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의 월미도에서] 유시민의 '설난영 비하'…20은 80을 포용할 수 있을까


지역 대학 활성화 등 대학 평준화 논의할 때
'學歷'보다 '學力' 인정받는 능력사회 구현돼야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22일 오후 경기 부천시 부천역마루광장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배우자 설난영 여사와 함께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더팩트ㅣ인천=김형수 선임기자] 일등부터 꼴등까지 줄 세우기 경쟁이 조장한 학벌사회, 학력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났다. 오징어게임과 같은 징조가 아닐 수 없다. 일류 대학을 나오고 상위 20을 달리는 지식 엘리트들이 노동자의 권리를 대변한 사례는 하늘의 별 따기에 비유할 만큼 드물다. 학벌에서 밀려난 이른바 80은 학벌 우월주의에 공분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차별, 진급제도의 불평등 등이 해소되고 능력에 따라 처우가 정해진다면 학벌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최근 유시민 작가가 학출(대학생 출신)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혼인한 '찐 노동자' 설난영 씨가 "혼인을 통해 자신이 고양됐으며, 전자부품회사 노조위원장 출신이 감당할 수 없는 대선후보 배우자라는 자리는 인생에서 갈 수 없는 자리"라는 취지로 말해 논란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등이 편협한 여성 인식과 노동 비하, 학력 차별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한국여성의전화는 "기혼 여성의 지위와 주관은 남편에 의해 결정되는 부속품에 불과한가"라며 비판했다.

인류사회가 지식정보화 사회, 평생학습사회로 이전됐지만 학력, 학벌을 내세우는 고질적인 '간판주의' 한국병은 그대로다. 10대 후반에 만들어진 학벌이 '현대판 호패'가 되고 말았다. 왜 상위 20은 나머지 80과 출발선이 같다고 생각하는가. 학벌 집단에서 이탈한 대다수의 사람은 불평등한 조건을 감수하고 능력 부족이라는 거대한 편견과 얼마나 더 싸워야 하는가. 대물림으로 자연의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은 수백~수천만 분의 1이라는 잭팟을 기대하는 80을 포용할 줄 모를까.

단지 학습 성취에서 뒤졌다고 해서 학습 역량이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갈등이론가들은 학력(學歷)이 교육 불평등에서 파생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1974년 서울과 부산에서 처음 도입된 고교평준화 정책은 중등교육의 보편화를 추구했다. 1980년대 초반 대학 교육은 이전의 엘리트 단계를 넘어 대중화 단계로 진입했으나 계층 배경이 대학의 유형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개인의 지적 능력보다 사회경제적 배경 요인이 일류 대학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라는 점이다. 브르디외는 "특정 계급의 문화가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유할 만큼의 보편적인 상징체계로서 의도된 헤게모니"라며 "드러나지 않은 상징적 폭력"이라고 지적했다.

학벌사회에서 유리한 돈 많은 상위 계층이 일류 대학을 점유하는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효하다. 오지 산골마을에 사는 수험생이 서울 노량진 고시촌에 입지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거에 드는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수백만 원의 족집게 과외를 하는 부잣집 수험생과 경쟁하기란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유시민 작가가 지난 30일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설난영 여사를 향해 한 발언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사람사는세상노무현재단

학력은 변형된 신분과 지위를 상징하면서 세력과 집단을 형성하는 학벌을 조성한다. 미국의 하버드대학 출신이 학벌을 조장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미국 사회에서 권력을 독점하지도 않는다. 입학 정원이 1500여 명 정도인 대학 졸업생들이 미국 전 분야에서 차지할 수 있는 비중은 현저히 작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에서 소위 일류 대학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하다. 서울대를 10개 만들면 수백 개에 이르는 지방 대학들은 또 한 번 대학 서열 체제에서 실패할 확률이 높다. 학벌사회의 정점을 구성하는 서울대의 독점 권력을 막을 수 있는 권력 분산의 대학 평준화 사회개혁이 공론화될 때가 됐다. 학력이 표준화된 교육과정의 성취 결과이지만 창의력과 문제해결 능력, 열정과 인내 등과 같은 정의적 영역을 살릴 수 있도록 80의 잠재 역량 개발에 대학교육의 방향이 집중될 필요가 있다.

학벌로 포장된 20의 우월성이 80의 가능성을 지배하는 선점효과는 국회를 비롯한 고위공무원 조직 등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능력사회를 주장하고 있으나 학벌 옹호 세력은 상위 학벌을 쟁취하기 위한 경쟁 동기를 제공하고, 낙오자의 능력 개발을 촉진하는 촉매제라며 공정하고 공개된 입시 경쟁을 통해 우수한 인재를 선별하게 되는 합리적 방안이라고 강변한다. 정답과 오답, 흑과 백을 골라야 하는 오지택일형 시험방식에서 탄생한 학벌 구성자들이 과연 우리 사회의 지적 풍토에 얼마나 기여했을까는 의문이다.

오늘날 평생학습사회는 획일화되고 강제적인 학교 교육을 비판한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학습이 가능한 대학 개방의 시대도 실현됐다. 학력(學歷)보다 학력(學力)이 인정받는 능력사회를 기대하지만 학벌을 추종하는 상위 20의 우월감은 요지부동이다. 희망은 패자의 재도전하는 삶에서 더욱 빛난다. 희망이 없는 사회는 좌절의 사회이다. 부끄러운 해명일지라도 현학적 헤게모니가 거듭되면 상위 20의 오만으로 비춰진다. 학력·학벌주의의 폐단도 개선되기 어렵다. 학벌주의를 비판했던 지역 상고 출신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각난다.

infact@tf.co.kr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