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근의 영화 속 도시이야기] 사랑은 낙엽을 타고-헬싱키(Helsinki)


드라이하지만 갖출 건 다 갖춘 스칸디나비아의 아이

사랑은 낙엽을 타고(Fallen leaves)의 포스터.

[더팩트ㅣ대구=김승근 기자] 원제 Fallen leaves가 ‘사랑은 낙엽을 타고’로 바뀐 건 아무리 생각해도 생뚱맞다. 고민한 만큼 관객들에게 다가갔을지 의문이 들지만 제목이 기이한 것만 제외하면 참 괜찮은 영화다. 국내에서는 2007년 일본 영화 ‘카모메식당’ 이후 헬싱키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오랜만이었다는 점에서 눈이 간 작품이기도 했다.

각설하고, 힙스터들이 발빠르게 유행을 좇아 다니면서 도시의 핫플레이스가 곧 도시의 아이콘이 되고 있다. 서울에 홍대가 있다면 도쿄엔 오모테산도힐즈, 뉴욕엔 윌리엄스버그, 런던엔 쇼디치에서 최근 해크니로 핫플레이스가 바뀌고 있다. ‘드라이(dry)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헬싱키의 경우 힙스터들이 찾는 곳이라는 말 자체에 손이 오그라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드라이하다고 해서 멋지지 않다는 건 아니라는 시각에서 보면 헬싱키의 핫플레이스는 칼리오(Kallio)라고 할 수 있다.

안사(왼쪽)와 홀라파는 완벽하지 않은 보통사람들이지만 꼬인 실타래를 풀듯 사랑을 풀어나간다./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촬영 대부분이 칼리오에서 이뤄졌다. 배우들의 푸석푸석한(?) 페르소나와 칼리오는 느낌만으로 엇박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랑 앞에서 그런 건 의미가 없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마트 직원 ‘안사’는 어느날 밤 철제폐기물 압축기를 다루는 ‘홀라파’를 가라오케에서 우연히 만난다. 서로 첫눈에 반했다기보다 외로운 영혼끼리 텔레파시가 통했다고나 할까. 첫 데이트 후, 안사의 전화번호를 홀라파가 받지만 쪽지를 잃어버리면서 서로의 만남은 꼬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우리 주위에 있는, 아니 어쩌면 우리일 수도 있는 결함을 가진 보통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가 과하지 않게 다가온다.

같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라고 해도 스웨덴의 스톡홀름, 노르웨이의 오슬로와 달리 상대적으로 어두운 느낌을 주는 곳이 헬싱키다. 스웨덴과 러시아라는 2대 강국에 끼여 신산한 운명이 이어진 나라의 수도여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600년 동안 스웨덴 왕국의 영토였지만 1809년 러시아 제국이 스웨덴을 내쫓고 전리품으로 핀란드를 지배하게 됐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중립국으로 남았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EU에 가입했으며 영화에서 안사가 듣던 라디오에도 나오는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지난해에는 나토에도 들어가 사실상 러시아와는 작별했다.

핀란드와 러시아가 등을 돌리면서 생긴 나비효과일까. 유럽에 가기 위해 핀란드 국적기인 핀에어를 이용하던 한국과 일본 여행객의 비행시간이 당장 늘어났다. 인천공항 출발 기준으로 빠르면 9시간 만에 헬싱키에 도착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러시아 상공을 통과할 수 없게 되면서 북극항로 이용으로 13~14시간이 걸리게 됐다. 기찻길도 막혔다. 헬싱키에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3시간 반이면 갈 수 있었던 알레그로열차 역시 2022년 운항이 중지됐다. 지어진 지 100년이 넘은 헬싱키 대표 건축물인 중앙역을 이용할 기회가 줄어든 셈이다. 그래도 헬싱키 다운타운 자체가 그리 크지 않기에 운동하는 셈 치고 시내 곳곳을 걸어 다니는 즐거움은 남아 있다.

헬싱키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중앙역은 1919년에 건립됐다./pixabay

시간이 많지 않다면 칼리오에서 직선거리로 1.5㎞ 남쪽으로 마켓광장을 향해 걸어가는 루트를 택하자. 헬싱키 대성당과 대통령궁이 이 루트에 포함돼 있다. 한 번 갔다가 돌아오지 않을 바엔 암석으로 만들어진 템펠리아우키오교회는 미리 들르는 것도 괜찮다.

마켓광장에 다 갈 때쯤 있는 에스플란디공원 주위는 볼거리가 가장 많은 곳이다. 카모메식당에도 나왔던 아카데미서점, 핀란드 대표 캐릭터인 무민(Moomin) 굿즈를 파는 가게, 치즈와 와인가게, 고급 레스토랑은 물론 북유럽 대표 섬유 디자인인 마리메코 매장도 인근에 있다. 공원 곳곳엔 버스킹이 펼쳐진다. 솔로 뿐 아니라 현악 4중주 공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헬싱키 마켓광장은 현지인과 여행객들로 항상 북적인다. 기념품이나 특산품은 물론 해산물을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포장마차들로 가득차 있다./pixabay

마켓광장은 조용한 헬싱키에서 항상 북적이는 곳이다. 포장마차처럼 해산물에 맥주 한 잔을 마실 수도 있고 과일이나 기념품도 살 수 있다. 마켓광장의 맥주만으로 부족해 소주가 생각난다면 구체적 금액을 밝히긴 뭣하지만 한식당에서 한 병이 3만원을 훌쩍 넘긴다는 것 정도는 말해줄 수 있다.

마켓광장 인근 선착장에는 겨울 시즌을 제외하고 6개의 섬에 걸쳐 만들어진 수오멘린나 요새를 가는 페리를 탈 수 있다. 수오멘린나 요새를 한 바퀴 돌면 헬싱키에서 볼 수 있는 건 거의 섭렵하는 셈이다. 기대만큼 볼 게 많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헬싱키는 라플란드 오로라 여행의 출발점이라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설레는 곳이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다. 비행기가 돌아서 가든지 기차가 멈추든지 상관없이 최근 발표된 2024 세계행복보고서(WHR)에서 7년 연속 행복도 1위를 차지한 나라의 수도이기도 하다. 맑은 공기와 황홀한 오로라보다 더 부러운 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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