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거 꽂고 버틴 ‘독배’의 사투...광주 이정규호, 7월엔 다시 뜨거워진다 [이영규의 비욘더매치]


뒷벽을 친 손바닥, 링거 바늘 끝에 맺힌 '사투'
전반기를 마친 광주의 냉혹한 성적표와 그 속에서 빛난 팬들의 유대감

광주FC 이정규 감독이 16일 K리그1 인천과의 원정경기를 지휘하며 시간을 체크하고 있다. / 인천=K리그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전반 44분, 안혁주의 결정적인 헤딩슛이 골네트 바깥을 사정없이 때렸다. 전반기 유일한 1승 상대였던 인천을 맞아 '혹시나' 했던 기대가 신기루처럼 흩어지는 순간. 벤치 뒷벽을 손바닥으로 탁 치던 이정규 감독의 손끝에는 깊은 아쉬움과 뼈아픈 무력감이 동시에 묻어났다. 지난 16일 월드컵 브레이크 전 마지막 인천 원정에서 광주는 네 골을 내주며 무너졌다. 일주일에 두 경기씩 치르는 잔인한 강행군을 얇은 선수층으로 버텨낼 재간은 애초에 없었다.

이 가혹한 그라운드의 사투 뒤에는 눈물겨운 사정이 숨어있다. 나흘 전 서울전이 끝난 직후인 지난 13일, 이정규 감독은 하루 종일 병원 침대에 누워 링거 바늘을 꽂고 있어야 했다. 경기 수일 전부터 찾아온 심한 몸살에도 오직 벤치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버틴 탓이다. 온몸을 짓누르는 스트레스와 마음고생이 결국 육체의 둑을 무너뜨렸다. 8연패를 포함해 1승 4무 10패, 리그 최하위라는 차가운 성적표 앞에서 가장 살이 떨리고 아픈 사람은 감독 자신이었을 터다. 하지만 그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쓰러질지언정 후회는 없다"고 나지막이 말한다.

◆기적의 연대기 뒤에 찾아온 시린 겨울

불과 지난해까지 광주 FC가 써 내려간 서사는 '기적'이라는 건조한 단어만으로는 전부 담아낼 수 없었다. 승격팀의 몸으로 K리그1 3위라는 역대급 신화를 썼고, 마침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엘리트리그(ACLE)라는 꿈의 무대까지 출항시켰다. ‘정효볼’이라는 파격적인 전술은 대한민국 축구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흔들었고, 광주 축구전용구장은 매 주말 환희의 함성으로 넘쳐났다. 그러나 그 찬란했던 봄날의 잔상이 채 가시기도 전에 찾아온 2026년의 현실은 잔인하도록 시리다.

올해 금호고를 졸업하고 광주FC에 콜업된 19세 수비수 공배현이(왼쪽) 지난 5일 전북현대전에서 전북 모따와의 공중경합에서 볼을 따내고 있다./ 전주=K리그

◆'시스템의 계승자'가 마주한 가혹한 현실

이정규 감독은 이 기적의 서사를 함께 집필한 '광주 축구의 설계자' 중 한 명이다. 이정효 전 감독 밑에서 3년 넘게 수석코치로 동고동락하며 광주만의 확고한 시스템과 철학을 빚어냈다. 지난해 서울 이랜드 수석코치로 외연을 넓힌 뒤, 올 시즌 마침내 친정팀의 사령탑으로 복귀했다. 이정효 감독이 그를 직접 추천하며 "이제 네가 감독을 해야 한다"고 등을 떠밀었던 이유도, 이 철학을 가장 순수하게 계승하고 꽃피울 적임자가 이정규임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팀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독배를 마신 그였지만, 하늘이 내린 변수까지는 예측할 수 없었다. 시스템은 완벽했으나, 그 시스템을 돌릴 '사람'이 결핍되어 있었다. 지난해 베스트 11 중 현재 피치를 밟고 있는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을 만큼 대규모 유출이 발생했고, 재정 건전화 위반과 FIFA 징계라는 대형 악재가 도미노처럼 덮쳤다. 전체 필드 플레이어 24명 중 등록조차 못한 선수가 3명. 타 팀의 절반 수준인 21명의 가용 인원 속에는 고교를 갓 졸업한 신인 4명과 고교 2학년생 1명이 섞여 있었다.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센터백 듀오 김용혁과 공배현을 로테이션 한 번 시켜주지 못하고 12경기씩이나 중책을 지워 내보내야 했던 감독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아이들의 거친 숨소리를 듣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을 터다.

광주FC의 외국인 공격수 아사니가 지난해 8월 17일 K리그1 대전하나시티즌과의 홈경기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단돈 450만 원이 묶어버린 발목

전반기를 마친 현재 광주의 순위표는 낯설기만 하다. 개막 후 4경기까지만 해도 1승 3무로 단단하게 버텨내며 희망을 품었으나, 얇은 스쿼드의 한계는 이내 잔인한 과부하로 이어졌다. 결국 시즌 도중 찾아온 잔혹한 8연패의 늪. 13라운드 강원전에서 득점 없이 비기며 간신히 연패의 사슬을 끊어내는가 싶었지만, 이어진 서울전과 인천전에서 다시 연패를 당했다. 전반기 15경기를 치르는 동안 허용한 37실점이라는 숫자는 한때 견고했던 광주의 조직력을 무색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눈물겨운 패배를 감독과 선수들의 무능으로 치부하기엔, 그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다.

