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순규 기자] 안세영이 쏘아올린 '작은 공'이 갈수록 파문을 확산시키고 있다. 안세영의 귀국과 대한배드민턴 협회 측의 반박이 이어지면서 이제 진실공방 양상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2024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28년 만에 금메달을 획득한 안세영은 작심한 듯 현장 기자회견에서 배드민턴협회의 강압적이고 획일적 선수단 관리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뒤 7일 귀국했다. 하지만 안세영은 "귀국해서 자세한 말씀을 드리겠다"던 말과 달리 "저는 싸우려고 하는 의도가 아니라 정말 운동에만 전념하고 싶은 그런 마음을 호소하고 싶었다. 그렇게 이해해 달라"면서 말을 아꼈다.
안세영은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가진 취재진과 2분가량 인터뷰를 통해 "아직 협회와 이야기한 게 없고 또 팀(삼성생명)과도 상의된 게 없어 더 자세한 건 최대한 빨리 상의해 보고 말씀드리겠다"면서 자리를 떠났다. 관심을 모았던 자세한 얘기는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지난 5일 오후 6시께 파리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고 기자회견을 하면서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이틀이 지나 귀국하기까지 협회 측과는 문제 해결에 대한 어떤 상의도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협회와 안세영은 코리아 하우스의 메달리스트 기자회견 불참을 놓고 서로 다른 얘기를 함으로써 논란만 증폭시켰다. 문제는 역시 대한배드민턴협회의 자세다. 대한배드민턴협회는 안세영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후 인터뷰하는 모습을 지켜본 뒤 1시간여 후 장장 10페이지에 달하는 보도자료를 내고 파문에 대한 사과와 함께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겠다면서도 안세영의 주장을 하나씩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사안을 진실공방 양상으로 몰고갔다.
협회는 "한국 스포츠의 중요한 선수가 국가대표팀을 떠나게 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면서 "열린 마음으로 심도 있는 면담을 통해 안세영 선수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문제점을 파악하고 최대한의 조처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안세영 선수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협회의 주어진 상황 아래서 최선을 다했음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협회가 진정으로 선수 의견에 귀를 기울여 문제점을 파악하고 조치를 하려고 했다면 보도자료를 내기 위해 조기 귀국을 할 게 아니라 현지에서부터 진상 파악 노력을 기울였어야 되는 것 아닌가. 이게 상식적이다.
김택규 대한배드민턴협회 회장은 일부 임원진과 함께 사태를 정확히 알리기 위한 보도자료를 작성하기 위해 귀국 일정을 변경, 선수단보다 먼저 귀국했다고 한다. 7일 오전 8시 30분께 귀국한 김 회장은 기자들과 인터뷰에서 "보도자료를 오늘 중으로 배포하기 위해서였다. "(선수단과 함께 오면) 도착시간이 오후 4시인데, 그때 만들 수가 없다"고 말했다.
문제 해결의 접근 방식이 처음부터 잘못됐음을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문제가 발생했다면 한국에 있다가도 현지로 달려갔어야할 회장이 현지에 있으면서도 선수를 만나보지 않고 보도자료를 만들기 위해 선수단보다 먼저 귀국한다는 발상 자체가 신기할 정도다. 물론 하고 싶은 얘기도 많고 억울한 부분도 있겠지만 문제를 조정하고 해결해야할 회장으로서 판단해야할 우선 순위가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이다.
대한배드민턴협회는 안세영의 문제 제기에 대해 진솔한 대화와 해결을 위한 노력보다는, 올림픽 메달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고 잘못은 없다는 식의 반박으로 일관했다. 이는 그동안의 소통 부재를 다시 한번 드러내며, 협회가 문제 해결에 대한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최선을 다했다는 변명이 아니라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들여다보기 위한 노력을 먼저 했어야하지 않을까.
선수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음을 인정하고, 구체적인 개선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안세영의 문제 제기가 선수 개인의 일방적 생각일 수는 있다. 하지만 28년 만에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선수가 지난 7년 동안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왔다는 말에는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올림픽은 전 세계 선수들이 기량을 겨뤄 순위를 가리는 대회다. 다같이 노력해도 메달을 따는 선수가 있고, 참가에 그치는 선수도 있다. 선수 개개인의 특성과 다양성을 존중해야 성과를 낼 수 있지 공정과 평등을 내세워 획일적으로 선수단을 운영해서는 문제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쉽지 않은 문제지만 해결 방법은 역시 진솔한 대화와 소통이다. 강압적이고 획일적 방식이 아니라 진솔한 대화를 통해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방향이 다르면 결과도 다를 수밖에 없다. 남쪽으로 간다면서 북쪽으로 가는 길로 열심히 간다고 남쪽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수레의 끌채는 남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바퀴는 북쪽으로 굴러간다는 의미의 남원북철(南轅北轍)이란 말이 있다. 목표와 행동이 일치하지 않음을 비유한 고사성어인데 대한배드민턴협회가 진정으로 배드민턴을 위하는 조직이라면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