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병헌 기자] 1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프랑스 군사전략의 금과옥조는 ‘방어 만능주의’였다. 독일군의 베르덩 요새 공격을 저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후 2차 세계대전 초기 국가적 수모를 당하게 되는 ‘마지노 정신’을 만드는 불행의 시작이 된다. 프랑스는 공격 전술의 진보와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독일에 맞서 희망을 '마지노'선에 모든 걸 걸고 ‘베르덩 2차' 방어로 승리를 꿈꾸지만 결과는 처참한 패배였다.
전승불복(戰勝不復). 똑같은 방법에 의한 승리는 두 번 이상 반복되기가 어렵다는 말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손자병법 등 동서고금의 대부분의 병서에서도 크게 경계하는 대목이다. 인간사 모든 분야의 다양한 환경에 여지없이 적용된다.
국내 한 거대 야당의 행태도 2차 세계대전 전후의 프랑스를 떠올리게 한다. '대국민 내편 만들기' 선거전쟁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전승불복의 금과옥조를 깨뜨린다. 내년 4월의 총선 승리를 위해 계속해오던 것을 고수하고 있다. 심지어 같은 진영의 인사들에게도 비판을 받아가면서도 '닥결' 즉 '닥치고 다수결' 전략을 밀어붙인다. 2년 이상 끌어온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에 대한 국회방탄 성공에 도취한 탓일까? 최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압승에도 불구하고 반전되지 않은 정치적 상황 탓일까?
실제 김포시 서울 편입과 주식 공매도 금지 등 여당발(發) 정책 어젠다에 밀리는 와중에 법원이 이재명 대표 위증교사 혐의 사건 심리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되며 ‘사법리스크 시즌2’가 재점화되는 상황이라서? 여기에 당내 비명(비이재명)계들도 ‘세력화’에 나서 이 대표 리더십을 흔들기 위한 채비 중인 대목도 영향을 준 탓일 것이다.
민주당의 대응전략은 거대야당이 된 후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온 '닥치고 다수결'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그리 좋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회 내 중우민주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민주주의의 합리성은 대화와 타협에서 찾을 수 있다. 168석의 의원들을 이용한 ‘다수결’ 밀어붙이기를 보면 중우정치의 폐단을 21세 대한민국 국회에서 보는 듯하다.
민주당의 이른바 '닥결' 전술은 크게 전 후반기로 나눈다. 정권교체 이후 지금까지 전반기는 '탄핵' 중심의 다수결이었다면 후반기는 '특검'중심으로 갈 모양새다. 전반기에는 디수결로 이재명 방탄이나 진영 친화적 법안 처리에서 재미를 봤지만 '탄핵'에서는 그리 재미를 보지 못했다. 탄핵가결까지 갔는데도 헌법재판소의 도움이 없어 무위로 끝나거나 작전 미숙으로 미수에 그치기도 했다. 특히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과 이정섭 수원지검 2차장검사,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 검사장 2명에 대한 탄핵안 본회의 보고만 하는 우를 저지르기도 했다.
최근 분위기를 보면 심기일전하는 듯하다. 총선을 앞두고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 시즌2가 점차 녹록치 않은 상황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14일 정치권과 법조계 안팎에서는 전날 법원의 이 대표 위증교사 혐의 사건을 ‘대장동·위례·성남FC·백현동’ 사건과 분리해서 진행하기로 한 결정했다. 선고 시계가 빨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심 선고가 이르면 내년 4월 총선 전에 나올 것이라는 관측도 힘을 얻고 있다. 1심 판결이 유죄로 날 경우 총선을 앞둔 국면에 민주당에는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적지않다. 아울러 이 대표가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해야 하는 재판도 총 3건으로 확정됐다. 당내에서는 이재명 대표를 향해 거친 비판을 쏟아내 온 비명계의 움직임도 심상찮다. 김종민·윤영찬·이상민·이원욱·조응천 의원 등은 이르면 이번 주 ‘원칙과 상식’(가칭) 모임을 출범하고 집단행동을 예고하고 있어 산너머 산이다.
민주당이 여기에 대응해 꺼내 키드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김건희 여사·대장동 50억클럽 관련 특별검사, 이른바 '쌍특검' 법안을 고리로 총선 직전 정국 주도권 탈환을 노리는 전략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권심판론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검찰과의 전쟁이라고도 한다. 핵심은 특검 강공이다. 전략은 역시 '닥치고 다수결'이다.
정국은 더욱 얼어붙을 전망이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3일 ‘쌍특검’ 법안에 대해 "12월10일까지인 정기국회 내에는 처리할 것"이라며 "(국회법에 따라) 12월22일에 무조건 처리돼야 하는데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조정식 민주당 사무총장은 지난12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쌍특검법'을 국회의장과 협의해 빨리 처리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민주당이 주력하는 공격 대상은 김건희 여사 특검법이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이 총선이 4개월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정국을 흔드는 주요 이슈가 될 것으로 본다. 국회 본회의 통과되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러면 윤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는 '1타 쌍피'고, 윤 대통령이 특검법을 수용하든 수용하지 않든 '정권심판론'의 재료로 활용할 수 있어 최대 '1타 3피'의 이득이라는 게 민주당의 계산으로 보인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은 2009년부터 2012년 사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범죄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특검 수사로 규명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김건희 여사 특검 간다'는 변죽을 울린 것은 대선 선거기간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국민적 관심을 끌기 시작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지난 4월 민주당 등 야권 단독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됐는데, 국회법에 따라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최장 180일)와 본회의 심사(최장 60일)를 거쳐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다.
자동 상정되는 날짜는 홍익표 원내대표가 언급한 12월 22일. 야권 공조로 추진된 만큼 여소야대의 국회 의석 구조상 이후 본회의 통과 가능성은 크다. 지금까지 '닥치고 다수결' 전략을 활용한 사안 중 가성비가 가장 높아 보인다. 민주당 내에서는 대통령 지지율이 적어도 5% 내외까지 출렁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파괴력이 지금까지 어떤 이슈보다 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거부권을 안 쓰면 특검으로 선거날까지 시끄러울 수밖에 없어 민주당은 총선 승리의 피날레로 보는 듯하다.
과연 그럴까? 잦은 탄핵소추에다 묻지마 법안 처리, 검찰 관련 파상 공세 등으로 국민들의 피로도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번이라는데... 전승불복을 애써 무시하려는 듯 해보인다. '닥치고 다수결'로 밀고온 민주당의 막가파식 행보가 성공해 총선에 승리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다만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옛말은 틀린 적은 없다고 했던가. 시간, 장소, 상대 상황, 우리 상황 등을 무시하고 그저 지난 번의 방법을 답습하기만 해도, 여기에 방법마저 비민주적이고 막가파식으로 문제가 있다면... '위대한 승리'는 커녕 '비극적 패배'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민주당은 각성하기 바란다.