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터무니없는 가짜뉴스라 여겨질 정도로 난데없는 계엄 선포였다. 뉴스 속보를 확인하지 못하고 SNS에 나돌기 시작한 계엄 선포 소식을 접한 대다수 국민들은 그렇게 자신의 눈과 귀를 의심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계엄이 선포될 만한 상황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야 정쟁으로 정국이 혼란스럽긴 했지만, 어디에서도 그럴만한 징후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그처럼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았다.
그 때문에 별의별 근거 없는 말들이 떠돌았다. 윤 대통령이 술에 취해 갑자기 저지른 짓이다. 우리가 모르는 국지전이 휴전선에서 벌어졌을 것이다. 국정을 뒤흔들 대규모의 간첩단 사건이 발각됐을 것이다. 군부의 쿠데타 음모가 포착됐을 것이다.
그러나 TV를 통해 방영된 계엄 선포 대국민 담화문은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예산 대폭 삭감, 반복적인 특검법 상정 등 야당의 위헌적 전횡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게 담화문의 골자였다. 국회 다수당인 야당은 대통령의 담화 속에서 체제를 위협하는 반정부 종북주의자가 되고 국가를 위기에 빠트리는 범죄집단이 됐다.
이후 속보로 터져 나오는 특수부대의 국회 난입 영상 뉴스들을 보며, 광주에서 대학을 다니며 1980년 5·18을 현장에서 몸소 겪은 기자는 전율을 느꼈다. 그날의 광경들이 초 배속 영상이 풀어지듯 머릿속을 쏜살같이 스쳐 지나가며 공포감이 엄습했다.
계엄군들의 진압봉에 머리가 터져 쓰러지는 시민들, 백주 대로에서 발가벗긴 채 트럭에 실려 끌려가던 젊은이들, 저격수의 총격에 피로 물들여진 금남로, 그리고 그날 이후 숱한 세월 동안 울분에 쌓여 지내야 했던 청춘의 나날들. 기자에게 계엄은 그런 것이었다.
당시의 그 참담한 시간 들을 함께 겪은 동료 기자 몇이 그날 밤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렇게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질타했다. 계엄이 장난이냐? 계엄 해제가 가결된 후 심야 유튜브에 출연한 패널들 또한 대통령의 그 무모함을 어린아이의 손에 총을 쥐여준 위태로운 상황에 비유했다. 기자와 마찬가지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권력 찬탈을 위한 전두환 신군부 비상계엄 선포의 가장 비극적인 결말은 광주 시민 집단학살 사태다. 물론 당시 광주가 겪은 참상의 잔혹사는 지금도 여전히 보통명사는 아니다. 광주는 계엄사의 보도 통제에 갇혀 있었고, 그날의 일들은 오래도록 금기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80년 5월의 진실을 훼손하는 왜곡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를 보며 기자가 느낀 공포는 그래서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비약이라 단정하는 이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계엄군의 국회 난입이 이후 어떤 국면으로 펼쳐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자는 원체험으로 의식 속에 각인된 비상계엄이 가져올 그 무시무시한 상황들에 대한 두려움을 접을 수는 없었다.
모호하고도 경망한 대통령의 계엄 선포로 특수부대가 국회의원들을 체포하기 위해 국회에 난입한 헌정 파괴가 자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집권 여당은 이를 여전히 정쟁의 일환인 양 가볍게 대응하고 있다. 국민 70%가 원하는 탄핵도 불발시켰다. 그날 이후 여의도 국회 앞 광장은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국민들이 추위에 아랑곳없이 구름떼처럼 모여들고 있지만 집권여당은 이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라는 세태어가 있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긴다고 다음날의 죽음을 끝내 미룰 수는 없다. 하루 더 살겠다고 부끄러운 짓 하지 말자는 얘기다. MZ 세대까지 케이팝 응원봉을 들고 탄핵 시위에 가세한 이 거대한 물결이 어디로 치달을지 그 결말은 너무도 자명하다.
소설가 한강은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학의 본질은 사랑이며, 고통을 함께 느끼는 것이 사랑이다. 정치의 본질도 이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국민의 고통과 함께 하는 정치, 그것은 정녕 공화국 시민들의 요원한 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