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의 정사신] 尹의 '역린' 건드린 죄인(?) 한동훈 미래는


한동훈 "제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尹 대통령과 대결 양상
총선 80여 일 앞두고 사퇴요구 '용두사미'로 끝날까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으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국회=배정한 기자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영화 '봄날은 간다'의 대사다. 여전히 많이 회자된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관계도 이 상황에 놓인 것 같다. 물론 화자는 상황에 따라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일 수 있을 것 같다.

21일 한 위원장 사퇴설이 불거졌다. 대통령실과 당내 친윤계가 요구했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담겼다는 게 '사퇴' 명분이다. 한 위원장이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이고, 총선을 불과 80여 일 앞둔 상황이라는 점에서 당내 자중지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 사퇴를 종용한 게 맞을까.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누구보다 의중을 잘 파악하는 인물로 알려졌다. 오죽하면 한 위원장이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왔을 때 '윤석열 아바타'라는 별칭이 붙었을까 싶다. 그런데 기류가 바뀌었다. 친윤계가 나섰다. 사실일까.

한 위원장 사퇴요구설이 나오자 대통령실은 "비대위원장 거취 문제는 용산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 기대와 신뢰를 철회했다는 논란과 관련해서 이 문제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 공천에 대한 대통령의 강력한 철학을 표현한 것이다"라는 말로 해명했다. 한 위원장의 거취 문제는 윤 대통령이 관여할 문제는 아니지만, '기대와 신뢰 철회'에 대해선 공정한 공천을 언급하며 대통령의 철학을 언급했다. 쉬운 말을 어렵게도 돌려서 한다. 윤 대통령의 의중이라 말하기 곤란하니 공정한 공천이라는 명분을 끄집어냈다.

윤 대통령의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 공천 철학에 한 위원장이 반한 사례는 김경율 국민의힘 비대위원 사례다. 한 위원장은 지난 17일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뜬금없이 김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출마를 알렸다. 손도 번쩍 들면서다. 당장 사천 논란이 불거졌고, 한 위원장을 향한 비판이 쏟아졌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철회했다는 지점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22년 4월 13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법무부 장관에 내정된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소개하는 모습. /더팩트 DB

한 위원장은 대통령실의 사퇴요구설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21일 오후 공지를 통해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뭐라 하든 사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한 위원장이 만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건 이미 정평이 나있다. 윤 대통령이나 친윤계도 모를 리 없다. 어찌 보면 한 위원장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할 때부터 제 발등을 찍는지도 몰랐던 게 아닌가 싶다.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의 한 위원장 사퇴요구설이 나오자 표면적으로 김경율 비대위원 공천 논란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김건희 여사를 향한 기류 변화 때문으로 본다.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시각이다. 한 위원장은 그동안 김 여사를 둘러싼 의혹 중 '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수수 의혹'과 관련해 기류를 조금씩 바꿨다.

한 위원장은 김 여사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몰카 공작'이라고 규정하면서도 18일엔 "국민이 걱정하실 만한 부분이 있다", 19일엔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고 했다. 여기에 한 위원장은 일부 비대위원과 영입 인사들이 김 여사 사과 주장과 관련해 "국민의힘은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이 모인 곳"이라며 옹호했다. 윤 대통령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다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한 위원장은 김 여사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몰카 공작이라고 규정하면서도 18일엔 국민이 걱정하실 만한 부분이 있다, 19일엔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고 했다. 여기에 한 위원장은 일부 비대위원과 영입 인사들이 김 여사 사과 주장과 관련해 국민의힘은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이 모인 곳이라며 옹호했다. 윤 대통령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다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더팩트 DB

윤 대통령의 역린은 누가 뭐래도 김 여사다. 여러 의혹이 있지만, 윤 대통령은 그에 대한 사과나 해명도 내놓지 않는다. 침묵은 의혹을 더 키웠다. 여권 내 누구도 말할 수 없는 김 여사 관련 의혹을 한 위원장이 짚었으니 당연히 불쾌할 수밖에 없다. 역린을 건드렸다고 보기 충분하다.

'역린'은 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로 즉 군주가 노여워하는 군주만의 약점 또는 노여움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정치권은 물론 직장 등 다양하게 이 말을 사용한다. 역린은 '한비자'의 세난(說難, 설득하는 일의 어려움)편에 유래하는 말로, 유세(遊說, 자기 의견 또는 자기 소속 정당의 주장을 선전하며 돌아다님)의 어려움에 대해 논한 것이다.

"용은 길들이면 타고 다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목에는 역린(逆鱗)이라 해서 거꾸로 난 비늘이 있으니 그것을 만지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죽음에 이르게 된다. 군주에게도 역린이 있으니 그에게 유세하고자 하는 자는 역린을 건드리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그렇게만 한다면 유세는 대체로 성공할 것이다."

한 위원장이 총선 승리 명분으로 국민 여론을 의식해 김 여사 문제에 대해 윤 대통령과 친윤계 설득에 나섰지만 실패한 모양새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린 한 위원장의 처지가 그렇다. 다만, 한 위원장은 22일 "제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안다"며 사퇴설을 일축했다.

총선을 앞둔 여권에 드리운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충돌이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겠지만, 분명 부정 여론일 것으로 전망된다. 윤 대통령의 역린 김 여사를 건드린 죄(?)를 지은 한 위원장의 미래는 사퇴일지, 아니면 대통령실과 친윤계의 용두사미로 끝날지 궁금해진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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