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병헌 기자] 논어(論語) 선진(先秦)편에 삼복백규(三復白圭)란 성어가 있다. 백규를 세 번 반복한다는 말로, 말을 깊이 삼가하라는 뜻이다. 시경(詩經) 대아(大雅)편의 ‘억(抑)’이라는 시에서도 "백옥으로 만든 홀의 흠은 갈아버릴 수 있지만, 말의 흠은 어찌할 수 없다"는 구절이 있다. 20세기 초중반 세계 철학계 대표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Die Sprache ist das Haus des Seins)"고 설파했다. 즉 언어는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인간 존재는 그 언어 안에서 거주한다는 의미란다. 언어 사용은 그 존재의 사유방식을 알 수 있는 척도가 된다는 설명이다. '내 혀를 잡아주는 이가 없으니 말을 함부로 내뱉어서는 안 된다'는 경구다.
경계와 신중이 필요한 말 중에도 ‘정치인의 말’이라고 하면 ‘막말’이라는 단어부터 떠오르는 게 다반사다. 경쟁 세력에 대한 분노만 부추기는 말이 너무 많다. 물론 ‘막말’은 지지자를 결집하는 데 효과적이다. 또 막말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극렬 지지세력의 반응도 더해진다. 총선을 2주 앞둔 26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대장동 재판' 출석을 수 시간 앞두고 김어준의 유튜브 방송에 전격 출연했다. 이 대표가 '김어준 방송'에 출연하는 것은 당 대표 취임 후 처음이다. 대표적인 친야권 유튜브 방송에 법원 출두 직전 출연한 이유는 동정 여론과 지지층 결집을 호소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거기서 이 대표는 '정권심판'을 호소하는 도중 이에 동참하지 않는 유권자와 정부·여당을 '악'에 비유한다. 이 대표는 유권자를 향해 "나라 운명이 달려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며 "포기하거나 방관하는 건 그들을 편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행동하지 않은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하지 않나"라고 강조한다. 아무리 친야 성향의 매체로 지지자들이 이를 시청한다고 해도 '국민을 악'으로 규정하는 것은 선을 한참 넘어선다. 막말 중의 막말이다.
앞서 지난 8일 지역구 주민에게는 "설마 ‘2찍’ 아니겠지?"라고 했다. 국민을 편 가르고 다른 당 지지자를 비하한 것이다. 사과를 해놓고도 일주일도 못 가서 다시 유세현장에서 "살 만하다 싶으면 2번 찍든지 아니면 집에서 쉬시라"고 했다. 자기 당을 찍지 않을 사람은 투표하지 말라는 것은 민주 국가 지도자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이다. 우려가 앞선다. 국민 분열 조장을 넘어서 국민 비하 수준의 막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습관적이고 의도적인 막말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이 대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22일 유세에서 "왜 중국에 집적거려요. 그냥 ‘셰셰(謝謝)’,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되지"라고 했다. "양안(중국과 대만) 문제에 우리가 왜 개입하나. 대만해협이 어떻게 되든, 중국과 대만 국내 문제가 어떻게 되든 우리와 무슨 상관 있나"고 국민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만면에 미소를 띤 채 내뱉는데 여기에 ‘셰셰’ 연기까지 곁들였다. 두 손을 모아 쥐고 ‘셰셰’를 연발했다. 지난 21일 유세에서는 황상무 전 대통령실 수석의 ‘회칼 테러’ 언급을 흉내 낸다며 "광주에서 온 사람들 잘 들어. 너네 5·18 때 대검으로 M16으로 총 쏘고 죽이는 거 봤지. 몽둥이로 뒤통수 때려서 대XX 깨진 거 봤지. 조심해"라고 했다. 물론 이어서 "농담이야"라고 수습했지만. 이 과정에서도 칼로 허벅지를 찌르는 시늉을 하며 "회칼로… 봤지? "라고도 했다. 이어서 "이게 농담이냐? (황 전 수석이) 겁박한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얼마 전 사퇴한 황 전홍보수석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한 비판이 목적이었다고 해도 과도했다는 지적이 정치권에서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이 대표의 말과 행동만 놓고 보면 무섭고 섬뜩했다는 느낌을 받은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5·18 유족과 피해자 유족에 대한 2차 가해가 될 수도 있다고 볼 수 있다. 민주당을 탈당한 전남 출신의 이낙연 전 대표도 "참담하다"고 했다. 지난 23일 '강원서도 강원도민 비하' 발언 논란과는 차원이 달라보인다.
물론 이대표는 '강원서도'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시했다. 야당 대표가 선거 국면에 정부에 날을 세우고 거센 비판을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악의 편' ‘셰셰’ ' 5.18 비유' 등의 언행은 묵과하기 어렵다. 물론 민주당 당직자나 후보들이 해명과 변명을 하는데 반해 본인은 오히려 당당해 보인다. 지난해에는 "아무리 더러운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보다 낫다"고 말해 큰 논란을 빚었다. 여간 실망스럽지 않다. 이 대표는 지금 압도적 의석으로 국회를 장악한 제1당 대표다. 아직 투표일까지는 시일이 꽤 남아있지만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다음 국회도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고 나온다.
세간에는 이 대표가 민주적 국가의 통상적 정당의 대표가 아니라는 여론도 적지 않다. ‘이재명당’이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민주당을 사당화해 완전히 장악, 1인 통치 일사분란 체제로 만들었다는 평가도 제법 있다. 가정이지만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하게 되면 대통령과 거의 맞먹는 권력자가 된다. 그래서 절반에 가까운 국민들에게 두려움과 불쾌감을 주는 거친 말과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막말은 정치 불신과 혐오를 부르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 정치인으로선 두고두고 치명적인 심판대에 세워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나라와 본인을 위해서라도 정치 지도자로서 최소한의 품위와 품격을 지키려 노력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