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의 평양행 시진핑, '비핵화' 지우고 '혈맹' 택했다 [이우탁의 인사이트]


中 용인’ 속 핵보유국 되려는 北...트럼프 행정부 태도 논란
北 핵무기 보유 성공시 동북아 ‘핵균형’ 붕괴...韓 선택 갈림길

7년 만에 평양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9일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환영을 받고 있다./신화.뉴시스

[이우탁의 인사이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박2일 간의 평양 방문을 마치고 9일 귀국하자 국제사회는 시 주석의 방북 기간에 ‘비핵화’를 의미하는 ‘외교적 표현’이 단 한차례도 언급되지 않은 점을 주목했다.

어쩌면 이는 예견된 일이었다. 시 주석의 이번 방북은 2019년 6월 이후 7년 만에 이뤄졌다. 공교롭게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 1기와 2기라는 시간적 공백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가 관심사였는데, 이는 노동신문 기고문을 보면 체감적으로 알 수 있다.

시 주석의 2019년 기고문에서는 ‘조선반도(한반도)’라는 표현이 6차례 등장했다. "조선반도에 평화와 대화의 대세가 형성되고 조선반도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쉽지 않은 력사적 기회가 마련됐다"고 한 대목이 대표적이었다. 당시의 북미 비핵화 협상과 한반도 평화체제논의를 상정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번 방북 때 실린 지난 8일 기고문에서는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등과 연관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전략적 협조’나 ‘국제질서’ 등의 표현이 반복됐다. 특히 "패권주의와 강권정치를 반대하며 군국주의 부활을 꾀하고 지역의 안전과 안정에 위해를 주는 모든 야욕과 책동을 반대해야 한다"는 내용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시 주석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8일 회담에서도 "중국·북한 양국은 지역을 넘어 세계의 평화·안정과 발전·번영을 위해 적극적인 기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을 ‘혈맹’을 넘어 ‘글로벌 파트너’로 삼아 전략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중국의 달라진 모습은 과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필자는 국제 핵비확산의 관점에서 이를 주목한다. 국제사회에서 공식으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은 국가는 미국과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5개국(P5)이다. 핵환산금지조약(NPT)에도 규정돼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인도, 파키스탄은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사실상(de facto) 핵보유국'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각자 다른 과정을 거쳐 핵실험에 성공했는데, 그들이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행세하는 배경에는 ‘미국의 용인 또는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결국 세계 최강 미국의 허락 없이는 핵무기를 보유할 수 없는 게 국제사회의 현실이었다. 미국은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허용치 않겠다는 명분으로 대규모 군사공격을 강행했다. 중국과 러시아도 이런 미국의 행보에 맞서지 못했다.

그런데 북한은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 이미 6차례나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은 아예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해 놓았다. 시진핑 주석의 방북 하루 전인 지난 7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총무부장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는 "절대 불퇴의 한계선"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의 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재확인했다는 미국 측 주장을 일축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 주석이 북한의 핵보유를 ‘전략적으로 용인’하는 모습이 포착된 것은 어쩌면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핵보유국’이 등장함을 의미할 수 있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신시대 중국의 군비 통제, 군축 및 비확산'이라는 제목의 백서에서도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한다’는 문구를 생략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용인’이 아닌 중국의 ‘용인’이나 ‘보호’를 받으며 핵무기 보유를 예외적으로 허용받을 경우 그 파장은 핵비확산 역사를 흔드는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태도도 논란을 낳고 있다.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지난해 12월 공개된 미국의 외교안보 종합지침인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에는 이례적으로 북한이 한차례로 거론되지 않았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종종 북한을 ‘핵국가’로 지칭하기도 한다. 의도적으로 북한 문제를 ‘외면’하는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는 이유다.

미국의 ‘외면’과 중국의 ‘전략적 용인 속에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의 지위를 굳힐 경우 이는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지역에서 핵균형의 변화가 현실화되는 의미를 갖는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에 북한까지 핵무기를 보유한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 그리고 대만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할 것인가. ’핵개발 도미노 현상‘이 벌어지면 미국과 중국은 어찌할 것인가. 북한의 현상변경 시도가 동북아 정세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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