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아 고의 '화룡점정'...'운명의 6월'이 온다 [박호윤의 IN&OUT]


US여자오픈, KPMG챔피언십 정조준
올림픽 금, 명예의 전당 넘어 커리어그랜드슬램으로 완성
천재 소녀의 완벽한 엔딩

리디아 고가 다음달 열리는 2개의 메이저 대회에서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을 노리고 있다. 사진은 경기 중 캐디에게 볼을 토스하는 모습./AP.뉴시스

[더팩트 | 박호윤 전문기자]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젖살이 채 가시지 않은 듯 통통한 볼에 두툼한 뿔테 안경을 쓴 15세 소녀가 LPGA투어에 등장한다. 투어 역사상 가장 센세이셔널한 장면 가운데 하나였다. 아마추어 신분의 이 소녀는 2012CN캐나다여자오픈에 초청 선수 자격으로 출전해 쟁쟁한 세계 톱 랭커들을 제치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다. 15세 4개월 2일. LPGA투어 최연소 우승이자 43년 만의 아마추어 챔피언 탄생이었다.

이 소녀는 이듬해 뉴질랜드여자오픈에서도 우승하며 LET(유러피언여자투어) 최연소 우승 기록까지 갈아치운다. 이어 캐나다여자오픈 2연패에도 성공, LPGA 역사상 아마추어 신분으로 2승을 거둔 최초의 선수라는 기록까지 남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예고편’에 불과했다. 마이크 완 당시 커미셔너의 특별 허가로 만 17세가 되기 전인 2014년 LPGA투어 정식 멤버가 된 이 소녀는 이후 본격적인 기록 사냥에 나선다.

이제 어느 덧 서른을 목전에 둔 리디아 고(29 뉴질랜드) 이야기다.

리디아 고는 골프 역사에서 ‘최연소’라는 단어가 붙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이정표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선수다. 만 14세 9개월의 나이에 호주투어 NSW오픈에서 우승하며 남녀를 통틀어 프로대회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웠고, LPGA와 LET 최연소 우승 기록도 차례로 갈아치웠다.

그의 천재성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위력을 발휘했다. 17세 9개월에 이미 세계랭킹 1위 자리에 올랐는데, 이는 타이거 우즈보다 무려 3년 8개월 빠른 기록으로 기네스 북에도 등재돼 있다. 또 18세 4개월 나이로 에비앙챔피언십 정상에 오르며 여자골프 최연소 메이저 챔피언 기록도 세웠다. 이어 LPGA 올해의 선수상까지 거머쥐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투어 적응조차 끝내지 못하는 18세의 나이에 이미 세계 정상에 선 것이다.

리디아가 진정 대단한 것은 그 다음부터다. 대개의 ‘천재 소녀’들은 너무 빨리 타오른 뒤 예상보다 일찍 사라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주위의 기대와 부담, 스윙 교정 후유증, 슬럼프, 자기관리 문제 등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변수들 속에서 종종 길을 잃는다.

리디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침체의 골이 깊지는 않았지만 2017년과 2018년 상금 순위가 10위권 밖으로 밀려났고, 2019년에는 48위까지 떨어졌다. 더 이상 과거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나왔다.

리디아 고가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관중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리디아는 리우올림픽 부터 세차례 올림픽에 참가, 금 은 동메달 1개씩을 땄다./AP.뉴시스

하지만 그는 다시 돌아왔다.

2022년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과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등 3승을 거두며 톱 랭커 자리에 복귀했고, 2024년에는 AIG여자오픈 우승과 파리 올림픽 금메달까지 차지하며 마침내 LPGA 명예의 전당 입성 자격을 획득했다. 골프 선수로서 얻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영예를, 20대가 끝나기 전에 이미 손에 넣은 셈이다.

그런 그녀에게 이제 단 하나 남은 마지막 동기부여가 있다. 바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이다.

커리어 그랜드슬램은 5개의 메이저 대회 중 서로 다른 4개 이상을 우승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셰브론 챔피언십과 에비앙 챔피언십, 그리고 AIG여자오픈을 제패한 리디아 고에게 남은 과제는 US여자오픈 또는 KPMG 위민스 PGA챔피언십 우승이다. 이 퍼즐이 완성된다면 리디아 고는 캐리 웹, 아니카 소렌스탐, 박인비 등에 이어 역대 8번째 커리어 그랜드슬래머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리디아는 파리올림픽 직후에 열린 AIG여자오픈에서 우승, 자신의 세번째 메이저 타이틀을 힉득했다. 사진은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는 모습./AP.뉴시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두 개의 메이저가 다음 달 연달아 리디아를 기다리고 있다.

첫 무대는 6월 4~7일 리비에라CC에서 열리는 US여자오픈이다. 1946년 창설된 이 대회는 여자골프 최고 권위를 상징하는 무대다. 총상금 역시 1,200만달러로 메이저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설령 지나친 부담 탓에 첫 기회를 놓친다 해도 곧바로 또 다른 대회가 기다린다. 불과 3주 뒤인 6월 말(25~28일) 해즐틴 내셔널GC에서 열리는 KPMG 위민스 PGA챔피언십이다. 역시 1,200만달러가 걸린 권위있는 타이틀이다.

만약 이 두 대회 가운데 하나라도 우승한다면 리디아 고는 사실상 더 이룰 것이 없는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올림픽 금메달과 세계랭킹 1위, 명예의 전당, 그리고 커리어 그랜드슬램까지. 누구도 토를 달기 어려운 완벽한 커리어가 완성되는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건 리디아 고가 이미 자신의 ‘끝’을 꽤 오래전부터 이야기해 왔다는 점이다. 그는 10대 시절부터 "30세 이전에 필드를 떠나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지난 2024년 파리 올림픽 금메달로 명예의 전당 입성 조건을 충족한 뒤에도 비슷한 뜻을 다시 확인했다.

리디아 고가 롤모델처럼 이야기하는 선수는 세계랭킹 1위 자리에서 은퇴를 선언했던 로레나 오초아(멕시코)다. 가장 높은 수준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을 때 스스로 무대를 내려오고 싶다는 의지가 읽힌다. 거창한 은퇴 투어 대신 조용한 작별을 원한다는 점도 여러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뜨거운 6월’, 리디아 고는 자신의 골프 인생을 가장 화려하게 완성해 줄 ‘화룡점정’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까.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지만 이미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 그리고 가장 찬란한 정점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스스로 마무리하려는 선수.

리디아 고가 바라는 대로, "여전히 골프를 사랑하고 가장 잘 치고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박수 속에 무대를 내려오는 장면이 과연 현실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