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재근 기자] 출범 초기 '경제 민주화'를 강조하며 '대기업 길들이기'에 나섰던 현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경제 범죄 혐의로 구속된 기업 총수에 대한 선처를 언급하자 재계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사면자 후보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복역 중인 기업총수'에 대한 각 부 장관의 발언 러시에 물꼬를 튼 것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다. 황 장관은 24일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범죄를 저질러 복역 중인 기업 총수들이 경제 살리기에 노력한다면 기회를 줄 수도 있다"며 가석방·사면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틀 뒤인 26일에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기업인에 대한 지나친 법 집행은 경제 살리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황 장관의 발언에 힘을 실었다.
복역 중인 총수들에 대한 '사면론'이 확산하면서 재계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사면자 명단'에 대한 예측과 전망이 수면에 오르고 있다.
경제 범죄로 실형을 선고 받은 총수 가운데 가석방 1순위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은 SK그룹의 수장인 최태원 SK㈜ 회장이다.
최 회장의 가석방을 점치는 목소리가 나오는 데는 무엇보다 그의 남다른 '옥중 행보'가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최 회장은 각 부 장관의 사면 언급이 가시화하기 전부터 그룹 경영에 대한 우려와 애착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 4일에는 그룹 인트라넷으로 "지금 주어진 이 상황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과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경영 환경이 어려울 때일수록 패기를 가지고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뿐만 아니라 최 회장은 사회적 기업 생태계 조성과 확산을 위해 다음 달 14일부터 3일 동안 서울 양재동 K-호텔에서 열리는 '사회적 기업 월드 포럼 2014'에 맞춰 직접 집필한 전문 서적을 내놓아 화제를 모았다.
그룹의 신사업 발굴을 위한 국외 진출 사업이 잇달아 좌초하고, SK E&S와 SK텔레콤이 각각 추진한 STX에너지·ADT캡스 인수 합병 프로젝트마저 수포로 돌아가는 등 최 회장의 부재로 주요 현안을 챙기지 못하고 있는 것도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사면 가능성도 끊이지 않고 거론된다. 지난해 7월 이 회장 구속 이후 그룹의 신규 투자는 '올 스톱' 상태에 빠졌다.
주요 계열사인 CJ대한통운의 경우 올해 초 국내 중부권에 물류 터미널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6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었지만, 이 회장의 부재로 보류했다. CJ그룹이 올 상반기 신규 투자를 중단하거나 보류한 사업 규모만 4800억 원 규모에 달한다.
CJ그룹 관계자는 "이 회장의 부재로 그룹에서 계획 중인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이 회장에 대한 선처가 이뤄진다면 그룹의 안정화에 매진하고, 내수 서비스 사업을 강화해 일차리 창출 등 국내 경제 살리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의 건강 상태 역시 사면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이 회장은 간 이식 수술 후유증과 말기 신부전증, 유전성 질환인 '샤르콧마리투스' 질환으로 다리와 신경이 마비되는 증상과 함께 근육이 소실되는 증세를 보이고 있다.
12일 항소심 재판부는 이 회장의 건강 악화를 고려해 구속 집행 정지를 11월 21일로 석달 연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 관계자는 "그룹 총수의 구속은 기업 이미지와 직결되는 문제"라며 "경제 범죄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쟁국들과 치열한 밥그릇 싸움을 벌이는 국외 시장에서 총수의 부재에 따른 이미지 실추는 투자 유치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 회장과 이 회장 외에도 지난해 12월 항소심에서 1400억 원의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4년 6월을 선고 받은 이후 보석으로 풀려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기업어음(CP) 사기 혐의로 징역 4년의 실형을 확정 받고 수감된 구본상 LIG 넥스원 부회장, 기업 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등도 기업인 사면론이 현실화될 때 대상자로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