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신진환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제안으로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 간 영수회담이 이르면 이번 주중 열릴 전망이다. 윤 대통령 취임 2년여 만이다. 여소야대 국면에서도 불통을 이어간다며 비판해온 더불어민주당 안에서도 반색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최근 통화한 한 중진 의원의 말이다. "비공개 (국무)회의에서 대국민 사과를 했을 때만 해도 '역시나' 했는데 소식 듣고 뭔 일인가 싶었다. 어찌 됐든 반가운 일이다."
야권에서 일종의 쇼라며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국정운영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30%대가 무너지면서 조기 '레임덕(권력 누수)'의 현실화를 우려한 것이라는 비판이 들려서다. 국정운영 위기를 맞은 윤 대통령이 정치적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총선 참패에 이어 윤 대통령의 급속한 지지율 하락, 그것도 지지기반(영남권·보수층·60대)에서 지지율이 빠지는 추세긴 하다.
지지율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국가수반과 제1야당 대표의 만남 자체는 의미가 있다. 2022년 8월 당권을 잡은 이 대표가 7번이나 영수회담을 제안했어도 번번이 불발됐던 자리가 드디어 성사된 만큼 협치의 기대가 커졌기 때문이다. 여야는 쟁점이 되는 입법과 예산, 인사 등을 두고 번번이 충돌했다. 과반이 넘는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단독으로 쟁점 법안을 입법하면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대치의 연속이었다. 국민은 정치를 불신하고 외면해야 했다.
칼자루는 이 대표가 쥔 모양새다. 윤 대통령은 야당 의견을 경청하겠다는 태도다. 윤 대통령은 22일 영수회담 의제와 관련해 "이 대표를 용산으로 초청했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하기보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려고 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윤 대통령의 초청에 "국민과 함께 환영의 뜻을 전한다"면서 "대통령을 만나 이번 총선에 나타난 민심을 가감 없이 전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의제는 정해지지 않았으나 '민생'이 최대 화두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표는 "국민께서는 '살기 어렵다, 민생을 살려라'라고 준엄하게 명령하셨다. 정치가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가 총선 공약인 전 국민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과 민생 고통의 부담을 위해 고유가로 많은 영업이익을 얻은 국내 에너지기업을 상대로 한 횡재세를 거론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어떤 주제든 대통령과 이 대표가 민생 살리기에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장기화하는 경기 침체에다 물가 상승까지 겹치면서 서민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식료품·생필품 등 기본적인 물품마저 가격 부담을 느끼는 국민이 많다. 물론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없는 난제다. 첫술에 배부를 수도 없다. 그렇더라도 민생 문제를 풀 수 있는 국정 역량을 정치권이 모아야 하는 게 당연하다.
한시라도 빨리 민생 불안에 대한 처방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실과 야당의 기 싸움은 영수회담에 대한 기대를 한풀 꺾게 만든다. 민주당은 천준호 당대표 비서실장과 대통령실 정무수석의 회담 준비 회동이 예정돼 있었지만 대통령실이 수석급 교체 예정이라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취소했다고 밝히면서 유감을 표했다. 이에 따라 회담 일시와 의제 등의 협의가 연기됐다. 다음 회동 일정도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경색된 여야 관계와 정국은 물론이고 정치적 이해에 발목 잡힌 민생은 여러 번 강조해도 모자라다. 지독하게 얽힌 정국의 실마리를 단칼에 자를 수 없기에 성과 없이 영수회담이 끝날 것이라는 예견이 꽤 많다. 그럼에도 소통과 상생의 정치를 복원하는 신호탄이었으면 좋겠다. 분명한 것은 삶이 나아지길 바라는 대다수 국민은 여야의 정치적 손익에 관심이 없다. 그게 지지율이 낮은 대통령이든,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야당이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