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대전=이광희 대전충남 본부장] 며칠 전, 금산군수를 만났다. 지난 7월 선거에서 다시 군민의 선택을 받은 단체장이다.
4년 전 한 차례 군수를 지냈고, 자리를 떠났다가 다시 군정을 맡았다. 그와의 첫 면담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마자 그가 꺼낸 이야기는 뜻밖에도 중앙정부였다.
정확히 말하면 중앙정부에 대한 답답함이었다.
"돈이 없습니다." 짧은 말이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예산 부족을 이야기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어느 지자체를 가더라도 돈이 부족하다고 한다. 해야 할 사업은 많은데 재정은 한정돼 있다. 특히 자체 세원이 부족한 농촌지역은 중앙정부와 광역자치단체의 지원 없이는 제대로 된 사업 하나 추진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예산 타령이 아니었다.
중앙정부는 지방에 더 많은 권한을 주고 재정도 확대하겠다고 말한다. 지방분권과 균형발전도 강조한다. 그러나 일선에서 느끼는 현실은 오히려 반대라는 것이다. 말로는 지방을 살리겠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지방의 숨통을 더욱 조이고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 대목에서 지방의 현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를 이야기해 왔다. 사람도 수도권으로 간다. 기업도 수도권으로 간다. 돈도 수도권으로 간다. 젊은이가 떠난 지방에는 노인과 빈집이 남는다.
그런 지방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중앙에서 만든 똑같은 잣대를 내려보내는 것이 답일 수는 없다.
금산 같은 농촌지역과 서울을 같은 기준으로 바라볼 수 없다. 대전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와 인구 몇 만 명의 군 단위를 같은 정책으로 묶어서도 안 된다. 지역마다 처한 현실이 다르기 때문이다.
농지 문제도 그렇다.
군수는 농촌에서 농지 거래가 사실상 얼어붙었다고 했다. 농지를 투기의 대상으로 삼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취지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농지는 농사를 짓기 위한 땅이어야 한다.
문제는 현실이다.
농촌에서는 농사지을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 젊은이는 떠났다. 고령의 농민은 더 이상 농사를 짓기 어렵다. 땅을 내놓아도 살 사람이 없다. 그런데 정책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 아니면 농지를 취득하기 어렵게 만든다.
취지는 옳다. 하지만 현실과 만나면 문제가 생긴다. 농사지을 사람은 줄어드는데 농사지을 사람에게만 땅을 팔라고 하면 그 땅은 누가 사는가.
결국 거래가 끊긴다. 가격은 떨어진다.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노인에게 논 몇 마지기는 마지막 재산일 수도 있다. 자식에게 물려줄 수도 있고, 노후생활을 위한 마지막 자산일 수도 있다. 그 땅이 팔리지 않는다. 팔려도 헐값이다. 더 무서운 것은 이것이 단순한 부동산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땅이 거래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람이 들어오지 않으면 집이 비고, 가게가 문을 닫는다. 학교가 사라지고 병원이 사라진다. 결국 마을이 없어진다.
지방 소멸은 거창한 통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팔리지 않는 논 한 마지기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
군수의 이야기는 대통령과의 오찬 자리로 이어졌다.
처음 단체장이 된 뒤 청와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고 했다.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만나는 자리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그날의 기억을 썩 유쾌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입장 과정에서 보안검색이 매우 엄격했고 스마트폰은 물론 손목시계까지 맡겨야 했다고 했다. 국가 최고 통치권자가 참석하는 자리인 만큼 경호와 보안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가 더욱 답답하게 느낀 것은 다른 데 있었다. 질문이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현장에서 자유롭게 질문하고 지역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질문은 사전에 조율됐고, 몇 사람의 정해진 질문에 대통령이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장은 왜 만나는가. 사진을 찍기 위해 만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미리 준비한 말을 듣기 위해 전국의 단체장들을 한자리에 부르는 것도 아닐 것이다.
대통령이 지방자치단체장을 만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중앙에서 듣지 못하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여야 한다.
금산의 이야기를 금산군수에게 듣고, 홍성의 이야기를 홍성군수에게 들어야 한다. 전남 어느 섬마을의 사정은 그곳 군수에게 들어야 한다.
좋은 이야기만 들을 필요도 없다.
오히려 듣기 싫은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대통령님, 이 정책은 지방에서는 안 됩니다.", "서울에서는 가능하지만 우리 농촌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정부가 만든 제도 때문에 주민들이 더 힘들어졌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직접 듣는 자리가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장의 만남이어야 한다.
그래야 정책이 바뀐다. 중앙정부가 아무리 많은 공무원을 두고 보고서를 만들어도 지역의 모든 사정을 알 수는 없다. 보고서는 숫자를 보여주지만 사람의 삶까지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현장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지방자치는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지시를 받아 집행하는 제도가 아니다. 지역의 문제를 지역이 스스로 판단하고 해결하라는 것이 지방자치다. 그런데 권한은 중앙에 있고 돈도 중앙에 있다면 지방자치는 이름뿐이다.
더구나 지방의 목소리를 듣는 통로마저 좁아진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금산군수가 가장 답답해한 것도 결국 그것이었다.
언로다. 말할 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모든 시장·군수의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다. 중앙정부가 지방에서 요구한다고 모두 돈을 내려보낼 수도 없다. 때로는 지방의 요구가 지나칠 수도 있고, 중앙정부의 판단이 옳을 수도 있다.
그래도 들어야 한다. 듣는 것과 들어주는 것은 다르다. 정치는 들어주는 것 이전에 듣는 일에서 시작된다.
지방분권도 마찬가지다. 지방에 돈 몇 푼 더 내려보내는 것이 분권의 전부가 아니다. 지방이 스스로 판단할 권한을 주고, 중앙의 정책을 향해 "이것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목소리가 대통령에게까지 닿을 수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지방 소멸을 걱정한다. 하지만 지방 소멸을 걱정하면서 지방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지방을 살리는 첫걸음은 거창한 개발사업이 아닐지도 모른다. 지방의 말을 듣는 것이다.
농민이 무슨 말을 하는지, 상인이 왜 문을 닫는지, 젊은이가 왜 고향을 떠나는지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지역을 책임지고 있는 단체장이 중앙정부에 무엇을 호소하는지 들어야 한다.
금산군수와의 첫 면담에서 가장 오래 남은 말은 예산도, 농지도 아니었다.
"말할 수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국 그 말이었다.
중앙과 지방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은 서울에서 금산까지의 거리가 멀어서가 아니다. 말이 오가지 않기 때문에 멀어지는 것이다.
지방의 목소리가 중앙으로 올라가다 어느 문 앞에서 멈춘다면, 아무리 지방시대를 외쳐도 지방은 변하지 않는다. 문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들어야 한다.
지방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한 번 더 귀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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