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의 체인지] 민주당은 지금, 민주정당일까 이재명당일까


이재명당’ 완성만을 추구한다면 민주국가의 공당이 아니다
다양한 의견이 흘러넘치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7일 오전 경기 양평군 양평군청 앞 서울·양평 고속도로 국정농단 진상규명 촉구 농성장을 방문해 경기 여주·양평 지역구의 민주당 최재관 후보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양평=배정한 기자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지난 6일 밤은 더불어민주당 비명(비이재명)계 입장으로선 악몽의 날로 기억될 것 같다. 민주당 중앙당선관위는 그날 심야에 4∼6차 경선이 치러진 20곳의 결과를 발표했다. 지역구 현역의원 11명 중 7명이 탈락했다.

그날 발표한 경선에서 패한 현역들은 강병원(서울 은평을) 김한정(경기 남양주을) 박광온(경기 수원정) 윤영찬(경기 성남중원) 이용빈( 광주 광산갑) 전혜숙(서울 광진갑) 정춘숙(경기 용인병) 의원이다. 이용빈 의원을 제외하면 모두 비명(친문 포함)계로 분류된다.

이 같은 상황들을 보면 총선을 1개월 남짓 앞둔 민주당은 친위 정당 구조가 뚜렷해진 ‘이재명당’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싶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민주당에서 1인 중심의 공천은 전례가 없었다는 게 정치학자들의 설명이다. 김대중 총재 시절에도 비주류 안배가 있었고, 노무현 대통령 측이 주도해 만든 열린우리당에서도 집단지도체제에 따라 공천 지분을 나눴다..

21대 국회 개원 당시 민주당의 주요 계파인 친문, 친노, 동교동계, 김근태계, 86그룹 등은 지금 어디로 갔는지 찾아보기가 힘들다. 8일 현재 민주당의 경선 결과를 분석해 보면 비명계 현역 의원 25명 가운데 고민정 의원(서울 광진을) 등 4명을 제외한 비명계 의원 21명 중 6명은 친명계 원외 인사의 이른바 ‘자객 공천’으로 경선에서 패했다.

4명은 컷오프(공천 배제)됐고, 6명은 탈당했으며, 4명은 경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나머지 1명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경선 대기 중인 4명 가운데는 현역 의원 평가 하위 10%에 속해 30% 감점을 받았음에도 6일 경선 결선에 오른 박용진(서울 강북을) 의원이 있다. 결선 상대는 친명계 정봉주 전 의원이다. 전해철(경기 안산갑) 의원은 양문석 전 통영·고성 지역위원장과 맞붙고, 송갑석(광주 서구갑) 의원은 조인철 후보와 대결한다. 이들의 경선 승리는 비관적이라는 예상이 우세하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탈당 선언을 하고 있다./남용희 기자

21대 국회 초반까지만해도 민주당은 국회의원 인원 자체가 많다 보니 여러 주장과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의원총회는 물론이고 자기들끼리 뭉치는 계파도 많고 모임도 많았던 탓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고 할수 있지만 공당으로서의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시각이다. 건강한 정당은 일사불란하지 않고 다양한 목소리가 분출돼야 민주주의라고 할수 있다는 애기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이재명 대표가 20대 대선주자로 지고도 불과 2개월 만에 다시 선거판에 직접 뛰어들어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서 원내에 입성하면서 오늘날의 비명계의 참사는 시작됐다고 할수 있다. 이 대표가 그해 8월 당 대표가 되면서 민주당은 전통적인 체계가 흔들리며 이재명 사당화로 빠져들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적지않다.

당시 전당대회가 열리기 이틀 전 민주당은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됐을 때 당직을 정지한다’는 당헌 80조를 "정치탄압 등 부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당무위 의결을 거쳐 달리 정할 수 있다"라고 개정한 사실이 일례다. 그 과정에는 ‘개딸’이란 이름으로 재무장한 이 대표의 강성 지지층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들의 입김이 강해지면서 자연스레 원내에도 ‘친명 호위무사’, ‘친명 호소인’ 등을 자청하는 ‘신(新)친명’계도 점차 두터워진다. 특히 지난해 12월,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뽑는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투표 비중은 줄이고, 권리당원 비중을 지금보다 키우도록 당헌까지 개정한 대목은 이재명당으로 가는 결정적인 행보다. 당시에도 이미 ‘이재명 방탄용’이라는 논란이 거셌다. 하지만 비명계는 대체적으로 "설마"라며 안이하게 생각한 것 같다는 게 중론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배정한 기자

체포동의안 가결 등 계속된 사법리스크에도 이 대표는 악착같이 당내 장악력을 계속 더 키워갔고 현역 의원과 지역위원장 등 정치인의 힘은 빼고 자신의 강성 지지층에 힘을 대폭 실어주는 전략을 실천해온 셈이었다. 그덕에 비명계는 오늘날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민주당을 이 대표 사당으로 헌납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민주당의 당헌 당규엔 ‘당대표 및 최고위원의 임기는 다음 정기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대표가 선출될 때까지로 한다’고만 되어있다. 연임 등에 관한 규정은 없다. 연임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비명 횡사 완결편에 가까운 경선 결과 발표가 있었던 6일 이후부터는 시끄럽던 민주당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이 대표와 측근들, 강성 지지층이 완전히 당을 장악했기 때문일까?

적지 않은 정치학자들이 민주당이 '자멸적 공천'을 했다고 입을 모으지만 이유에 대해서는 분석이 분분하다. 총선 승리 낙관론이 이유였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총선 승리보다 '이 대표의, 이 대표에 의한, 이대표를 위한' 민주당 완성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노골적으로 ‘이재명당’ 완성만을 추구한 것이라면 민주당은 민주국가의 공당이 아니다. 한술 더 떠 혹여 이 대표와 친명 주류가 자기희생과 헌신 없이도 총선 때 저절로 정권심판론이 작동해 이길 것이라고 믿고 그랬다면 공당의 자격조차 없다. 야심가가 강성 팬덤을 동원하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다원적 풍부함이 이끄는 민주주의로 가야 한다. 조직되고 동원된 다수의 당원들이 당을 좌지우지하고, 다른 목소리를 억압해 하나의 의견으로 통일하는 것은 전체주의라고 본다. 민주국가의 공당은 다양한 의견이 흘러넘치고 견제와 균형의 민주주의 원리가 작동되는 정당이어야 한다. 군사독재 정권과 맞선 역사적 경험과 전통을 갖고 있는 민주당은 특히 그래야 한다.

bienn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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