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최지혜 기자]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의 '1억원 나눔'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사비로 시작된 기부에 이어 회삿돈을 활용한 기부 및 파격적인 임직원 지원 소식이 줄을 잇는다. 수백억원 대의 횡령금과 배임액을 확정받은 데 이어 수천억원 대의 배당금을 받은 이중근 회장의 '통 큰' 씀씀이가 이목을 끈다.
이중근 회장의 통 큰 기부는 지난해 6월부터 시작됐다. 고향인 전남 순천 운평리의 280여 세대 주민들에게 사비 약 1억원씩을 나눠줬다. 이어 8월에는 동산초와 순천중 등 출신 모교의 남자 동창생들에게 1억원씩, 순천고 동창들에게는 5000만원씩 돈을 줬다.
무주덕유산리조트는 지난해 11월 저소득층 대학생에게 400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고, 창신대에는 그룹 차원에서 재정을 지원해 신입생 전원의 1년 치 등록금을 제공하고 있다. 창신대는 부영그룹이 지난 2019년 인수한 창원시의 대학교다. 이어 12월에는 부영그룹이 대한적십자에 3억원을 기부했다. 이 가운데 1억원은 이중근 회장이 보탰다.
5일 열린 부영그룹의 '2024년 갑진년(甲辰年) 시무식'에서는 향후 출생하는 임직원 자녀들에게 1인당 1억원씩 지급한다는 방침이 발표됐다. 통상 시무식은 1월께 열려 한 해 회사의 경영 전략을 발표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지만, 부영의 시무식은 이보다 한 달가량 늦어졌다. 시무식의 분위기도 사뭇 남달랐다. 시무식이 열린 컨벤션홀에 이중근 회장이 들어서자 임직원의 기립박수가 나왔다. 사회자가 "차렷, 회장님께 경례"라고 말하자, 참석한 임직원들이 일제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회장님"이라고 외쳤다.
시무식의 내용 역시 경영 전략 발표와는 거리가 멀었다. 시무식에선 2021년 이후 출생한 임직원 자녀 70명이 1억원씩을 받아 갔다. 자녀가 둘 이상일 경우 한 가정에서 각각 1억원을 받을 수 있다. 부영은 국가로부터 토지가 제공된다면, 셋째까지 출산한 임직원 세대에는 임차인의 조세 부담이 없고, 유지보수 책임이 없는 국민주택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언론 질의 시간을 가졌다. 언론 질의는 순탄해 보였으나 사실상 부영 측이 미리 정해준 질문만 가능했다는 뒷말이 나왔다. 사전에 약속되지 않은 듯한 매체의 질문은 받지 않거나, 질의해도 대부분 답하지 않았다.
거금의 기부와 출산지원금 지출은 부영의 재정 상황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지난 2022년 기준 부영의 핵심 계열사 부영주택은 1615억원, 지주사 부영은 1425억원의 영업손실을 각각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부채비율도 부영은 809%, 부영주택은 437%로 적정 범위(200%)를 크게 벗어나 있다.
회사의 수익성은 악화했지만, 이중근 회장의 개인 곳간은 매년 채워지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2020년 8월 대법원으로부터 약 366억원의 횡령액과 101억원의 배임액을 확정받아 징역 2년 6개월과 벌금 1억원의 형량을 받았다. 이어 2021년 가석방으로 풀려난 이 회장은 당초 관련 법률에 따라 5년간 취업이 제한됐지만, 지난해 8월 윤석열 대통령이 단행한 광복절 특사에 포함돼 지난해 8월부터 경영에 복귀했다.
취업제한 기간에도 배당금은 막대한 수준이었다. 이 회장의 배당금은 지난 2022년 2060억원, 2023년 1221억원 규모다. 지난해 배당금을 기준으로 하면 재계 순위 1위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3048억원)에 이은 국내 2위 수준으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1114억원)보다도 많다. 이 회장은 부영의 지분 94%가량을 보유하고 있다.
곳간에서 나는 인심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이에는 엄연한 경계가 있다. 그 곳간이 채워진 경위를 미루어 본다면 부영이 오너기업임을 고려하더라도 침체된 경제 상황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수익을 내는 성실한 기업과의 차이는 더욱 커질 것이다.
이중근 회장은 2500명에 달하는 부영 임직원을 이끌고 있다. 이번 출산장려금이 세간의 이목을 끌면서 부영은 더욱 주목받는 기업이 됐다. 이와 함께 오너가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고위층 인사에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동안 회사가 처한 경영 위기가 개선될 수 있을지 여부에도 국민적 관심이 쏠릴 것이다.
wisdom@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