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공식사과 밑에 있지만, 공식사과는 아니다"...'알쏭달쏭' 외교부


유엔 정부의견서 기시다 日총리 발언 그대로
사견 전제·피해자 지칭 없었다는 지적 '무시'

윤석열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의 과거사를 덮고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제3자 변제안을 내놨지만 일본 측의 호응은 없었다. 사진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왼쪽 세 번째)가 지난 5월 7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우리측 환영을 받는 모습. /임영무 기자

[더팩트ㅣ조채원 기자] "많은 분들이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 데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당시 힘든 경험을 하신 분들에 대해서 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씀드린 것."

​2023년 5월 7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윤석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당시 혹독한 환경 아래 다수의 분들께서 대단히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 데 대해 굉장히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혹독한 환경 아래의 분들'이 강제동원 피해자를 의미하느냐는 한국 기자 질문에는 사견(私見)을 전제로 답했다. "당시 힘든 경험을 하신 분들에 대해서 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씀드린 것입니다."​

정부는 9월 13일 발표된 파비앙 살비올리 유엔 진실·정의·배상 및 재발방지 특별보고관의 방한 결과 보고서에서 '강제동원' 주제 '공식사과' 항목에 이렇게 쓴다. 5월 7일 한-일 정상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기시다 총리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해 "혹독한 환경 아래 다수의 분들께서 대단히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데 대해 굉장히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At the joint press conference of the ROK Japan Summit on May 7, Prime Minister Kishida also said, regarding the victims of forced mobilization, "My heart hurts as many people suffered such difficulty and grief under the harsh environment at the time.")고 했다.​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 데다 '공식'도, 심지어 '사과'였는지도 불분명했던 기시다 총리 발언인데, '공식 사과' 항목에 들어간 데 대해 국회와 여론의 지적이 빗발쳤다. '공식 사과 한 걸로 치고 싶은' 일본을 우리 정부가 대변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은 9월 13일 관련 내용에 대해 "실무자 차원의 부주의"라고 해명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10월 2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지난번 말씀드린대로 실무자 차원에서 부주의가 있었다"며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유엔에 제출한 수정 의견서에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발언이 포함된 데 대해 공식 사과 제목하에 기술된 내용이라고 공식 사과로 인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임영무 기자

​2023년 12월 12일. 정부가 유엔 제출 의견서를 지난달 수정해 다시 낸 것으로 확인됐다. 지적의 핵심이었던 기시다 총리의 발언은 그대로다. 그 뒤에 "일부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들은 계속해 일본 정부와 기업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Meanwhile, some victims and bereaved families of forced labour continue to demand an official apology and compensation from the Japanese government and companies.)"는 문장이 추가됐을 뿐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지적이 반영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공식 사과' 제목하에 기술된 내용이라고 공식 사과로 인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간 일본 측이 밝힌 입장을 기술한 것이고 기시다 총리의 발언도 그중 하나"라면서다. 기시다 총리 발언의 배경을 모르는 국제사회 구성원들이 '공식 사과' 항목에 있는 발언을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공식 사과'로 여기지 않을지 의문스럽다. 해명이 아니라 궤변으로 들리는 이유다.

오락가락 해명에 답하고 싶은 것만 답하는 태도도 문제다. 국민들 앞에서 외교부 장·차관은 '실무자 부주의'라 해놓고 두 달 만에 말을 바꿨다. 외교부 주장대로 형식 상 '공식 사과'에 들어가야 했다 치자. 기시다 총리 발언이 강제동원 피해자를 지칭하지 않았고 사견임을 전제했다는 사실은 왜 서술하지 않았나. 재차 물어도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외교부는 "'공식 사과' 제목하에 기술된 내용이라고 공식 사과로 인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란 답변만 반복했다.

외교부는 국민 앞에 정확한 이유,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과거사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오는 21일,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온다. 피해자와 유족이 1심 소송을 제기한 지 9년 10개월, 대법원에 계류된 지 5년여만이다.

결과가 어떻든 일본이 바로 '물컵 반 잔'을 채울 것 같진 않다. 안 그래도 '공탁 불수리'에 막힌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 제3자 변제안에 대한 반감은 더욱 커질 테다. 잠시 눈 가리고 입 막는다고 지나갈 일이 아니다.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위해서라도 일본 입장 옹호보다는 우리 국민 설득이 먼저다. 변하지 않는 일본보다 정부 대처에 더 서글플 일은 또 없길 바란다.

chaelo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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