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진희선 칼럼니스트] 최근 정부는 수도권의 아파트 가격이 오름세를 보이자 ‘국민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하였다. 이제까지 정부의 주택공급 방안은 주로 아파트 공급에 치중했었다. 사람들이 갈수록 아파트를 많이 찾고 주택시장의 가격 흐름을 주도하는 것이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택공급 방안에 ‘빌라 등 비아파트 시장 정상화’ 정책이 포함되어 있다. 빌라를 신축하면 공공에서 향후 2년간 11만 호를 매입하여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하고, 서울에서는 공공에서 무제한으로 매입할 테니 건설업자들이 열심히 지으라는 신호를 시장에 주었다.
또한 ‘뉴빌리지 사업’을 통하여 빌라촌의 열악한 도시 인프라를 개선하겠다고 한다. 공모를 통하여 면적 5만~10만m²의 노후 저층주거지 밀집 구역에 최대 150억 원을 지원하여 주차장, 도로, 공원, 쓰레기처리장, CCTV, 보안등, 방재 돌봄 체육시설 등을 확충한다는 것이다. 빌라촌의 주거환경을 개선하여 비아파트 시장을 활성화하는 전환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빌라촌으로 불리는 저층주거지 환경개선을 위해 정부와 서울시는 많은 노력을 해 왔다. 서울시에서는 2008년부터 기반시설이 양호한 단독주택지를 대상으로 ‘살기좋은 마을만들기’ 사업을 추진했고, 다가구 다세대 밀집지역에서는 휴먼타운 사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2010년대 초반부터는 범국가적으로 추진한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수천억 원의 재정을 투입, 빌라촌의 환경개선을 해왔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부터 아파트를 중심으로 집값이 폭등하면서 저층주거지 도시재생사업은 그 힘을 잃게 된다.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골목길을 정비하고, 주차장 CCTV 공원 등 공공시설을 확충하여 주거환경을 개선하였지만, 아파트 단지와 비교하여 여전히 열악해 사업 완료 이후에도 집값이 별로 오르지 않는다. 심지어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주거환경을 개선한 곳에서도 다시 아파트 재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2023년 기준으로 국민 43.2%가, 서울시민은 50.1%가 저층주거지에 산다. 서울이 아파트가 더 많은 것 같지만 1990년대에 아파트 위주로 개발된 신도시가 수도권과 지방에 많이 건설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서울에 저층주거지에 사는 사람이 아직은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아파트값 폭등에서 경험했듯이 더 많은 사람이 아파트를 선호하다 보니 서울도 조만간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이 절반을 넘어설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에 몇 년 사이 빌라촌에서 발생한 ‘전세 사기’는 저층주거지 세입자에게는 어려움을 가중하고 있다. 어림잡아 1만 세대가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빌라촌 전세 사기는 빌라에 대한 공포감을 부추기며 ‘빌라 포비아(Phobia)’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수요가 적어지다 보니, 건설업자들이 빌라 건설을 외면하면서 서울에서 매년 2~3만 건 하던 인허가 물량이 2022년부터 줄어들어 2023년 3,751건으로 85%나 감소하였다. 빌라는 아파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여서 서민들과 사회초년생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런데 빌라촌이 전세 사기 공포로 외면받게 되면 주거 사다리의 가장 밑에 부분이 무너지게 된다.
한동안 강력한 진영을 구축하며 공전하던 정치권에서 모처럼 여야 합의로 ‘전세사기특별법’을 제정할 정도로 빌라 포비아의 심각성을 말해 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뉴빌리지’ 사업은 저층주거지를 아파트 단지에 버금가는 주거환경으로 탈바꿈하겠다는 정책적 의지를 강력하게 표출한 것이다.
외환위기 이전인 1990년대까지는 빌라와 아파트 가격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외환위기가 끝나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 가격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그 차이가 더 커지고 있다. 지금은 같은 지역 같은 평형 규모의 집값이 2배를 넘어서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 그 차이가 더 벌어질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아파트는 신축해서 입주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더 오르기 시작하는데 빌라는 입주하고 나면 그때부터 감가상각이 적용되어 떨어지기 시작한다. 왜 그럴까? 아파트 단지의 주거환경이 빌라촌보다 더 좋다는 것을 집값이 말해 준다. 아파트 단지는 진화하는데 빌라촌은 새로 다가구·다세대를 짓는다고 해서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밀도가 높아져 주거환경이 더 열악해지는 일도 있다. 그동안 재정을 투입해서 빌라촌 인프라를 개선했지만, 아파트 단지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선진국에서는 주택가격도 높고 인기가 좋은 저층주거지가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외면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예전에는 우리나라도 외국 선진도시의 저층주거지와 같이 앞마당과 담장을 갖춘 좋은 단독주택이 즐비하게 지어져 안온하고 인기 있는 지역이 많았다. 그런데 1989년 노태우 정부가 추진한 200만 호 건설에서 그 상당수의 물량을 저층주거지에서 해결하기 위해 다가구·다세대 제도를 도입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분당 일산을 비롯한 1기 신도시의 주택건설 물량은 40만 호에 지나지 않는다. 단독주택을 헐고 그 자리에 19세대 이하의 다가구·다세대 주택을 지을 수 있도록 건축 관련법이 개정되어 저층주거지는 밀도가 높아지고 일조권, 통풍, 공원, 도로, 주차장 등 도시 인프라 시설 부족에 시달리게 되었다. 다가구·다세대가 지어지면 지어질수록 빌라촌 주거환경은 더욱 열악하게 된다.
그러면 빌라촌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다가구·다세대를 헐고 다시 단독주택 지역을 짓는 것이 가능할까? ‘열역학 제2 법칙’처럼 불가역적이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솎아내기다. 열악한 빌라촌 주거환경의 본질적인 문제는 저층으로 너무 밀집된 데에서 발생한다. 일부 지역은 아파트로 재개발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고도제한이나 경관지구에 묶여 사업성이 안 나오는 지역은 재개발할 수 없다. 그런 지역은 기존 다가구·다세대를 솎아내어 밀도를 낮추어야 한다.
결합개발이라는 제도를 활용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빌라촌과 재개발 재건축 지역을 하나의 개발 단위로 묶어 추진하되, 빌라촌 거주자 중 아파트를 원하면 재개발아파트를 우선으로 분양해 주고 그 거주자가 살던 빌라촌의 주택과 토지는 공공부지로 기부체납하여 공원, 주차장, 도서관 등 그 지역에 필요한 공공시설로 활용한다. 재개발 재건축을 하게 되면 일정량의 토지와 건물을 공공에 기부체납하게 되어 있다. 이제까지는 자기 개발구역에 안에서 기부체납하던 것을 같이 결합개발하게 된 빌라촌에 공공시설로 기부체납하는 것이다.
재개발 재건축에서 조합 분양분을 제외하고도 남는 일반 분양분을 활용하면, 공공 재정투입 없이도 빌라촌의 밀집도를 현저히 낮추고 공공시설도 마련할 수 있다. 결합개발을 통해 빌라촌 문제를 해결하는 사업장에는 용적률과 높이 인세티브를 과감하게 주어 조합 등 민간사업자가 선호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이렇게 결합개발 방식을 통해 과밀한 빌라촌에서 1년에 1만 호씩 솎아내기를 10년 이상 지속한다면 저층주거지 빌라촌 문제를 상당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지면상 너무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얘기는 생략하나, 빌라 포비아의 진통을 앓고 있는 저층주거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솎아내기가 최선의 방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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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칼럼 내용은 필자의 주관적 시각으로 더팩트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