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장병문 기자] 지주사의 주된 역할은 계열사 관리다. 계열사들의 주식을 가지고 있는 지주사는 사업회사를 총괄하고 지원하는 기획, 인사, 재무, 법무 등 경영관리 부서로 이루어져 있다. 지주사가 의사결정을 하거나 전략을 짜서 계열사에 방향을 제시한다. 지주사의 결정에 따라 그룹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 지주사가 계열사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인데, 한미약품그룹에서는 일어나고 있다.
1년째 이어지고 있는 한미약품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이 지주사와 사업회사의 다툼으로 번지는 모습이다. 현재 그룹에서는 경영권을 두고 두 진영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경영권을 쥔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이사와 임종훈 대표 등 '형제' 측과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 임주현 한미약품그룹 부회장,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등 '3인 연합' 측이다.
고발전은 지난 13일 임종윤 이사가 최대주주로 있는 코리그룹의 한성준 대표가 송영숙 회장과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를 배임 의혹을 제기하면서 촉발됐다. 지난주에는 형제 측이 3자 연합인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 신동국 회장을 위계 및 업무방해 혐의로 형사고발했다. 이어 한미사이언스가 한미약품의 박재현 대표를 비롯한 경영진 4명을 배임·횡령 혐의로 고발했다.
한미약품도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다"며 발끈했다. 한미사이언스의 고발 행위에 대해 무고, 업무방해, 배임 등 혐의로 수사기관에 고발하겠다고 맞불을 놓았다.
지주사는 계열사 경영 상태를 깊숙하게 들여다보고 있어 짧은 기간 여러 건의 고발을 쏟아낼 수 있었던 보인다. 고발 대상자는 한미약품그룹 오너와 전문경영인들이다. 이들은 조만간 경찰 조사를 받을 예정이며, 최악의 경우 법정에 서게 된다. 결국 경영에 전념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 지주사가 계열사의 지원 사격은커녕 내부 총질로 '자멸의 길'로 가는 모양새다.
경영진들의 고발전은 그룹 전체 사기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서로 협력하던 지주사와 계열사 직원들은 이제 상대방의 허점을 찾기에 바쁜 모습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법.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한 조직의 감시 분위기가 역력하다.
1년 가까운 내홍 탓일까. 잘나가던 한미약품 실적도 주춤했다. 한미약품의 3분기 연결 기준 매출 3621억원은 작년 동기 대비 0.7%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51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4% 고꾸라졌다. 사업회사 실적이 감소한 탓에 지주사의 수익성도 악화됐다. 한미사이언스의 3분기 영업이익은 22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7.2% 내려앉았다. 회사는 중국에서 발생한 홍수 등 자연재해가 북경한미 실적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실적 하락이 일시적 영향이라면 다행이겠지만 한미약품의 기업 역량이 훼손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더 큰 문제는 분쟁이 언제 끝날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갈등의 골이 깊어 당장 화합에 대한 기대감도 크지 않다. 한쪽이 양보하지 않는다면 불안한 경영은 내년에도 이어지겠다. 오너 개인의 이익도 중요하겠지만 회사와 임직원, 투자자들을 위한 진지한 고민도 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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