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재곤 세상토크] 박근혜 대통령과 '노란 브로치'

세월호 노란리본 의미는? 세월호 노란리본에는 실종자들의 무사생환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슬기 기자

박근혜 대통령에게 '노란 브로치'를 선물하고 싶다

올브라이트 미국 전 국무장관은 ‘브로치 정치인’으로 국제 외교가에서 유명했다. 북한이나 러시아와 외교전을 벌일 때는 독수리나 성조기 브로치로 미국의 힘을 과시했다. ‘독사 같다’는 비난을 받았을 때는 뱀 모양의 브로치를 다는 뚝심을 가감없이 보였다. 그녀의 브로치로 절대강국 미국의 외교정책 속내를 읽는 시기가 있었다.

지난해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 ‘희망나비’브로치를 제의복에 달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가 건넨 브로치를 흔쾌히 패용하면서 교황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해방돼 자유롭게 날갯짓하기를 기도했다.

브로치(broach)는 주로 여성 패션을 완성하는 액세서리중 하나이다. 유행 감각 떨어진 액세서리라고 누구는 평가할지 모르겠다. 사실 패션쇼에서 브로치가 목걸이나 귀고리보다 눈길을 더 끈 경우는 드물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한복 한 편에서 본 그것이 사실상 전부인 필자도 브로치는 다소 낯설다. 생활주변에서 브로치를 착용한 ‘그녀들’을 본 기억이 많지는 않다.

그러나 중년 여성의 우아함과 품위, 나아가 권위를 돋보이는 데에는 반짝반짝한 목걸이, 살랑살랑한 귀고리보다는 브로치가 한층 유용할 수 있음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패션의 아이템을 넘어 시대의 함축된 상징성을 알게 모르게 드러내는 마법이 브로치에 숨겨져 있어서 일까.

한 때 ‘박근혜 대통령 브로치’가 여의도안팎에서 화제가 됐다. 2012년12월 대통령선거일 전날 기자회견시 달았던 무궁화 브로치, 대통령 취임식 때 착용한 나비모양 브로치, 취임 후 첫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찼던 꽃진주 브로치는 여성 대통령 박근혜의 상징물로 제 몫을 톡톡히 했다. 무궁화는 애국심과 연결됐고 나비와 꽃은 희망의 전령사로 날았다.

액세서리는 메시지 전달 도구였다. 박근혜 브로치는 다양한 정치적, 통치적 연상작용을 낳았다. 박 대통령은 강인하고 남성적인 이미지였지만 브로치 착용으로 품격있는 여성 리더의 이미지로 국민곁에 다가섰다는 평가가 당시 나왔다.

브로치 하나가 대통령과 국민의 정서적 연대 혹은 공감을 창조한 셈이다. 단색 정장을 즐겨 입는 여성 지도자의 밋밋한 패션을 ‘딱 맞는’ 브로치 하나가 마술을 부려 예술적 취향을 풍기고 더불어 국정 최고운영자의 심중을 은연중에 표출했다. 그때는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진도체육관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더팩트DB

◆ 팽목항 깜짝 방문, 반쪽자리 위로...유가족 등돌려

세월호 참사 1주기인 2015년 4월16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은 진도 팽목항을 방문했다. 중남미 순방에 앞서 우여곡절 끝에 그날의 현장을 찾았다.

'세월호를 인양하라'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하라' '박근혜 정부 규탄한다'는 깃발과 펼침막 등의 소리없는 아우성 속에서 대통령은 “선체인양을 진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요한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서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선체인양에 나서도록 하겠다”고 추도사 형식의 대국민 담화문(메시지)을 내놨다.

유가족들이 강력히 요구하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이 때문에 현장의 유가족들은 대통령과의 만남을 거부했다. 당일 오후 경기도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의 추모식도 취소했다. 저녁에는 서울 시청앞 서울광장에 수 만명의 시민들이 모여 ‘4·16 약속의 밤’행사를 치렀다. 대통령과 세월호 유가족 사이에 맹골 수도같은 거세고 차가운 한류가 흐르고 있음을 웅변한 답답하고 허탈한 하루였다.

20여분 간 머문 팽목항에서 박 대통령은 검은색 단추가 달린 검은색 자켓, 검은색 바지, 검은색 구두로 애도의 심정을 보였지만 세월호 민심은 ‘노란 리본’을 착용하지 않은 대통령을 아쉬워하고 질타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가슴에는 세월호 노란 리본이 없습니다. 세월호에 대한 대통령의 진심입니다”라고 일단의 네티즌들은 거침없이 비판하고 분노했다.

대통령은 왜 노란 리본을 달지 않았을까.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염원하는 이들의 상징물인 노란 리본이 정치적 부담이 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보편적인 정서적 판단을 떠나 현행법상 달지 못하는 규정이 있어서 그랬을까. 우문한 필자로서는 가늠하기 힘들다.

아무튼 프로골퍼 김효주, 메이저리그 투수 류현진, 연예인 하지원이 노란 리본을 모자나 가방에 단 게 뉴스가 되고, 반면 대통령이 노란 리본을 외면한 게 또 하나의 논란거리가 되는 게 오늘 우리의 자화상이다.

각설하고 세월호 참사 2주기를 향한 첫날 2015년4월 17일, 박 대통령에게 ‘노란 브로치’를 선물하고 싶다. “노란 리본이 힘들다면 노란 브로치를 달았으면 한다”고 갈구하는 ‘조용하지만 지켜보는’ 시민들이 대한민국에는 많다.

세월호 참사 1주기인 16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정부합동분향소에 시민들이 모여 있다./ 남윤호 기자


[더팩트 ㅣ 명재곤 기자 sunmoon41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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