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골프, US여자오픈 한일전 '열세' 의미 [박호윤의 IN&OUT]


최혜진 4R 분전으로 2년 연속 톱10 전멸 간신히 막아
일본은 준우승 등 톱10 3명 강세, 한국 상당기간 고전 불가피할 듯

80회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스웨덴의 마야 스타르크가 우승컵을 바라보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AP.뉴시스

[더팩트 | 박호윤 전문기자] LPGA투어 올시즌 두 번째 메이저대회인 US여자오픈이 지난 2일 끝났다. 80회나 되는 역사와 그에 걸맞는 권위, 그리고 1,200만달러라는 사상 최고액 상금과 역대급 난코스 등으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올해 대회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스웨덴의 마야 스타르크(26)가 7언더파 281타의 기록으로 정상에 올랐다.

2022년 투어에 데뷔한 스타르크는 지난 3년 반 동안 한차례의 우승과 14번의 톱10으로 벌어들인 상금 총액이 280만달러였지만, 이번 US여자오픈 우승으로 단번에 240만달러를 추가했다. 스타르크는 아니카 소렌스탐(1995, 1996, 2006년 우승) 이후 19년 만에 US여자오픈을 제패한 3번째 스웨덴 출신 선수가 됐다. 스웨덴 출신 첫 번째 US여자오픈 챔피언은 리셀로테 노이먼(1988년).

‘특별한 인연’으로 막연한(?) 기대를 걸었던 한국여자골프는 올해 US여자오픈에서 실망스런 성적표를 든 채 새로운 스타탄생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본고장 미국(39명)보다는 적지만 라이벌 일본보다는 4명 많은 25명의 선수가 출전했음에도 고작 1명(최혜진, 공동 4위)만 톱10에 드는데 그쳤다. 지난해에는 단 한 명도 톱10에 들지 못했는데 그나마 낫지 않느냐고 자위할 수 있을지 모르나 최근 몇 년간 계속돼 오고 있는 침체 국면이 여전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마지막 날 분전으로 공동 4위에 올라 한국선수 중 최고성적을 기록한 최혜진이 티샷을 하고 있는 모습./AP.뉴시스

반대로 몇 년 새 강세가 눈에 띄게 두드러지고 있는 일본과 견주어 보면 더 그렇다. 일본은 이번 대회에서 비록 우승은 놓쳤지만 루키 다케다 리오가 공동 2위에 오른 것을 비롯, 지난해 신인왕이자 올 첫 메이저대회 쉐브론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사이고 마오가 공동 4위, 그리고 2019년 AIG위민스 브리티시오픈 챔피언 시부노 히나코가 공동 7위에 랭크되는 등 톱10에 3명이나 이름을 올렸다. 더구나 이들은 나흘 내내 치열한 우승 경쟁을 펼쳐 마지막 날 4언더파를 몰아쳐 순위가 급상승한 최혜진과는 경우가 달랐다.

일본이 단지 이번 대회에서만 위세를 보인 것이 아니다. 올시즌 모두 13개 대회가 끝난 현재 한국과 스웨덴, 일본이 각각 3승씩을 기록, 외견상 백중세를 보이고 있긴 하나 한꺼풀 안쪽을 들여다 보면 일본의 신장세가 확연히 느껴진다. 특히 올시즌 새롭게 투어에 뛰어든 무서운 루키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신인왕 순위를 보면 1~4위가 모두 일본 선수다.

블루베이LPGA에서 신인으론 시즌 첫 번째 우승자로 이름을 올린 다케다 리오가 632점으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고 쌍둥이 자매의 동생이자 리비에라 마야오픈 우승자인 이와이 치사토가 2위, 야마시타 미유와 쌍둥이 언니 이와이 아키에가 3, 4위에 각각 랭크돼 있다. 이들은 연간 37개로 LPGA투어 보다도 대회 수가 많은 JLPGA투어에서 걸출한 활약을 펼치며 기량을 쌓은 뒤 세계 무대로 뛰어 든 케이스다.

다케다는 지난해 일본투어에서 무려 8승을 쓸어 담았고 야마시타는 2023, 2024년 2년 연속 JLPGA투어 올해의 선수 및 상금왕을 수상하며 통산 13승을 올린 바 있는 특급 선수이자 지난해 LPGA투어 Q시리즈 수석 합격자이기도 하다. 또 쌍둥이 자매 이와이 아키에, 치사토 역시 일본투어에서 6승, 7승씩을 올린 탄탄한 기량의 소유자다.

