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카카오 준신위, '김범수 전권' 업고도 '식물 조직' 전락하나


카카오, 준신위 인사 관련 권고 '모르쇠'
김범수 "창업자이자 대주주로서 책임 물을 것" 경고에도 실효성 시험대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왼쪽)와 김소영 카카오 준법과 신뢰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11월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카카오

[더팩트|최문정 기자] "모든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국민 눈높이에 부응하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준법과 신뢰 위원회와 경영쇄신위원회를 통해 외부 통제도 받으며 빠르게 쇄신하겠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창업자와 카카오는 지난해 11월 내건 뼈저린 약속을 지키고, '사랑받는 국민기업'의 위상을 회복했을까? 아쉽게도 카카오 그룹을 둘러싼 진퇴양난의 상황은 이어지는 듯하다. 카카오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 역시 여전히 곱지 않다. 그 중심에 실효성을 입증하지 못한 카카오 준법과 신뢰 위원회(준신위)가 있다.

카카오는 지난해 해외 사업 경쟁력 강화와 지식재산권(IP) 확보를 위해 그룹 차원에서 추진한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시세조종' 의혹에 휘말렸다. 김범수 창업자를 비롯한 고위경영진이 줄줄이 금융감독원에 출석해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모바일 메신저에서 시작해 생활 전반으로 영향력을 확대한 카카오 그룹을 비판하는 '골목상권' 침해 논란 역시 이어지고 있다.

카카오는 타개책으로 외부 윤리 경영 감시 기구인 준신위를 꺼내 들었다. 지난해 11월 김소영 위원장을 비롯한 7명의 위원(현재는 6명)으로 구성을 마친 준신위는 출범 직후부터 적지 않은 기대를 받았다. 카카오는 준신위에 준법의무 위반 리스크 등이 확인된 경우 △관계사에 대한 내부조사 요구권 △위원회의 직접 조사 실시권 △핵심 의사 결정 조직에 대한 긴급 중단 요구권 등의 제재 권한을 부여하며 '실효성' 확보에 집중했다. 2년 만에 경영에 복귀한 김범수 창업자 역시 "나부터 준신위의 결정을 존중할 것"이라며 "그렇지 않은 계열사의 행동이나 사업에 대해서는 대주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책임을 묻겠다"며 강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카카오가 준신위 카드를 꺼내든지 6개월 차에 접어든 현재, 회사를 둘러싼 위기와 의혹은 현재 진행형이다. 카카오는 준신위의 권고 대신 관성을 택했고, 준신위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으며, 김범수 창업자는 침묵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규돈 전 카카오뱅크 최고기술책임자(CTO)의 본사 CTO 발탁이다. 정 CTO는 카카오뱅크 재직 당시, 기업공개 직후 두 차례에 걸쳐 주식선택매수권(스톡옵션)을 행사해 7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올려 '도덕적 해이'를 일으켰다. 정 CTO의 복귀는 카카오 그룹의 고질병으로 꼽혀 온 '회전문 인사'의 재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준신위는 지난 2월 정기 회의 이후 카카오 측에 '책임경영', '윤리적 리더십', '사회적 신뢰 회복'의 세 가지 의제와 세부 개선방안을 3개월 안에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준신위는 정규돈 CTO를 둘러싼 의혹이 불거지자 뒤늦게 '경영진의 평판 리스크를 방지할 방안을 마련할 것'을 추가로 주문했다.

카카오는 그때마다 형식적인 답변을 내놨다. 처음에는 "준신위의 권고안을 존중한다"고 밝혔고, 이후에는 "유사 평판 리스크를 예방하고, 관리할 수 있는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준신위의 권고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겠다는 발언과는 달리 정규돈 CTO 선임 등은 그대로 강행했다.

준신위 역시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우선, 카카오의 거듭된 권고 사항 무시에도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준신위 내의 유일한 카카오 내부 위원이었던 김정호 전 카카오 CA협의체 경영지원총괄이 지난해 직원에게 욕설을 한 사건 등으로 회사에서 해고된 이후에도 인원 재구성 등이 요원하다. 준신위 측은 논의 후 카카오 내부 인사 영입이 필요하다면 영입한 뒤, 이를 외부에 공개한다는 입장이다.

유병준 카카오준법과신뢰위원회 위원(왼쪽부터), 이영주 준신위 위원, 정신아 카카오 대표 내정자, 김소영 준신위 위원장, 안수현 준신위 위원, 김용진 준신위 위원, 이지운 준신위 위원이 지난 2월 회의 이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카카오 준법과신뢰위원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카카오 준신위를 두고 '무늬만 준신위'라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카카오 준신위는 출범 당시 삼성그룹의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를 롤모델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출범한 삼성 준감위는 독립성과 실효성을 모두 인정 받았다. 준감위는 출범 직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와 4세 경영 승계 포기 선언 등을 이끌었고, 삼성그룹의 무노조 경영 기조 폐지 등의 성과를 냈다. 출범 5년차를 맞는 준감위는 현재 3기 활동에 돌입하며 국내 기업들의 준법감시 조직의 기틀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와 비교하면 준신위의 초기 성과는 별볼일 없다는 비판이다.

한 준법감시업계 관계자는 "준신위와 같은 외부 감시 기구를 구성해 출범하는 것을 넘어, 이들이 실질적으로 경영 전반을 들여다볼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준신위와 같은 기구의 권고 내용을 회사 측에서 진지하게 인지하고, 수용해야 한다. 기구를 마련한 것만으로는 준법·윤리경영을 위한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고 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카카오 그룹의 사회적 신뢰 회복을 위해 야심 차게 출범한 준신위를 둘러싼 실효성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김범수 창업자가 본인이 공언한 대로 '창업자이자 대주주로서' 더욱 적극적인 움직임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카카오 측에서 현재의 안팎의 위기가 그동안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이뤄졌던 독립경영과 성장 중심 경영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인정하고, 준신위와 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겸허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김범수 창업자는 2009년 NHN을 퇴사하며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카카오 그룹의 준법 경영 확립을 위한 그의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결단이 다시 한번 필요한 시점이다.

munn0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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