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탄핵 터널에 갇힌 與, 편협한 시각은 '독'


민심 역행…탄핵 찬성 의원들 겨냥 뭇매
위헌·불법적 계엄이라면서도 자성은 없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국민의힘 내부에서 찬성한 의원들을 색출하려 하거나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은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16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 /배정한 기자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터널 시야' 현상이라는 게 있다. 운전할 때 터널을 빠르게 지나면 빛이 드는 출구에만 시선이 쏠려 주변의 시야가 좁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심리학에선 눈앞의 상황에만 집중하느라 주위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주변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면 사고 위험성이 크다. 주변을 잘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판단력이 흐려질 때가 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나 위기의 순간을 꼽을 수 있겠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신체적이든 물질적이든. 애석하게도 위기 대응이 쉬운 일은 아니다. 대신 비슷한 경험을 겪었다면 조금 더 대처하기가 수월하다. 학습효과다. 그러나 위기가 닥치면 본능적으로 움츠러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위헌·불법적 12·3 비상계엄 사태로 탄핵소추된 이후 국민의힘은 탄핵 민심에 역행하는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보수 궤멸이라는 정치적 레토릭을 내세워 탄핵에 반대하는 이들을 적대시하고 있다. 16일 사퇴한 한동훈 전 대표는 떠밀리듯 직을 내려놨다.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찬성표를 행사한 의원들을 색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고 한다.

탄핵 반대 당론과 헌법기관의 소신이냐를 놓고 무엇이 우선일까. 소속과 유권자의 선택을 놓고 보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의원들은 툭하면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고 강조하지 않나. 민감하고 중대한 사안에 대해 소신껏 투표한 이들을 향해 모욕적이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는 게 과연 합당한 것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친한계로 분류되는 조경태 의원은 17일 SBS라디오에서 한 말이다. "탄핵에 찬성을 안 한 분들이 탄핵에 찬성했던 분을 징계한다는 게 말이 되나. 우리 당명이 '내란의힘'이 아니지 않나. '내란옹호당'이 돼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잘못을 비판할 수 있는, 국민의 뜻을 받드는 정당이 국민의힘에 어울리는 철학이지 않겠나."

여야가 탄핵 정국에서 정국 주도권 싸움을 벌이는 듯한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인다. 사진은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와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17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의장 주재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 참석하는 모습. /박헌우 기자

역설적으로 국민의힘 내부에서 이번 계엄이 위헌·불법적일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헌법과 법률상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점을 인정한다.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본다"(17일 권성동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비상계엄 사건이 탄핵 사유에 해당될 수 있지만 대구 지역 여론 수렴해 탄핵안 반대"(14일 우재준 의원) 등이다.

그런데도 당내 주류 의견은 '절대 탄핵은 안 된다'라는 것이다. 자성은 없다. 국민의힘이 70%가 넘는 국민 여론에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게 현실이다. 한국갤럽(10~12일 조사·유권자 1002명 대상·응답률 15.8%,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여론조사 결과,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 응답이 75%, '반대'가 21%로 집계됐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당이다. 여당도 책임을 지는 게 상식이다. 운명 공동체니까. 헌법재판소의 판단과 수사를 지켜보자고 한다면 적어도 정국 헤게모니 싸움을 자제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나마 정상적인 국정을 운영하려면 다수당의 협력이 필요하다. 자존심이나 기득권 싸움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일이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경제는 더욱 어렵다고 한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통령 탄핵한 가결을 선포한 뒤 국민에게 송년회를 재개해달라고 당부할 정도로 민생경제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대통령 책임이 가장 크다. 평온한 일상이 그립다. 국민의힘은 8년 만에 다시 탄핵의 터널에 들어섰다. 한 방향만 바라보고 간다면 길고 긴 터널이 되지 않을까.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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