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일의 서울시민 nn년차] 올바른노조의 '초심'


입지 넓혀가는 MZ노조의 미래는

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동조합이 5월 23일 서울시청 앞에서 무단결근 노조간부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올바른노조

[더팩트ㅣ이헌일 기자] 2000년대 초중반부터 대학 학생사회에서는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났다. 이른바 '운동권' 학생회를 대신해 비운동권 학생회장이 곳곳에서 탄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기존 학생회가 각자 정치적 올바름을 토대로 다양한 사회적 약자와 연대를 추구했던 것과 달리 주로 학생들의 권리와 복지를 전면에 내세우며 실리를 취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민족, 민주주의, 노동자, 민중을 이야기하던 기존 학생회가 실제 학교 생활과 동떨어져있다고 느끼던 학생들에게는 신선하고 합리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결국 수십년을 이어져오던 운동권 학생회의 명맥이 끊기게 되는 변화였다.

그러나 이런 변화 속에 탄생한 학생회 조직 중 일부는 기존 학생회가 학생들에게 거부감을 일으켰던 행태를 그대로 반복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학생회비를 사적으로 유용하다 발각되거나 개인적인 정치적 행보의 발판으로 '감투'를 이용하면서 구설에 오른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기존 학생회와 다를 것이라는 구성원들의 기대를 저버리며 스스로의 존재 기반을 깎아먹은 사례다.

약 3년 전부터 노동계에서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각 분야에서 이른바 'MZ노조'라고 불리는 노조가 결성돼 점차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이들은 청년층 노조원 비율이 높은 특징을 지녔고, 기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 노조와 차별화하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사측과의 소모적인 줄다리기와 정치적 파업을 지양하며 실질적인 처우개선과 복지를 중시하는 실리적인 노선을 택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의 올바른노조는 잘 알려진 MZ노조 중 하나다. 2021년 출범했고, 다른 MZ노조와 마찬가지로 실용적인 기조를 내세운다. 조합원은 2035명으로 1노조인 민주노총 소속 서울교통공사노조(9600명)의 1/5 수준이고, 2노조인 한국노총 소속 서울교통공사통합노조(2700명)보다도 적은 규모다.

적은 규모에도 그 일거수일투족이 상대적으로 언론의 조명을 많이 받고 국민들의 관심도 높다. 서울교통공사는 임직원 1만6000여명 규모의 전국 최대 지방공기업이자, 1000만 서울시민과 수도권 주민들의 발인 지하철을 운용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노사관계가 원활하지만은 않아 매년 진행되는 노사협상과 그에 따른 파업 여부에 시민들이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5월 1일 경동 스타벅스에서 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조를 포함한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관계자들과 면담을 하고 있다. /서울시

올바른노조는 출범 이후 1·2노조와 차별화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정치적 메시지를 지양하며 주로 실질적인 직원 복지 증진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제안한다. 대표적으로 최근에는 조합원이 아이를 낳을 때마다 출산장려금 100만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노사협상 때는 파업을 예고한 연합교섭단의 명분이 합리적이지 않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고, 올해 사측이 타임오프 제도를 악용한 노조원에 징계를 내렸을 때는 1·2노조의 불합리한 관행을 저격했다.

입지도 차근차근 넓혀가고 있다. 지난해 이사회 노동이사 두자리 중 한자리를 차지했고, 올해 영업본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근로자 대표 선거에서는 과반 표를 얻어 1·2노조를 모두 제치고 선출됐다. 또한 올해 공공기관 MZ노조 중 처음으로 임단협 개별교섭권을 얻어내 최근 단체협약을 맺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유형무형으로 힘을 실어주는 모습이다. 2022년 지하철 파업 당시 페이스북에 "올바른 노조가 옳다-대한민국 노조가 가야할 길"이라는 메시지를 올렸고, 지난해 근로자의 날에는 올바른노조를 포함한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와 면담을 가진 뒤 페이스북을 통해 "정치나 이념에서 벗어나 노동자의 권익향상에 집중하겠다는 새로고침 노조는 그래서 우리 사회의 새로운 희망"이라고 치켜세웠다. 지난해 노동이사 지명 때는 후보 4명 중 2명을 고르는 과정에서 3순위인 올바른노조 후보를 지명했다.

올바른노조가 이렇게 존재감을 키운 만큼 초심을 잃지 말고 기대에 걸맞은 행보를 이어가길 바란다. 변화하는 시대정신을 담은 새로운 자극은 노동계의 일부 구태와 고착화된 공식을 흔들고 긍정적인 변화를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신선함과 합리성이라는 기대에 어긋나는, 다시 말해 기존 노동계가 비판을 받았던 행태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새로움을 잃고 그저 또다른 하나의 권력으로 자리잡아 영향력을 과시하고, 부당하게 혹은 사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내부의, 주변의 관심과 응원은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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