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터키 보드룸=황진희 기자] 시시때때로 쏟아지는 뉴스의 홍수 속에서 직업의 특성상 일주일 이상 긴 휴가를 결정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열정에 대한 보답일까? 올해만큼은 조금 특별한 휴가를 보내고 싶었던 욕심이 불현듯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잔뜩 지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헹구어 내 다시금 뽀송한 상태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그렇게 왼손으로 턱을 괴고 오른손으로 마우스를 의미 없이 움직이던 중 한눈에 들어오는 여행지가 있었으니 바로 터키 보드룸의 ‘18세 이상’ 성인전용 리조트였다. ‘18세 이상’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긴장감과 눈이 시리도록 파란 에게해(Aegean Sea) 바다 사진은 첫 눈에 사랑에 빠지기에 충분했다. ‘ONLY ADULT’, 성인들만 이용할 수 있는 그 곳엔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기분 좋은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지난 2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비행기로 1시간20분 거리에 있는 터키의 천국 보드룸에 발을 디뎠다. 투명한 터키블루의 바다, 그리스 산토리니를 연상케 하는 언덕 위 하얀 집들이 그림처럼 펼쳐진 보드룸은 사실 한국 여행자들에게 친숙한 여행지는 아니다. 하지만 터키인들은 물론 러시아와 미국에서도 ‘꼭 가보고 싶은’ 여름 휴양지로 손꼽힐 만큼 아름다운 자연을 갖추고 있다. 특히 에게해의 따뜻하고 맑은 물 덕분에 세계 최고의 다이빙 사이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전형적인 휴양지, 그리고 여성 여행자들을 설레게 할 만큼 아름다운 도시에서의 성인전용 리조트라니. 이미 마음은 부풀대로 부풀어 현실감각을 잊은 채 리조트로 발길을 옮겼다.
사실 18세 이상 성인전용 리조트는 우리나라에선 찾아보기 어렵지만 태국 등 아시아와 유럽, 남아메리카 등 유명 여행지에서 흔한 리조트 형태다. 시끄럽게 뛰어다니거나 울고 보채는 아이들이 없기 때문에 허니무너나 ‘휴양’만을 원하는 성인들이 조용하고 한적하게 휴가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성인전용 리조트는 ‘올 인클루시브(All Inclusive)’ 상품으로 객실요금 안에 호텔 룸 서비스, 객실 내 미니바, 호텔 안 모든 레스토랑 및 바 등의 다양한 부대시설과 서비스를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보드룸의 성인전용 리조트는 100유로(1박 1인 기준)에 전용 해변과 실외 수영장 옆 바에서 모든 음료와 주류를 무제한으로 제공하고, 터키식 스파 서비스인 ‘하맘’까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저녁식사 후 이어지는 칵테일 파티와 매일매일 달라지는 여성 무용수들의 댄스쇼 역시 무료로, 그야말로 성인들의 천국이라 할 수 있다. 모두 단독빌라로 쾌적하게 꾸며진 방을 제대로 이용할 시간이 없을 만큼 즐길거리가 풍성하다.
리조트에 도착해 숙소를 배정받고 나니 직원이 손목에 하얀 밴드를 채워줬다. 이 리조트에 묵는다는 뜻으로 이 밴드만 착용하면 실제로 리조트 내 모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흘러가는 1분1초도 아쉬운 마음에 방에 짐을 내려놓자마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파란 에게해 바다에 펼쳐진 리조트 전용 해변으로 향했다. 터키는 물론 프랑스, 독일, 호주, 포르투갈, 미국에서 찾아온 여행자들이 이미 바다에 뛰어들어 수영을 즐기거나 햇볕에 몸을 그을리고, 해변 바에서 수다를 떨며 칵테일을 마시는 등 걱정 고민 없는 천국이 펼쳐졌다. 때문에 투숙객 대부분은 길게는 한두 달에서 짧게는 일주일의 여정으로 성인전용 리조트를 방문한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수랏 모이살(Surat Moysal) 씨는 “보드룸은 터키 사람들도 꼭 한번 와보고 싶은 휴양지로 꼽힌다”면서 “바다에서 수영하고, 터키 전통술인 라크(Raki)를 마시고 해양레포츠를 즐기다 보면 일주일도 짧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눈에 띄는 것은 동양인 여행자는 기자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다. 특히 이곳 성인전용 리조트에 방문한 한국 여행자는 극히 드물어서 지난 15년 동안 이 리조트에서 일한 한 직원은 한국인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몹시 흥분했다. 늘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더 신경 쓰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상 한국 사람이 없다는 점은 더 과감한 휴양을 즐기기에 매력적인 요소가 틀림없었다.
뿐만 아니라 성인전용 리조트에서는 여행자들의 프라이버시를 철저하게 보장하기 위해 인물 위주의 사진촬영도 제한했다. 다른 여행객들의 망중한을 방해할 우려 때문이다. 리조트의 한 직원은 "여러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찍히는 인물 사진이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겸연쩍은 마음에 해변 베드에 누워 책을 읽던 기자도 시간이 조금 흐르자 바닷물에 몸을 담구고 휴양을 만끽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전혀 두렵지 않을 만큼 온전한 휴양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오후 7시부터 시작되는 저녁식사 시간이 되자 레스토랑은 순식간에 지구촌 축제가 벌어졌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한 레스토랑에 모이자 나이, 인종, 언어의 장벽은 무너지고 흥에 겨운 음악소리와 웃음소리에 너도나도 친구가 됐다.
흥겨운 분위기는 곧바로 칵테일 타임까지 이어져 분위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터키 무용수들이 하늘거리는 치맛자락을 흔들며 댄스쇼를 선보일 때는 리조트의 분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따뜻한 바닷바람과 달콤한 술, 흥겨운 노래에 모두들 취한 듯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곳이 왜 성인전용 리조트여야만 하는지 비로소 실감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아쉬운 사람들은 조금 더 본격적인 밤 문화를 즐길 수도 있다. 터키 보드룸의 클럽을 경험할 수 있는 투어상품이 있기 때문이다. 별도의 비용(약 70리라)을 내면 리조트 투숙객들과 함께 보드룸의 유명 클럽을 즐길 수 있다.
프랑스에서 여성인권을 연구하는 옐리즈(Yeliz) 씨는 “해마다 여름휴가로 남편과 함께 터키 보드룸의 성인전용 리조트를 찾는다”면서 “일상에서 더욱 열정적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휴양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