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이광희 기자] 1979년 10월 26일. 우리는 이날을 10.26이라고 한다. 이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오랜 군부의 장기집권이 종식된 순간이었다. 대한민국은 일시에 정치적 혼란에 빠졌다. 각 정치세력은 권력을 잡으려고 난리였다.
시민들은 민주화를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는 혼란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이를 핑계로 군부는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모든 정치활동을 중지시키고 집회 결사의 자유를 박탈했다. 언론과 출판을 통제했다. 세상은 눈 멀고 귀가 먼 상태였다.
이틈을 이용해 신군부가 등장했다.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는 박 전 대통령 시해사건 수사를 빌미로 전면에 등장했다. 이어 12.12사태를 저질러 군부를 장악했다. 쿠데타였다. 제5공화국의 탄생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전두환 정권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그들은 사회적 혼란을 막고 국가 안보를 위해 비상계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당 활동과 집회, 시위 등 모든 정치 활동을 금지시켰다. 또 언론 자유를 억압하고 출판물에 대한 검열을 더욱 강화했다. 이 뿐만 아니었다. 영장 없이 임의로 체포하고 고문을 자행하는 등 인권 침해를 일삼았다. 결국 민주화운을 탄압하고 군부독재 체제를 이어가기 위한 조치였다.
다음 날인 5월 18일. 신군부는 무력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을 짓밟았다. 그들은 시민들을 살상하며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오점을 찍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이때부터 한국 민주주의는 또다시 암울한 시대를 맞았다. 그렇게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국민들은 함부로 말하지 못했다. 수시로 검문 검색을 당했으며 보도도 통제받는 사회에서 생활했다. '땡전 뉴스'를 들으며 신군부를 찬양하는 말에 길들어져야 했다.
언론은 군부가 보도하라는 것만 보도했다. 그들이 써주는 대로 옮겨 적었다. 보도지침이 이때 나온 것이다.
인권을 유린당했지만 누구하나 나서서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물론 몇몇이 그런 말을 했지만 그들은 반사회적 인사로 분류되어 혹독한 아픔을 겪었다.
군부의 비상계엄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를 퇴행시킨 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부분으로 지금도 남아있다. 우리가 기억하는 비상계엄의 인식도 여기에 머물러 있다. 대단히 비민주적이고 비인권적이며 반사회적 조치다.
비상계엄을 통해 군부가 등장하고 군인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모습에 한국민은 남다른 거부감을 느낀다. 그것은 역사적 트라우마가 국민의 잠재적 인식 속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비상계엄을 윤석열 정부가 자행했다. 그것도 국민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무회의의 지지도 받지 못한 채 말이다.
게다가 국회의원의 과반 이상이 야당으로 구성된 이 상황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건 자폭행위다. 스스로 죽으려고 무덤을 판 것이나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그런 일을 현 정권의 집행부가 저질렀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비록 6시간 만에 비상계엄이 해제됐지만 이번 사건으로 우리사회를 나락으로 떨어 떨이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현 상황은 비상계엄을 선포할 어떤 여건도 갖추지 않았다. 사회적 혼란이 야기된 것도 아니다. 정치적으로 여소야대의 형국이라 시끄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대통령만 일하기 어렵지 많은 국민들은 그러려니 한다. 한국 정치사에서 여야의 갈등이 심각한 적은 늘 있어 왔기에 대단히 심각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또 여야의 대치가 심각해도 그것을 풀어야 하는 건 정치권이다. 대통령이 정치적 수완과 능력을 발휘하여 풀어야 할 과제다.
국민이 풀어야 할 일은 없다. 그런데 자신이 정치적으로 풀어보지도 않고 일이 안 된다고 군을 들이댄다는 게 말이 될법한 이야기인가.
그러다보니 호응을 받지 못한다.
그동안 대다수의 국민들은 야당의 대통령 탄핵문제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했다. 그래도 국민 다수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탄핵시킨다는 데 선뜻 합의해주지 않았다.
야당에서는 탄핵을 운운했지만 더 많은 국민은 그것을 귓등으로 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다르다. 이제는 대통령의 탄핵문제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그 스스로가 그리 만들었다. 이번 비상계엄 선포는 그 마지노선을 넘은 조치였다.
스스로 화약을 지고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갔으니 이를 어쩌겠는가. 거리로 몰려나가는 시민들을 탓할 일이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