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병헌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간의 갈등은 ‘일단락’ 된 것 같다. 총선이 채 80일도 남지 않은만큼 대통령실과 여권 모두 갈등을 키우기보다 하루 빨리 이를 수습해야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대목이 크게 작용한 듯 하다. 대통령실에서 당을 찍어 누르려는 모양새는 좋지 않다는 공통된 의견이 형성됐다고 한다.
갈등의 이유는 국민 대다수가 짐작하는 대로다. 총선 공천과 김건희 여사 리스크다. 한 위원장이 김경률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출마 사실을 직접 공개할 때부터 대통령실은 마뜩잖은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에 대한 한 위원장의 사과 요구 발언, 김경율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의 ‘마포을 출마’ 사천(私薦) 논란을 놓고 한 위원장의 리더십에 문제의식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결정적인 건 ‘김건희 여사 리스크’에 대한 해법의 이견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한 위원장이 ‘정치 공작의 피해자’라는 대통령실 시각에는 함께 했지만 "국민이 걱정하실 만한 부분이 있다"고 부연한 대목은 대통령실의 시각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물론 이런 인식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정권을 흔들기 위한 사전 공작 성격이 뚜렷한 데다 한 개인을 이렇게까지 망신 줄 일인가도 싶지만 대다수 국민들의 눈높이에 부족해 보인다. 국민이 명품 백을 받은 것에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김 비대위원이 김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 비교한 것은 나가도 너무 나갔다. 마리앙투아네트는 오스트리아와 오랜 숙적이었던 프랑스와의 동맹을 위해 루이 16세와 정략 결혼을 했으나 왕비로 재위하는 동안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 38살 생일을 2주 앞두고 루이16세와 마찬가지로 단두대에서 처형된 비운의 왕비이다. 그녀가 그동안 사치와 무지의 대명사로 알려진 데는 혁명의 당위성을 주장하고자 당대의 혁명세력들과 일부 후대 사가들에 의해 조장된 근거 없는 낭설이다.
여권이 근절하고자 노력중인 가짜뉴스와 다를바 없다. 거의 모두 해명됐지만 가끔은 아직도 부정적인 의미로 입에 오른다. 그런데 김 비대위원이 ‘사치스러운 생활로 프랑스 혁명의 한 원인이 된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거론하며 김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관련 사과를 촉구했다. 실언이다. 사과는 했지만 보기에 따라 본인의 거취 문제가 거론될 만큼 비중있는 사안이다. 급기야 대통령실에서 사퇴를 촉구하는 사태까지 온 게 아닌가 싶다.
갈등이 원만한 봉합으로 가닥이 잡힌데는 ‘어차피 한동훈이 이기는 게임’ 아닌 ‘한동훈이 이겨야 하는 게임(총선)’이라는 인식도 작용한듯하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한 위원장이 잘못해서 생긴 일이 아니라 김 비대위원의 실언과 대통령실의 지나친 우려가 상승작용을 일으겼고 꼬여버린 상황을 한 위원장이 풀려고 하다보니 생긴 일"이라면서도 "한 위원장 입장에서는 그동안 당 지도부 중 유일하게 ‘수직적 당정관계에 맞서려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는 호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윤 대통령이 사퇴를 요구한 건 아니라는 설명이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한 위원장을 언급하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후배였다"고 말한 대목도 의미심장하다.
한 위원장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윤 대통령이 ‘미스커뮤니케이션’을 막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는 분석이다. 대통령실은 23일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회동 등 해법을 위한 여건 조성을 위해 노력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국민들이 현 상황에 대해 가지고 있는 우려, 이에 대한 당 분위기, 한 위원장과의 소통 필요성 등을 공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친윤 핵심 이철규 의원은 23일 "아주 긍정적으로 잘 수습이 되고 봉합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두 사람이 만나는 시점에 대해서는 좀 더 기다려야 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둘은 이날 오후 충남 서천군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조우했다. 사전 약속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현장을 점검한 뒤 둘은 대통령 전용열차 같은칸을 타고 함께 상경했다. 윤 대통령은 화재 현장 방문을 마친 뒤 국민의힘과 정부 관계자들에 "서울에서 온 사람들은 전용 열차를 같이 타고 올라가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이때 한 위원장은 "열차에 자리 있습니까"라고 물었고, 윤 대통령은 "어, 같이 올라가자"라고 답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오후 1시 40분쯤 서천특화시장에 도착했고, 한 위원장은 약 30분 먼저 도착해있었다.
갈등후 이틀만의 만남은 봉합의 징조라 점쳐진다. 하지만 이날 만남 자체보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앞으로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해나갈지가 총선국면에서 여권 최대의 국민적 관심사다.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에게 때론 쓴소리를 하고, 설득할 수 있는지도 관건이다.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밝힐지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윤 대통령과 차별화되는 정치 행보로 중도층, 무당층을 흡수하게 되면 선거 파괴력은 더 커지게 된다. 당 쇄신에 속도를 내야 하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법무장관으로 제한적이었던 한 위원장의 향후 행보에 민주당이 더욱 두려움을 갖게 될지 아닐지가 궁금해지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