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순규 기자] 2026 북중미 월드컵은 대한민국 축구에 단순한 조별리그 탈락 이상의 상처를 남겼다. 48개국 체제로 확대된 첫 월드컵에서 34위라는 초라한 성적표도 충격이지만, 더 큰 아픔은 대표팀 내부를 향한 국민들의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 든 한국 축구의 귀국길 풍경은 극명하게 갈렸다. 야유와 분노의 고성이 사정없이 내리꽂힌 홍명보 전 감독의 입국장(6월 30일)과 달리, 1일 "고개 숙이지 말라"는 따뜻한 위로가 감돈 주장 손흥민의 자리는 대조적이었다.
팬들은 패배를 용서한 것이 아니다. 다만 모든 책임을 선수 개인에게 돌리지 않았다. 그 응원 속에는 "선수는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믿음이 담겨 있었다. 이 극명한 대비는 이번 월드컵의 본질을 보여준다. 이번 참사는 선수들의 실패라기보다 리더십의 실패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4년을 기다린 팬들의 허탈감은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까지 집어삼켰고, 대한축구협회를 향한 적폐 청산의 목소리는 드높다. 그러나 이번 대참사의 이면에서 가장 씁쓸하게 다가오는 대목은, 한국 축구의 전·현직 슈퍼스타이자 사제(師弟) 간이었던 홍명보와 손흥민이 걸어온 14년의 어긋난 궤적이 결국 ‘파국’으로 막을 내렸다는 사실이다.
홍명보 전 감독과 손흥민의 '악연'은 2012 런던 올림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독일 분데스리에서 떠오르던 20세의 손흥민은 대표팀 차출 거부 논란에 휘말렸다. 그러나 정작 그는 <더팩트>와의 단독 인터뷰([핫이슈] 손흥민 격정토로 "대표팀 차출거부? 獨 언론 인터뷰조차 안했다"-2012년 6월 29일)에서 "태극마크를 다는 것은 언제나 영광이며 무조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눈물까지 보이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때부터 두 사람의 관계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홍 감독은 2010년 12월부터 18세의 나이로 성인대표팀에서 활약한 그를 끝내 발탁하지 않았다.
이어진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여론에 떠밀려 손흥민을 기용하듯 "모든 사람이 잘한다고 하니까"라며 에둘러 깎아내렸고, "손흥민만을 위한 팀이 아니다"라는 뼈 있는 말을 남겼다. 압권은 2024년 감독 부임 이후였다. "주장으로서 신뢰한다"던 말을 불과 두 달 만에 "주장 교체를 계속 생각하고 있다"고 뒤집으며, 서른을 넘긴 베테랑 주장의 어깨에 무거운 압박감만을 지웠다. 결국 이번 월드컵 사포판 멕시코전의 갈등을 거쳐, 단판 승부였던 남아공과의 최종전에서 손흥민을 벤치에 앉히는 오기를 부리다 한국 축구 전체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물론 감독의 입장에서 특정 선수에게 특혜를 줄 수 없다는 원칙을 강조한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리더의 말은 사실보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감정까지 고려해야 한다. 같은 의미라도 표현은 조직을 살릴 수도 있고, 무너뜨릴 수도 있다.
세계적인 지도자들은 스타 선수와의 관계에서 이를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카를로 안첼로티는 "감독의 가장 중요한 능력은 선수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라고 말한다. 알렉스 퍼거슨 경 역시 수많은 스타를 통제했지만, 필요한 순간에는 가장 먼저 선수의 자존심을 세워줬다.
반대로 리더가 스타를 견제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하면 조직은 균열되기 시작한다.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큰 논란 역시 손흥민 활용법이었다. 멕시코전에서는 지나치게 고립됐고, 남아공전에서는 벤치에서 출발했다. 결과적으로 두 선택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물론 감독에게는 전술적 선택의 자유가 있다. 문제는 결과보다 과정이었다. 선수를 중심으로 전술을 만들지 못했고, 전술을 위해 선수를 희생시키는 모습이 반복됐다. 현대 축구는 스타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시대는 끝났다. 그러나 스타를 가장 잘 활용하는 팀이 가장 강한 팀인 것은 지금도 변하지 않는 진리다.
리오넬 메시가 있는 아르헨티나는 메시를 위해 뛰는 팀이 아니라 메시가 가장 빛날 수 있도록 모두가 움직이는 팀이었다. 킬리안 음바페의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팀보다 스타가 앞서서도 안 되지만, 스타를 살리지 못하는 팀 역시 경쟁력을 잃는다. 이번 대표팀은 그 균형을 끝내 찾지 못했다.
동양의 오랜 지혜에 ‘인재를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쓰는 것’을 치국의 으뜸으로 삼았다. 제갈량은 그의 저서 '장원(將苑)'에서 리더가 경계해야 할 부덕(不德)으로 ‘현능한 자를 시기하고 능력 있는 자를 억누르는 것(질현투능·嫉賢妒能)’을 꼽았다. 개성이 강하고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천재적인 선수를 다루는 리더의 덕목은 철저한 ‘포용’과 ‘소통’에 기반해야 한다.
그러나 홍 전 감독이 보여준 일련의 언사와 용인술은, 본인의 찬란했던 선수 시절 그림자에 갇혀 현재의 거장을 질투하고 통제하려 했다는 항간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나를 따르라’식의 과거 관습에 얽매여, 세계적인 무대에서 뛰는 선수의 활용 가치를 스스로 짓밟은 독선(獨善)의 결과다.
축구는 단순한 공놀이가 아니라 시대를 투영하는 거울이다. 팬들이 목격한 것은 단순한 전술적 실패가 아니라, 시대를 읽지 못하는 리더십이 어떻게 조직의 가장 강력한 무기를 무력화하고 파멸로 이끄는가에 대한 잔혹사다.
손흥민은 탈락 후 "어린아이의 꿈의 무대가 무너져 내린 것 같다"며 죽기 살기로 다시 뛰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영웅의 마지막 월드컵을 이토록 허무하게 난도질한 대가는 오롯이 축구협회와 감독의 몫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했다. 구태의연한 관습과 아집으로 한국 축구를 좀먹은 이들이 물러나고, 진정 선수를 빛내고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 ‘큰 리더십’이 들어설 때 비로소 한국 축구의 잔혹사는 끝이 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