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희선의 '우아한' 산책] 문재인·윤석열 정부 5년, 계주는 계속되어야 한다

선출 권력은 계주 경기의 계주 선수와 같다. 전 선수에게 계주봉을 건네받아 주어진 일정 구간을 최선을 다해 완주하고 다음 선수에게 넘겨주면 그 역할은 끝난다. 그래야 국가발전이 지속되고 국민이 행복하다.사진은 지난 2022년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왼쪽)이 국회의사당 앞 잔디마당에서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치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인사하는 모습. /국회사진취재단

[더팩트 | 진희선 칼럼니스트] 이집트 룩소 인근에는 고대 이집트 왕들이 묻혀 있는 왕가의 계곡이 있다. 이집트 제18대부터 제20대 왕조까지 약 500년 동안 이집트 신왕국 시대의 파라오와 귀족들이 묻힌 곳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것은 투트모세 1세부터 람세스 11세에 이르기까지 총 65곳이다.

왕의 계곡은 고립되어 있어 일반인의 접근이 어렵고 바위를 깎아 만들어 도굴하기 어려운 구조로 만들었다. 그러나 대다수 무덤이 도굴되었고, 그나마 1922년에 발견된 투탕카멘의 무덤이 온전한 상태를 보존하고 있다. 이집트 파라오들이 이렇게 무덤 조성에 집착한 이유는 고대로 내려오는 이집트 사후 세계관에서 비롯되었다.

사람이 죽으면 사후 세계에서 심판을 받고 현세로 돌아오면 영원히 산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영혼이 현세로 돌아와서 자기가 머물 육신이 없으면 안 되니까 죽으면 시신을 부패하지 않는 미라로 만들어 보존하도록 무덤을 조성했다.

람세스 2세의 아들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은 120개 석실로 구성되어 그 규모가 엄청나다. 이집트 파라오가 지녔던 부와 권력을 실감할 수 있다. 이집트 신화와 그 시대의 장례 절차와 의미가 벽화로 장식되어 있어, 고대 이집트인의 사후 세계관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그런데 왕가의 계곡에 있는 무덤을 보면 그 규모가 매우 다양하다. 심지어 구덩이 한 개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조사에 의하면 무덤의 크기는 그 무덤의 주인인 파라오가 가졌던 권력의 크기와 집권 기간과 비례한다고 한다.

필자는 수년 전에 투탕카멘(기원전 1331~기원전 1322)의 무덤을 방문했다. 10세의 어린 나이로 파라오 자리에 오른 투탕카멘은 재위 9년째인 18세에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유전적으로 면역체계가 약했던 그는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위기간도 짧아 별다른 업적도 없어 존재감이 별로 없는 왕이었다.

역설적으로 큰 권력을 가졌던 파라오의 무덤들이 도굴될 때, 온전히 보존된 상태로 투탕카멘의 미라와 황금가면을 비롯한 화려한 부장품들이 쏟아져 나온 덕분에 유명해졌다. 그런데 다른 파라오들의 무덤에 비하면 그 크기는 상대적으로 작다. 그 이유는 어린 나이에 등극해 젊은 나이에 요절했기 때문에 무덤을 만드는데 많은 시간과 재력을 투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고인의 무덤은 대부분 유족이 조성한다. 그런데 고대 이집트에서는 무덤 축조에 그들만의 독특한 전통이 있다. 이집트 파라오들은 왕으로 등극하는 순간 자기 무덤을 만들기 시작하여 왕이 죽으면 무덤 조성작업을 종료하고 그 상태에서 죽은 시신을 미라로 만들어 그곳에 안치하고 덮는다. 새롭게 등극한 파라오는 이제 자기 무덤을 만들기 시작한다. 자기의 사후는 자기가 책임지는 것이다.

