 빌딩이 된다./ 롯데물산 제공


◆경제우선인가, 안전먼저인가...박원순 시장의 결정은

이래저래 ‘성완종 파문’과 ‘세월호 정국’속에서 신 회장의 세 번째 샷을 위한 롯데측 전방위적 움직임이 근래 부산한 것 같다.

홀인원을 맛본 신동빈 회장은 제2롯데월드 세 번째 샷 때 어떤 색 바지를 착용할까. '역전의 여왕' 김세영처럼 빨간 바지를 입고 최종 라운드에 나서 우승 욕심을 부릴 것인가, 아니면 안전 위주의 플레이를 할 것인가. 경기진행요원인 박원순 서울시장은 어떤 규칙을 적용할까.

"이미 4개월 넘게 영업정지 됐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확실히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을 때까지는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는 게 좋다"(porm****) "시민의 안전이 우선이지, 상권 및 일자리가 우선은 아니다. 사고가 안 났던 곳도 아니고, 계속 났던 곳인데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se2e****) 일부 시의원들의 조기 재개장 주장에 반대의견을 편 누리꾼들 목소리다.

보기 플레이어가 전장 555m 파5홀에서 무리하게 ‘파’를 욕심내다가는 ‘더블 보기’이상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걸 산전수전 다 겪은 신 회장이 모를리가 없다. 기업의 경영활동은 소비자의 안전을 최우선 덕목으로 삼을 때 빛난다.

[더팩트 ㅣ 명재곤 기자 sunmoon41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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