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헌일 기자] 시간을 돌려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선택지가 있었다.
명태균 씨 폭로를 기점으로 확산된 각종 의혹들, 영부인 김건희 여사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 정쟁으로 경직된 정국 속에서 지속되는 야당의 공격, 수족을 묶는 것과 같이 느껴졌을 야당의 예산 삭감… 한 인간으로서, 국정 최종 책임자로서 답답함도 억울함도 참담함도 느꼈겠지만, 그에겐 선택지가 있었다.
또한 국무회의를 소집해 자신의 결정을 설명하고, 다수의 국무위원들이 그 결정에 반대 혹은 우려 의견을 낼 때까지도 그에겐 선택지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의견들과,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보편적인 국민들의 상식을 모두 외면한 채 비상계엄 선포라는 최악의 선택을 했다.
이후 상식적인 국민들은 그 상식대로 반응했다.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을 지지했으며, 결의안이 통과되자 환호했고, 윤 대통령에게 적게나마 남겨뒀던 신뢰를 거둬들였다. 그리고 탄핵을 강하게 요구하며 길거리로 나섰다.
한국갤럽이 3~5일 시행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16%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특히 비상계엄 사태 이후인 4~5일 조사분에서는 13%로 더욱 낮게 나타났다. 같은 기관이 국민일보 의뢰로 6~7일 시행한 조사에서는 윤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11%로 더 떨어졌다.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도 단 10%만이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10명 중 9명이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잃은 셈이다.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을 참조하면 된다.
다시 시계를 돌려 12월 7일 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이때도 그에게는 많지는 않았지만 선택지는 있었다. "많이 놀라셨을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리는" 마음으로 하야를 선언하거나, "국정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으로서의 절박함"이라는 정당성에 자신이 있다면 여당에 탄핵안을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임하면 됐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 번 최악의 선택을 했다. 여당에 공을 넘기며 사실상 탄핵을 막아달라고 호소한 것이다.
문제는 공을 넘겨받은 여당도 최악의 선택을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7일 탄핵소추안 표결에 국민의힘 의원 108명 중 안철수·김예지·김상욱 의원을 제외한 105명이 참여하지 않으면서 표결 자체를 무산시켰다. 국민들의 분노와 탄핵에 대한 열망이 여의도를 향했던 그날 밤, 105명은 의총장에 모여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10일에는 여당이 고심 중인 정국 수습 로드맵의 몇몇 시나리오가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2월 퇴진 뒤 4월 대선', '3월 퇴진 뒤 5월 대선' 등이 거론됐다고 한다. 계속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시나리오를 쓰는 듯하다.
이미 10명 중 9명이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을 정도로 신뢰를 잃었다. 만약 대통령이 두달 뒤, 석달 뒤 하야하겠다고 발표하면 몇 명이나 그 발표를 믿을 수 있을까. 여당이 바로 내일을 하야 시점으로 제시한다 해도 대통령이 며칠 혹은 몇 주의 고민 끝에 이를 거절하고, 이에 당황한 여당이 다시 대응책을 만드느라 또 며칠, 몇 주를 허비하는 이런 시나리오가 훨씬 더 현실성이 높아보이는 건 착각일까.
비상계엄 사태 이후 여당의 관심은 오로지 시간 벌기에만 쏠려 있는 모습이다. 겉으로는 책임, 반성을 말하지만 결국 민주당에 다음 정권을 넘겨줄 수 없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거론하며 그런 인사가 대통령이 되게 할 수는 없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탄핵 표결을 무산시킨 데 이어 또다시 국민을 무시하는 태도로 볼 수 밖에 없다. 한 여당 의원은 "1년 뒤에 국민은 또 달라진다"고까지 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지금 탄핵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도 국민이고, 탄핵이 현실화된다면, 그리고 민주당 대선 후보가 이재명 대표로 결정된다면 그에 대해 평가를 내리고 다음 대통령을 결정하게 될 주체도 국민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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