최근 부진을 거듭하다 US여자오픈서 공동 14위를 마크, 반전의 계기를 만든 윤이나가 첫날 12번홀에서 티샷하는 모습./AP.뉴시스

이들의 또 하나의 공통점이자 장점은 투어에 데뷔하기 전 이미 많은 LPGA투어 출전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다케다는 6회, 야마시타는 무려 12차례의 투어 출전 경험이 있으며 이와이 쌍둥이도 나란히 11차례씩 LPGA투어의 맛을 본 적이 있다. 따라서 이들은 분명 전쟁터에 새롭게 뛰어 든 신입 병사임에도 이미 많은 국제전을 참전한 바 있어 어느 정도의 노련미는 갖추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이들은 지금부터 좀 더 경험이 쌓인다면 더욱 무섭게 성장할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이들이 이렇듯 어린(?) 나이에도 충분한 경험을 쌓고 LPGA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연간 쉼없이 펼쳐지는 자국투어의 활성화와 함께 투어강화정책의 일환으로 해외 진출을 적극 장려하고 있는 분위기에 힘입은 바 크다. 현 고바야시 히로미 회장이 2011년 취임 이후 줄곧 시행해 온 바, 10여 년 만에 그 성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최근 일본의 강세를 이끌고 있는 루키 다케다 리오가 마지막 날 5번홀에서 퍼팅을 한 뒤 공을 바라보고 있다./AP.뉴시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사실 한국도 박세리의 성공 이후 고무된 분위기에 편승, 2002년 LPGA정규투어인 CJ나인브릿지클래식이 국내에 창설돼 국내 투어의 활성화와 국제화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 코오롱-하나은행챔피언십, KEB하나금융그룹챔피언십, BMW레이디스챔피언십 등으로 타이틀이 변경되면서도 현재까지 역사가 이어지고 있는 이 대회는 LPGA투어 멤버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경험을 순수 국내파 선수들에게도 제공했고, 그런 값진 무대를 통해 안시현(2003년), 이지영(2005), 홍진주(2006), 백규정(2014) 그리고 나중에 세계 랭킹 1위까지 오른 바 있는 고진영(2017) 등이 ‘비 멤버 우승’이라는 신데렐라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또 설사 우승은 하지 못하더라도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직접 ‘맞짱’을 뜨는 ‘알짜 경험’을 통해 기량을 키우고 LPGA투어 진출의 꿈을 꾸는 긍정적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분위기는 결국 2010년대 중, 후반 LPGA투어에서 한국이 세차례나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15승씩을 올리는 등 여자골프 최강국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2020년대 들어 이런 위세는 급격히 위축된다. 10여 년간 대한민국 여자골프의 강세를 이끌었던 주축 선수들이 일부 은퇴하거나 전성기를 지나 하락세를 보인데다 새로운 젊은 피의 수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화수분 처럼 간단없이 이어지던 유망주들의 LPGA투어 도전이 수그러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KLPGA투어의 활성화와 국내투어 우선정책에 기인한다 할 수 있다.

연간 평균 총상금 10억원을 상회하는 30개 안팎의 대회가 열리자 선수들이 ‘고생은 많이 하고,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LPGA투어 도전보다는 국내에 안주하려는 분위기가 생겼고 협회도 해외 투어 진출을 제도적으로 제한하는 정책을 도입하면서 이를 부추겼다. 협회는 2022년부터 LPGA 대회가 국내에서 열리는 같은 주에 국내 대회를 새롭게 편성함으로써 안방에서 열리는 LPGA투어 공식대회 출전을 막았다.

이렇게 되자 그간 국내파 선수들에게 주어지던 12명의 출전권을 스스로 걷어 찰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발생한 것이다. 총 78명의 엔트리가 LPGA 멤버 상위 60명, KLPGA투어 상위 12명, 와일드카드 6명으로 이뤄지던 것이 현재는 LPGA 68명, 주최측 와일드카드 8명, 한국 아마추어 2명으로 변경돼 치러지고 있다. 즉 국내파 선수들이 국제대회를 경험하려면 안방에서는 못하고 US여자오픈 처럼 시간과 돈을 들여야 가능하게끔 된 셈이다. 큰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LPGA에 진출한 윤이나가 단 한차례의 경험도 없는 그야말로 ‘순수한 루키’일 수 밖에 없는 배경이다.

올해 4년만에 다시 부임한 KLPGA 김상열 회장이 그간 국내 투어가 폐쇄적이었다는 비판을 인정하고 "앞으로는 LPGA투어와 공동주관을 검토하는 등 최대한 협력해 나가겠다"고 한 것은 만시지탄이나 다행스런 인식의 변화로 받아들여 진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도 빨라야 내년 시즌 부터나 시행가능한 일이고 또 그렇게 한다 해도 그 효과가 긍정적으로 나타나기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여자골프는 이번 US여자오픈에서 나타났듯 안타깝지만 2010년대의 영화를 되찾기 위해선 상당 기간 고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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