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희선의 '우아한' 산책] 2000배 오른 강남 땅 값, 상승 이유 있다


교통인프라 개발이 지역발전과 쇠퇴에 미치는 영향<상>

1960년대 중반에 영동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출발한 서울 강남개발은 1970년 한남대교(옛 명칭 제3한강교)가 강북 용산과 서초구 잠원동 경부고속도로와 연결되면서 탄력을 받게 된다. 15년간 2천 배가 상승했다./더팩트DB

[더팩트 | 진희선 칼럼니스트] 지역 부동산 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일까? 개발계획 발표와 실행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느 지역에 어떤 개발이 일어나는지 늘 궁금해하며 관심을 둔다. 그 많은 개발 중에서도 광역교통인프라 시설이 가장 임팩트가 크다.

광역교통인프라 시설은 도로(교량), 항만, 공항, 철도 등인데, 여기서는 도로(교량)와 철도를 다루어 보자. 지역을 관통하는 도로, 철도가 들어서면 교통이 편리해져 인접 지역의 의료, 문화, 백화점 등 편익시설을 이용하기가 좋아진다. 반면 교통인프라의 거점이 되는 지역은 교통의 요지가 되어 더 큰 도시로 성장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대전이 경부선 철도와 고속도로가 관통하면서 교통 거점 도시로 성장한 도시다. 더구나 호남선이 대전에서 분기하면서, 대전은 영호남에서 서울로 왕래하는 사람과 물류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도시로 발전한 것이다. 대신 조선시대부터 충청지역의 핵심 도시였던 충주와 청주가 더 이상을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하게 된다. 교통의 요지인 대전은 구심력이 작용했지만, 충주와 청주는 원심력이 작동된 것이다. 영남 지역에서는 상주와 구미가 반대의 길을 걸었다. 삼국시대 이래로 영남의 중심도시였던 상주는 경부선이 비켜 가면서 쇠락의 길을 걷고, 경부선이 관통하는 구미는 1970년대에 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인구 40만이 넘는 도시로 성장했다.

1960년대 중반에 영동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출발한 서울 강남개발은 1970년 한남대교(옛 명칭 제3한강교)가 강북 용산과 서초구 잠원동 경부고속도로와 연결되면서 탄력을 받게 된다. 고인이 된 시립대 손정목 교수에 의하면 한남대교가 착공할 당시 평당 200원 하던 잠원동과 신사동 일대 땅이 한남대교가 개통되고 강남 택지가 거의 마무리된 1979년에는 40만 원까지 치솟았다.

15년간 2천 배가 상승한 것이다. 같은 기간에 신당동 강북 땅값은 평당 3만 원에서 50만 원으로 17배가 상승했다. 물론 천문학적인 강남 땅값 상승은 5대 명문 공립고와 5대 명문 사립고의 강남 이전, 강북개발 억제, 강남개발 세제 혜택 등 많은 강남개발 촉진 정책이 시너지를 발휘한 결과다. 그런데도 강남 땅값 상승의 가장 큰 촉진제는 한남대교 개통이라 할 수 있다.

1979년 가수 혜은이가 부른 ‘제3한강교’가 히트 치면서 강북 사람들은 퇴근 후에 한남대교를 건너 신사동과 잠원동 일대 유흥시설에서 한 잔 하며 회포를 풀었다. 바야흐로 강남 상권이 형성되면서 강남 시대가 출범한 것이다. 강남개발에 가장 강력한 임팩트를 준 것은 지하철 2호선이다.

1980년부터 단계적으로 개통된 지하철 2호선은 강남개발의 촉매제가 된다. 지하철 2호선은 테헤란로 상업업무 지구를 관통하는 혈관 역할을 하며 강남개발을 촉진했다. 애초에 지하철 2호선은 지하철 1호선과 수평으로 나란히 기성 시가지를 관통하도록 영등포~을지로~왕십리를 잇는 노선이었다.

그런데 강남개발을 촉진하기 위해서 강북 기성 시가지와 강남 신도시를 연결하며 한강을 중심으로 순환하는 노선으로 변경하게 된다. 지하철 2호선을 품은 테헤란로를 따라 고층 업무상업 빌딩들이 건설되고 금융, 정보통신 등 대기업과 공기업 본사들이 입점하면서 강남 비즈니스 시대를 열었다. 지하철 2호선은 강남 발전과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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