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희망찬 설? 휘청거리는 현대중공업에 울산 ‘우울’

우울한 울산 현대중공업이 창사 이래 최악의 경영위기를 맞은 가운데 현대중공업 본사가 위치한 울산광역시 동구는 설 연휴 분위기가 나지 않고 있다./ 울산=황원영 기자

‘우리가 잘 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것’

“40대라며?” “회사에서 잘렸기 때문이라던데.”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광역시 동구 전하동, 흉흉한 소문이 돈다. 현대중공업에서 일하던 차장급 직원이 최근 구조조정으로 실직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얘기다. “어쨌거나 요샌 정말 흉흉하다.” 동구 주민이 말했다. 그간 전국에서 가장 높은 1인당 개인소득을 올리며 ‘산업 수도’의 역량을 우뚝 세웠던 울산이 휘청거리고 있다.

지난 17일 설 연휴를 하루 앞 둔 현대중공업은 예년 같이 ‘설레는 연휴’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 이곳에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울산의 간판 기업 현대중공업이 힘들어지면서 울산도 함께 어두워졌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예년과 같이 즐거운 설 연휴를 보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울산 시민이 110여만 명에 이르는 가운데 본사 직원만 3만 명 가까이 되는 현대중공업의 실적 부진은 울산 지역 경제와 각 가정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협력사업체 직원과 가족까지 감안하면 울산에서 현대중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그런 현대중공업이 창사 이래 최악의 경영위기를 맞았다. 한때 세계 1위 선반 건조량, 세계 최대 육상 리프팅 성공 조선사, 세계 우수 선박 건조사에 25년 연속 이름을 올리면서 울산은 물론 국내 경제를 이끌어갔지만, 지난해 글로벌 조선시장의 침체로 사상 최악의 영업실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기록한 영업손실은 3조2495억 원에 달한다. 설상가상으로 20년간 파업 없이 노사화합을 이뤘던 현대중공업은 이번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을 놓고 한동안 진통을 앓았다.

어둠 속 현대중공업 18일 현대중공업 정문에 경비원이 경비를 서고 있다.

최근 현대중공업은 희망퇴직을 통해 사무직 간부 1500명을 줄였다. 전체 직원 2만8000명의 6%에 이르는 사상 최대 감축 규모다. 현대중공업은 일정금액의 위로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이번 인력 감축은 지난해 11월 성과위주의 연봉제 도입을 발표한 지 2개월이 채 지나지 않고 이뤄졌다. 임원들의 경우 이미 인력 31%를 감축했다.

이에 지역 경제가 침체된 것은 물론 울산 동구의 소비심리도 잔뜩 위축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동구 구민들 사이에서는 온갖 이야기들이 떠돌았다. 주민들은 이웃이 회사에서 잘려 나가는 모습을 보며 전체적으로 침울한 표정이다. 동구청은 긴급 동장 회의를 소집하는 등 지역경제 살리기에 나섰지만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대부분이다.

현장에서 만난 현대중공업 근로자는 “회사 분위기가 좋을 리 있겠느냐”며 “다들 숨죽이고 다니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회사 분위기가 엉망인데 직원들 집안 공기가 좋을리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도 “근로자들은 더욱 일에 매진하고 있다. 어려운 상황을 다 같이 힘을 모아 헤쳐 나가자는 분위기가 내부에 형성돼있다”고 말했다.

한산한 백화점 현대백화점 울산동구점 광장이 한산하다. 현대중공업 실적 악화로 지역 경제가 침체됐다.

‘사모님’들 사이에서도 회사 위기는 중요한 화젯거리다. 이날 찾은 현대중공업 정문 맞은편에 위치한 현대백화점 울산동구점에는 평소 쇼핑객에 비해 눈에 띄게 손님이 적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설 연휴를 맞아 각종 선물세트와 설빔을 마련하기 위해 백화점을 찾을 법도 했지만, 백화점은 한산했다.

5층에 위치한 한 커피숍으로 올라갔다. 주부들이 삼삼오오 모여 근심어린 표정으로 얘기를 나누고 있다. 다가가 함께 얘기를 나눴다. 한 주부는 “요샌 남편이 아침 일찍 출근해 밤늦게 들어온다”며 “하지만 오히려 희망퇴직 대상자는 연장근로를 시키지 않고 일찍 보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부는 “요새 주부들 사이에서 어느 집의 누가 어떻게 된다더라는 식의 얘기가 많이 떠돌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 많던 현수막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현대중공업 정문은 물론 각 사업부 정문에서도 “즐거운 설 연휴를 보내라”는 회사 명의의 현수막은 걸려있지 않았다. 대신 “2014년 임단협 교섭 언제까지 모른 척 할 것이냐”, “현대중공업 원청이 직접 해결하라” 등의 현수막만 나부끼고 있었다.

임단협 극적 타결 현대중공업 근처에 현수막이 걸려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16일 노사 임단협을 타결했다.

현대중공업 주변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상인들도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울산 동구 전하동 곳곳에서는 셔터를 내린 음식점도 볼 수 있었다. 한 음식점 사장은 “현대중공업의 경기는 주변에서 장사하는 장사꾼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연말연시 회식 손님을 많이 받지 못했다. 연초에 장사가 잘 될 법도 한데 상당히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중공업에 밥줄 걸린 사람이 참 많다. 회사가 잘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대중공업은 해양 설비 수주가 끊겼다. 선박 시장 불황에도 해양 사정이 좋아 ‘1위 조선소’ 명맥을 이어갔지만, 저유가로 인한 해양 설비 수주마저 끊기면서 돈 벌어올 곳이 없게 됐다. 9개월간 끌어온 임단협 교섭은 설 연휴를 이틀 앞둔 16일 극적으로 타결됐다. 실적악화와 구조조정 등의 난관을 노사가 힘을 합쳐 풀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현대중공업은 2012년 기준 직원들 평균 근속 연수 18.2년을 자랑하는 회사다. 직원들의 애사심이 높다는 얘기다. 침체된 경기와 임단협 협상 진통 여파로 울산 현지 분위기는 뒤숭숭했지만, 여전히 근로자들은 부지런히 움직이며 ‘우리가 잘 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것’이라는 현대중공업의 정신을 실천하려 하고 있었다.

한산한 모습 설 연휴를 맞아 현대중공업과 함께 울산 지역 상가가 연휴에 들어갔다. 울산 동구 일산지해수욕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 근로자는 “임단협 협상도 마무리됐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올 설에도 선박 막바지 작업으로 출근하는 인원이 꽤 된다”고 말했다. 실제 전체 인력의 10% 정도는 정상출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수주도 여러 건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서 빨리 정상궤도에 올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현대중공업을 바라보며 동구에 있는 해수욕장에 섰다. 차가운 겨울 바다 바람이 울산 동구를 훑고 지나갔다. 하지만 바람 끝 봄기운이 느껴졌다. 한 근로자는 “터널이란 게 끝이 있어서 터널 아니겠느냐.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고 믿는다. 실적도 나아지고 회사도 안정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정문에 적혀 있는 ‘우리가 잘 돼야 나라가 잘 된다’는 팻말이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다.

[더팩트│울산=황원영 기자 hmax875@tf.co.kr]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