과거 아사니 영입 과정에서 미납된 연대기여금은 고작 3000달러, 우리 돈 약 450만 원이었다. 이 허술한 행정적 착오 하나가 FIFA의 '선수 등록 금지'라는 가혹한 족쇄로 돌아왔다. 이미 데려온 박원재와 오하종 같은 핵심 자원들은 관중석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팀의 패배를 지켜봐야 했고, 이정규 감독은 차포를 다 뗀 채 맨몸으로 전쟁터에 나서는 장수처럼 매 경기를 피눈물로 버텨냈다.

지난 5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전북현대-광주FC전에서 원정응원온 광주 서포터즈가 경기가 끝난 뒤 전북에 0-4로 대패한 광주 선수단을 격려하고 있다./ 전주=K리그

◆'보살'이 된 팬들, 그들이 나누는 '무언의 위로'

눈물겨운 악순환 속에서도 광주를 숨 쉬게 하는 것은 팬들의 기적 같은 사랑이다. 이 참혹한 성적 앞에서도 광주 축구전용구장에는 야유 대신 따뜻한 박수가 흐른다. 심지어 경기에 지고 돌아온 날에도 구단 앞에는 팬들이 보낸 커피차가 도착해 있다. 거친 질타 대신 꾹꾹 눌러쓴 손편지와 따뜻한 응원 메시지가 배달된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오직 광주에서만 존재하는 풍경이다.

팬들은 이미 알고 있다. 지금의 부진이 현장의 게으름이 아니라, 행정의 과오와 척박한 구단 환경이 낳은 비극이라는 것을. 이정규 감독 또한 비겁하게 숨지 않는다. "죄송하다는 말 말고는 할 말이 없다"며 고개를 숙이는 사령탑의 정공법은 팬들의 가슴을 더 시리게 만들었다. "팬분들이 저보다 상황을 더 잘 아시는 것 같다"는 감독의 말대로, 한 시즌에 고작 2~3경기 뛰던 선수들이 베스트로 나와야 하는 현실, 한계를 넘어서 과부하가 걸린 선수들의 숨소리를 팬들은 외면하지 않았다.

지난 겨울 광주FC에 합류한 측면수비수 박원재가 지난 1월 태국에서 가진 전지훈련에서 선수들과 함께 체력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박원재는 후반기부터 광주 선수로 공식 출전이 가능해진다./ 후아힌(태국)=K리그

◆7월, 반등을 위한 세 가지 활로(活路)

이제 광주의 시선은 잔인했던 봄을 지나 6월의 휴식기, 그리고 반격의 서막이 열릴 7월로 향한다. 광주에게 이 시기는 단순한 달력의 한 페이지가 아니다. 생존을 위해 반드시 뚫어야 할 마지막 활로다.

첫째는 '족쇄'의 해제다. 6월부터는 숨죽여 기다리던 풀백 자원 박원재와 미드필더 오하종이 공식 엔트리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된다. 박원재는 후반기 측면을 책임질 확실한 주전 자원이며, 폭발적인 스피드를 지닌 오하종은 경기 흐름을 바꿀 특급 조커다. 여기에 이정규 감독과 스카우트 팀이 발품을 팔아 낙점해 둔 외국인 선수 5~6명의 보강이 이뤄진다.

7월 등록 기간이 지나면 완전히 새로운 광주가 탄생하는 셈이다. 둘째는 '월드컵 휴식기'라는 보약이다. 이정규 감독은 6월 충남 보령에서 하계 전지훈련을 계획하고 있다. 지친 선수들의 체력을 추스르고, 흐트러진 수비 조직력을 뼈대부터 다시 세울 금쪽같은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심리적 변곡점이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마침내 현실의 스쿼드로 눈앞에 나타나는 순간, 연패에 짓눌렸던 선수단의 패배주의는 매서운 반격의 에너지로 거듭날 것으로 믿는다.

축구는 기록이 아니라 서사다. 광주는 지난해 '도전'이라는 이름의 서사를 썼고, 올해는 '인내'라는 이름의 서사를 쓰고 있다. 축구에서 '한 끝 차이'를 극복하는 것은 결국 서로을 향한 신뢰와 기다림의 시간이다. 링거를 맞으며 쓰러져 있으면서도 후회 대신 다음 계획을 먼저 떠올리는 감독, 그리고 패배한 날 커피차를 보내는 팬들이 있는 한 광주의 축구는 죽지 않는다. 후반기가 본격화될 7월의 태양 아래서 광주 FC가 다시 뜨거워질 날을,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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