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순규 기자] 금메달보다 값진 은메달을 봤다. 2024 파리 올림픽 유도 여자 57kg급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허미미(21)의 활약과 태도는 심판의 부적절한 판정으로 금메달을 따지 못한 아쉬움을 넘어 온갖 비난 속에서도 무엇이 올림픽을 빛나게 하는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보인다.
재일교포이자 독립운동가의 후손 허미미는 2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아레나 샹 드 마르스에서 열린 유도 여자 57kg급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한국 여자 유도가 8년 만에 올림픽에서 거둔 최고 성적이자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정선용 이후 이 체급(당시 56kg)에서 28년 만에 다시 한번 따낸 은메달로 이번 대회 한국 유도의 첫 메달이다.
기록으로 보면 정말 축하를 받을 만한 일인데 실상은 논란에 묻히고 있다. 심판의 부적절한 판단이 오점을 남겼다. 세계랭킹 3위 허미미가 세계 랭킹 1위 캐나다의 크리스타 데구치와 결승전에서 아쉽게 반칙패를 당하는 과정에서 나온 심판 판정은 승자인 데구치조차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할 정도로 이상했다.
정규 시간 3분이 끝나고 바로 골든 스코어에 돌입해 지도 2개씩을 받은 상황에서 프랑스 심판 바타이 매튜가 허미미에게 위장공격을 이유로 세 번째 지도를 주면서 반칙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허미미는 지친 기색이 역력한 데구치를 지속적으로 몰아붙이며 공격을 했지만 심판은 이를 위장 공격으로 판단했다. 경기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상한 판정이라고 느낄 만한 순간이었다.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일본을 떠나 한국 국가대표로 태극마크를 달고 애국가를 울리게 하겠다는 허미미의 바람도 물거품이 됐다.
정당한 경기력으로 승패가 갈린 대신 심판의 주관적 판단으로 금, 은메달의 주인공이 가려진 것이다. 더구나 상대는 지난 5월 세계선수권에서 허미미가 29년 만의 금메달을 차지했을 당시 결승전 상대였다. 금메달 기대가 컸는데 눈 앞에서 색깔이 바뀐 상황이다. 이럴 경우 대부분의 선수는 아쉬움에 쉽사리 매트를 떠나지 못 한다.
그러나 허미미는 달랐다. 그의 진가는 경기 이후에 더 드러났다. 아니 그가 보여준 태도는 경기보다 더 진한 감동을 주위에 전파했다. 누구보다 속상했을 허미미지만 그는 당당했다. 경기 결과가 내려지자마자 곧바로 인사 후 매트를 떠났으며 해맑은 웃음을 보이며 국내 지상파 3사와 현장 인터뷰를 가졌다.
5분여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본인의 소감에 대해선 주저없이 말하면서도 상대 선수나 심판 판정에 대해선 말을 하지 않고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허미미는 "금메달을 따지 못해 기쁘지는 않다. 더 준비를 잘해야겠다. 준비를 잘 안해서 아쉽다. 그래도 열심히 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 것을 잘했다고 생각한다"면서 경기 중 한국응원단의 응원 함성에 힘이 났다고 말했다.
심판 판정에 대해선 오히려 덕을 본 캐나다의 데구치가 의미심장한 말로 위장공격 판정의 모호성을 지적했다. 데구치는 시상식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지도 판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어려운 질문이다. 정확히 어떤 상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 지도에 대해 할 말은 없다"면서도 "더 나은 유도를 위해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데구치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바꿔야 한다고 확신한다"고 강조한 대목은 위장 공격에 대한 판정 기준의 모호성을 지적했다고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허미미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둔 재일교포 출신의 선천적 이중국적자로 2021년부터 한국 국가대표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경북체육회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도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군위군에서 활동하였던 독립운동가 허석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허미미의 은메달은 단순히 메달의 색깔을 떠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승리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스포츠 정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승패를 떠나 정정당당하게 경기에 임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은 올림픽 정신의 핵심이다.
허미미는 우리에게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와 함께 패했을 때 어떤 어떤 자세를 가져야하는지도 보여줬다. 이는 금메달 이상의 가치를 지닌 올림픽 정신을 보여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