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l 유병철 전문기자] # 바로 지금이죠. 매년 1월은 테니스 4대 메이저 대회 중 하나인 호주오픈이 열리고, 그 열기가 뜨겁습니다. 한국의 기아차가 스폰서로 참여하고, 2018년 정현이 4강 쾌거를 달성해 우리에게도 친숙합니다. 지난 18일 개막해, 내달 1일 2026년 챔피언을 배출합니다. 올해 호주오픈의 남자부 관전포인트는 ‘페나조시알’과 ‘그랜드슬램’입니다. 구시대와 새로운 시대가 겹치는 이 지점에서 그랜드슬램의 의미가 한층 배가되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확장하면 호주오픈을 넘어 2026년 메이저 대회는 테니스 현대사에 특별한 의미를 남길 것으로 기대됩니다.
# 일단 테니스, 골프를 비롯해 야구, 그리고 다수의 아마추어 종목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그랜드슬램의 의미를 정돈할 필요가 있습니다. ‘크게(grand) 강타하다(slam)’는 의미인데, 야구는 만루홈런을, 프로스포츠에서는 4대 메이저대회 우승을, 아마추어 종목에서는 올림픽-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아시아선수권 제패를 의미합니다. 이 용어는 카드게임(브리지)에서 기원했고, 스포츠에서는 야구-골프-테니스 순으로 널리 쓰이게 됐습니다.
골프와 테니스 중 어느 쪽이 먼저냐가 궁금했는데, 골프가 정설인 듯싶습니다. 1930년 ‘골프의 성인’으로 불리는 바비 존스가 4대 메이저(당시는 US오픈, 브리티시오픈, 영국과 미국의 아마추어챔피언십)를 제패하면서 이 용어가 쓰인 것이 확인되기 때문입니다. 테니스는 1933년 잭 크로포드(호주)의 그랜드슬램 도전 때 언론보도가 나왔고, 1938년 돈 버지(미국)가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면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 ‘페나조’ 시대는 2004년부터 2023년까지 로저 페더러(스위스)-라파엘 나달(스페인)-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 3인방이 돌아가면서 세계 정상을 나눠가진 20년간을 뜻합니다. 앤디 머레이(영국), 다닐 메드베데프(러시아), 카를로스 알카라스(스페인)가 1위에 등극하기도 했지만 일시적이었습니다. 페나조는 우리식 조어이고, 외신은 ‘빅 스리(3)’라고 불렀죠. 세 선수는 총 18년 11주 동안 세계 1위를 호령했는데, 조코비치(428주)-페더러(310주)-나달(209주) 순이었습니다.
메이저 우승도 총 66개였는데, 각각 24-20-22개였습니다. 2024년 6월 야닉 시너(이탈리아, 얀니크 신네르)가 조코비치를 제치고, 1위에 오른 것은 새로운 시대의 개막이었습니다. 이후 지금까지 시너와 알카라스가 1위 자리를 주고받고 있습니다(현재 1위는 알카라스). 메이저대회도 최근 2년 간 두 선수가 4개씩 나눠가졌습니다. ‘시알시대’의 초창기죠. 외신은 ‘빅 투(2)’, 뉴 투‘, ’신카라스(Sincaraxz, 시너+알카라스)‘ 등으로 부릅니다.
# 다시 호주오픈입니다. 먼저 앙시앙레짐(구체제)의 마지막 지킴이 노박 조코비치(37)는 자신의 25번째 메이저 우승을 노립니다. 메이저 단식 최다우승 기록은 자신과 ‘여자 테니스의 전설’ 마거릿 코트(호주)의 24승입니다. 지금 대기록에 도전하고 있는 겁니다. 특히 조코비치는 24번의 메이저 대관식 중 10번을 멜버른에서 치러낸 ‘호주오픈의 사나이’입니다. 10번 결승에 올라 모두 승리한 ‘결승불패’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체력과 스피드에서 신카라스에 뒤져 보이지만 현재 세계랭킹 4위이고, 2024년 파리 올림픽 금메달에 이어 지난해에도 4개 메이저대회에서 모두 4강에 올랐습니다. 호주에서라면 세대교체라는 역사흐름을 확실하게 늦출 수 있는 겁니다. 조코비치는 지난 19일 1회전을 가볍게 통과했습니다.
# 원래 그랜드슬램은 같은 해에 4개 메이저대회(순서대로 호주, 프랑스, 윔블던, US)를 우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연히 어렵죠. 이를 캘린더(이어) 그랜드슬램이라고 하는데, 오픈 시대 이전을 포함해도 남자는 2명(돈 버지, 로드 레이버), 여자는 3명(모린 코널리, 마거릿 코트, 슈테피 그라프) 뿐입니다. 만일 해를 넘겨 4개 대회를 연속으로 제패하면 앞에 부정어를 붙어 ‘논(non) 캘린더 그랜드슬램’이라고 합니다.
남자는 조코비치가 2015년 윔블던부터 2016년 프랑스 오픈까지 달성한 것이 유일하고, 여자는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미국 1회)와 세레나 윌리엄스(2회)가 있습니다. 그래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이라고, 평생에 걸쳐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것도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받습니다. 남자는 8명(오픈시대 5명), 여자는 10(오픈시대 6명)입니다. 23세의 알카라스(2003년 5월생)는 통산 메이저 6승을 기록 중인데 호주 오픈을 제외한 나머지 3개 대회에서 2승씩을 달성했습니다. 이번에 우승하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겁니다. 참고로 여자부의 시비옹테크(세계 2위)도 이번 호주오픈에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에 도전합니다.
# 세계 2위 야닉 시너(2001년 8월생)도 주목해야 합니다. 시너는 조코비치에 이은 ‘뉴 호주오픈의 사나이’입니다. 메이저 4승을 기록 중인데, 절반인 2승을 호주오픈에서 달성했죠. 특히 24, 25년에 우승한 디펜딩챔피언입니다. 2019년~2021년 조코비치에 이어 대회 3연패에 도전합니다. 그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에 프랑스 오픈만을 남겨두고 있는데, 이번에 알카라스의 우승을 저지해야, 오는 5월말 열리는 프랑스에서 자신이 먼저 그랜드슬래머가 될 수 있습니다.
# 호주 오픈에 앞서 지난 1월 10일 한국에서 알카라스와 시너는 ‘현대카드 슈퍼매치 14’라는 타이틀로 맞대결을 펼쳤습니다. 접전 끝에 알카라스의 2-0(7-5 7-6<8-6>) 승리였죠. 이벤트경기인 까닭에 공식 성적에 반영되지 않았는데, 두 선수의 맞대결은 현재 10승6패로 알카라스의 우위입니다. 호주 오픈의 결과는 어떨까요? 알카라스의 캐리어 그랜드슬램이 나올까요? 아니면 시너가 3연패를 달성하며 롤랑가로스(프랑스오픈) 꿈을 키워갈까요? 그것도 아니면 조코비치가 예상을 깨고 대기록을 달성할까요? 외신을 보니 테니스 전문가들의 의견도 갈리고 있습니다. 알카라스와 시너 모두 2026년 그랜드슬램 달성(코코 밴더웨이), 둘 다 불가능(빅토리아 두발) 등 다양합니다. 여러분의 예상은 어떠신지요? 확실한 것은 지금 우리가 '페나조시알(페더러-나달-조코비치-시너-알카라스)' 시대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