투탕카멘 무덤을 자세히 보면 무덤을 만들다 중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종종 벽을 뚫다가 만 흔적이나, 벽화를 그리다가 만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어린 나이에 등극해서 막강한 권력을 누리지 못하고 갑자기 요절하는 바람에 한참 건설 중인 무덤 공사를 중단하고 그 상태에서 마무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권력자는 대부분 자기중심적이다. 특히 권력을 쥔 순간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행하는 경향이 있다. 지동설이 아니라 천동설을 믿는 것처럼, 우주는 자기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착각을 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권력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이 추진해 왔던 사업을 접고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국민의 선택으로 새로운 권력이 탄생했으니 후보 시절 내세운 공약이나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마땅하나, 전임자가 추진해 왔던 정책을 멈추거나, 심지어는 아예 부정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민이 새로운 권력을 선택했으니, 전임자가 행한 것은 잘못된 것으로 평가받았다고 명분을 내세운다. 전임자가 잘못 박은 대못을 빼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한 4대강 사업은 수십조의 재원이 투입된 대형 국가 프로젝트였으나, 후임 권력에 의해 사업 전체가 부정되었다. 독단적인 정책 결정과 무리한 사업 추진으로 상당한 후유증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많다. 그러나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우리나라처럼 여름 장마기에 폭우가 쏟아지고, 나머지 기간은 갈수기인 물 부족 상태를 겪어야 하는 상황에서 물을 담수하여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치수해야 한다. 보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부정적인지, 긍정적인지는 아직 논란 중이다. 이미 막대한 재정을 투자한 상황에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거나 또 다른 엄청난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후임 정부는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보를 철거하여 다시 원상으로 회복하려는 시도를 여러모로 추진했다. 4대강에 참여했던 공직자들을 주홍글씨 낙인을 찍어 승진과 보직에 불이익을 주었다. 전문성을 갖춘 능력 있는 공직자들은 정부의 핵심사업에 열성을 다해 일한 죄로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주택정책에 참여했던 고위 공직자들이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무더기로 수사와 감사를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5년 동안 25차례에 걸쳐 부동산 안정화 대책을 발표하고 실행했지만 실패한 정책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 정치’에서 "선한 의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책의 선한 결과"라며 신념윤리보다 책임윤리를 강조했다.

선한 의지로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결과가 안 좋으니 당연히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아직도 진행 중이라 결과를 보아야겠지만, 불법 행위가 없다면 정책 실패는 면책되어야 한다. 비판은 필요하되, 정책 실패를 문제 삼아 단죄하면 누가 논쟁적인 사업에서 일하려고 한단 말인가! 국가 핵심사업은 대부분 논쟁적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기후 위기와 원전의 안전을 문제 삼아 화석연료 사용을 제한하고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백지화하면서 대체 에너지 산업을 육성하기로 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는 원자력 산업에 다시 힘을 실어주면서 태양광 등 대체 에너지 산업의 문제점을 들추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건설 중 중단됐던 울진 신한울 원자력발전소 3·4호기의 건설도 허가했다. 정부에 따라 정책의 ‘선과 악’이 결정되고 정권이 바뀌면 그 선과 악이 다시 뒤바뀐다.

고대 이집트에서 자기 무덤을 자기가 만드는 파라오의 무덤 축조 전통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중의적이다. 권력자의 무덤은 다른 사람이 아닌, 권력자 자신이 판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의미는 뒤를 잇는 새로운 권력자는 전임자의 정책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 자기 일을 만드는 일에 분주할 뿐이라는 권력자의 속성을 말하고 있다.

지금은 절대 왕조시대가 아니다. 권력은 국민한테서 나오며, 선출된 권력은 주어진 기간 동안 연극을 진행하는 연출자일 뿐이다. 주어진 기간 동안 자기 역할에 충실하며 전임자가 해 놓은 일에 새로운 일을 얹혀, 국가발전과 국민복리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존재다. 전임자가 해 놓은 일을 파헤치고 평가 절하하며 과거에 집착하면 미래로 나가지 못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쳐대는 잃어버린 5년!, 잘못된 지난 5년! 무엇이 얼마나 잘못됐단 말인가! 선출 권력은 계주 경기의 계주 선수와 같다. 전 선수에게 계주봉을 건네받아 주어진 일정 구간을 최선을 다해 완주하고 다음 선수에게 넘겨주면 그 역할은 끝난다. 전 선수에게 건네받은 계주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팽개칠 수 없다. 전임 선수의 잘잘못을 탓할 시간에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계주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래야 국가발전이 지속되고 국민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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